기록하는 습관은 스스로 조예가 깊어지는 일이다.

구상과 구현은 다르다.

by 이수염

생활 계획표.

초등학교시절, 방학이면 만들어야 했던 것.

동그란 원을 그려, 원의 중심을 기준으로 원 바깥으로 선을 그어 각기 다른 크기의 피자 조각을 만들며 각 조각에 해당하는 시간마다 할 일을 계획하는 것. 그 당시에는 만들기 너무 귀찮고, 무용하다고 느껴졌다. 방학이라는 자유를 방해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우리는 생활계획표라는 것을 만들진 않지만 루틴이라는 단어로 자신의 생활을 피자조각처럼 나눠놓고 살기는 마찬가지다. 그것이 타의로든 자의로든 말이다.


루틴은 정해진 순서에 따라 반복적으로 하는 일이나 행동방식을 뜻한다. 일상루틴, 운동루틴, 업무루틴처럼 습관화된 절차나 매뉴얼화된 흐름을 뜻하는데,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긍정적 측면으로는 안정적이고, 효율적이고 숙련된다. 반면 부정적 측면으로는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루틴에 갇혀 기계적으로 변질될 수가 있다.


내가 어렸을 때와 다르게 운동을 꾸준히 해오게 되면서부터는 나의 생활 일부에 오전 운동을 가는 루틴이 생겼고, 운동에도 꽤나 흥미가 붙었던 터라, 한창 운동에 빠져있을 때는 주 7일 운동을 하기도 하였다.


사람이 습관을 만들라면 최소 22일을 꾸준히 실행하라고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텀을 두지 않고, 매일매일 연달아 22일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루틴을 만들고 습관을 세우는 방법은 원하는 루틴을 가능한 우선순위로 두고, 최대한의 반복행위를 하는 것인 셈이다.


기질적으로 계획적인 사람이거나 자신의 규칙을 좋아하는 이라면, 이를 꾸준히 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는 귀찮음과 게으름을 핑계로 루틴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러한 경우 머릿속으로는 매일매일 그 루틴이나 계획을 생각만 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만약 그런 일이 매일이 된다면 ‘ 생각만 하는 루틴 ’ 이 자신의 루틴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말하는 루틴은 결국 계획에 머물러 있지 않은 ‘ 행동하는 루틴’이다.


이것은 다짐과 실천의 차이와도 같다. 다짐은 구상이고. 실천은 구현이다. 구상과 구현은 엄연히 다르다.

우리는 이 차이를 분명하게 체감하고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거나 혹은 생각만 하면서 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되거나, 환경적 요인이나 주변의 방해로 실패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구상과 구현의 차이를 매일매일 자각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답은 기록에 있다. 그것이 글로 남기는 일기인지, 사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식으로든 나의 루틴, 습관을 구현해 낸, 지켰다는 증거를 기록하면 된다.

그리고 그 기록들은 모여, 발전하고 있는 나의 자부심이 되고, 전보다 해이해진 나에게 반성의 시간을 주며,

끝끝내는 지금 현재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구현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기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대단한 일이지만, 거창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좋아하는 것들을 느끼고, 수집하기도 하며 살아간다.

가장 흔한 예로 음악이 있다. 현재에 우리는 음악을 아주 간단하게 접할 수 있다.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만 봐도, 귀에 이어폰을 끼고 다니는 사람들이 흔한 풍경이다. 각자가 좋아하는 음악들을 듣고 수집하고 저장하며, 우리는 개개인의 플레이리스트들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매일매일 하루 루틴을 기록을 쌓는 것은 내 삶에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일과 같다.


결국 취향이 분명한 사람은 많은 것을 접하고, 느껴본 사람이며, 그 데이터들을 쌓아 분명한 취향이라는

것을 만들어, 취향들의 깊이를 스스로 구현해 낸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것을 조예가 깊다거나, 더 나아가 전문가라고 부른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조예가 깊어야 한다. 자신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는 우리를 기록해야 한다. 잘 해낸 하루도, 조금 더딘 하루도 모두 기록하면, 그 기록이 쌓여 내가 되고, 나에 대한 조예가 깊어지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삶을 전문가처럼 주도적이고 명확하게 그리고 충만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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