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복소복 마음에 쌓인 시간

안경을 쓴 타짜들의 밤

by 이수염

안경을 맞추러 갔다.

내 안경은 아니고 부모님의 안경을 맞추러 아웃렛 안에 있는 안경점을 찾았다. 오늘의 필수과제였다.

최근에 부모님이 독서를 함께 하시곤 하는데, 안경이 없어서 오래 보기가 불편하신 듯하다.

두 분 모두 안경을 원래 쓰셔야 하지만, 어머니는 화장이 지워진다며, 아버지는 평소에 걸리적거린다는 이유로 쓰시지 않고, 안경을 맞춘 적도 없었다.

최근에는 글을 읽고 쓰고 해서인 탓인지, 마음에 미세먼지농도수치가 현저하게 낮아졌다. 그래서일까? 가족들과 보내거나 이야기하는 시간들을 보냄에도 스스로 너그럽고 그들에 대한 애정이 투명하다.

이것은 매우 기분 좋은 변화이지만, 한 편으로는 일시적인 맑음 현상일까 봐 조금 걱정도 된다. 걱정하면 뭐 하겠는가? 나는 현재의 마음의 날씨를 우러러보고, 맑은 마음에 맞춰 행동하면 그만이다.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아웃렛은 사람들로 매우 가득 찼다. 유독 다른 때 보다 더 붐비는 이유는 아마도 급격하게 떨어진 기온 탓일 것이다. 한파주의보에 폭설재난 문자가 토요일 새벽부터 내 휴대폰을 얼마나 울렸는지 모른다.

아무튼 내 부모님은 나와의 시간 보내기에 제법 신나셨는지 매우 들떠 보였다. 나도 덩달아 신나면서도, 그동안에 뜸했던 아들인 나를 속으로 나무라게 된다.

물론 부모님은 금술이 매우 좋으시고 단둘이서도 시간을 잘 보내는 원앙부부지만, 아들과의 시간에 기뻐하는 것이 부부보다는 역시 부모의 모습이 잘 어울리는 분들이다. 평소에 사람이 붐비는 곳으로 다니시지 않는 두 사람이지만, 오늘은 아들을 방패 삼아 든든한 마음으로 인파 속을 걸어 다닌다.

연말이 지났지만, 추운 날씨와 내리는 눈 때문인지, 어쩐지 더 연말 같은 분위기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들떴다. 최근에 부모님이 젊었을 적 쓰시던 안경을 쓰고는 같이 찍은 사진을 톡으로 전송해 왔었는데,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예뻐 보였다. 게다가 독서도 하신다고 하니

글을 쓰기 시작한 아들으로서, 안경을 맞춰주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


실내를 걸어 다니며 사람들 속을 걷다가 안경점에 도착했다. 나는 분주하게 흩어져 이런저런 안경을 써보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쪽저쪽으로 전담마킹하며 그들이 시착해보는 안경이 어울리는지를 말했다.

어쩐지 순간 다른 고객들이 보기에 안경점 직원인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고 허니 좀 웃음이 났다.

안경테를 고르고 시력검사까지 하고, 안경사들이 렌즈를 만드는 동안 우리는 차를 마셨다. 실내에 있는 벤치에 창밖으로 바라보고 셋이 나란히 앉아 차를 홀짝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이란 저런 이야기들로 웃고 떠들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아웃렛에 와서 구경도 안 하고 우리끼리 떠드는 걸 보니, 우리는 순수하게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했나 “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친김에 부모님 집에서 저녁식사도 함께 하고, 하룻밤 자고 가기로 했다.


저녁식사는 훈제오리와 미나리무침을 메인으로 각종엄마표 반찬들로 마음도 속도 든든하게 채웠다.

이건 모르고 있던 사실인데, 내가 없는 동안 남동생이 본가에 내려와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마다

그들은 심야시간에 고스톱을 쳤다고 한다.

나는 그 이야기가 황당하고 우스웠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은 사행성 게임이나, 내기, 도박 같은 것과는 관계가 먼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30대의 난 고스톱의 룰조차 모르고 해 본 적도 없고, 그들도 경험이 있다한들, 휴대폰게임으로 자동으로 치는 고스톱이 전부였을 것이다.

아무튼 마음만 타짜들인 그들의 게임초대에 한번 응해보지 않을 슈 없었다.

10원짜리 48개를 각각 16개씩 나눠가지고 풋내기타짜들의 전쟁이 시작 됐다.

실력을 갖추지 못한 세 사람이 모였음에도 화투패와 화투패가 착 맞아떨어지는 소리와, 각자가 입으로 내는 효과음, 땀이 맺히는 이마와 눈을 굴리는 소리가 영화 타짜는 비교도 안될 만큼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장장 5시간 동안 10원짜리들이 오가며, 우리 세 사람에게 졸음이 찾아왔을 때 우리들의 승부는 끝이 났다. 남은 건 뻐근한 눈동자와, 웃음 속에 알이 배긴 얼굴근육, 그리고 소중한 시간들이 마음에 남았다.


별로 특별한 날이 아닌 주말이었다.

그저 가족과 보내는 조금 추운 토요일이었지만,

아주 따뜻한 밤이었다.

베란다 창 밖으로 흩뿌리는 눈처럼,

그 시간의 따뜻함이 내 마음이 소복소복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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