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한 판단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대하여

그때는 맞고, 지금은 아직 모르겠다.

by 이수염

나는 항상 좋고 나쁜 것을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내가 좀 답답했다. 오죽했으면, 어린 소년이었던 나는 문방구에 들러 사고 싶은 연필을 그저 보기만 하거나, 조금 적극적인 날에도 사고 싶은 그 연필을 만지작거리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주인아주머니가 나에게 “ 너 그 연필 사고 싶니?” 하고 말을 건네오면, 우물쭈물하다가 문방구를 도망치듯 나오기 일쑤였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분명히 하기 시작했다. 명확하게 호불호를 판단하고 선택하고 표현하며, 나를 만들어 갔다.

현재에 나는 여전히 호불호가 분명한 사람으로 타인에게 비치고, 스스로도 그런 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나의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분명함이나 명확함이라는 모양에 속아 사유와 판단에 자율성이 사라지고, 그저 고집쟁이와 편협한 생각에 빠진 사람으로도 보인다. 그렇다. 나는 분명 좋고 싫음이 명확한 나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시대가 급변함에 따라 사람들의 취향이나 기호도 다원화되기에 이르렀다. 다원화된다는 것은 우리가 좋다 혹은 나쁘다에 대해 판단할 거리가 늘어간다는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의 호불호 또한 확실해지고, 그것을 선택하는 판단 역시 매우 빨라진다.


“ 좋은 것은 좋고, 나쁜 것은 나쁘다”

라는 문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문장에 동의하는 것은 매우 쉽다. 말 그대로 좋은 것은 좋아 보이고, 나쁜 것은 나 빠보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몹시 단정하고, 빠르고, 무엇보다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둘 중을 하나를 선택하여 판단할 수 있다는, 세상을 분류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엄청난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의 내가 전면에 내세웠던 문장에 대한 판단을 유예하려 한다. 어쩌면 사실은 꽤 오랫동안 생각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나는 저 문장에 동의를 하지 못하겠다.


좋고 나쁜 것은 고정된 성질이 아니다.

시간이 바뀌면 의미가 달라지고, 관계가 달라지면 의미도 달라진다. 분명 옳다고 믿었던 선택이 나중에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기도 하고, 분명 잘못이라고 믿었던 선택이 나를 다른 자리로 데려다 놓기도 한다.

또 같은 행동이 어떤 순간에는 책임이 되고, 어떤 순간에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문제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언제, 누구에게, 어떤 맥락에서였는가에 더 가깝다.

이러한 관점은 상대주의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유동성의 인정에 가깝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

라고 했고, 불교는 모든 것이 변한다는 무상을 말했으며, 니체는 선과 악이 모두 고정된 것이 아니라 힘과 관점 속에서 계속 재편된다고 보았다.


그러니까 이러한 질문은


“누가 옳았는가?” 가 아니라

“언제까지 옳았는가?”에 가깝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에서도, 유동성의 인정에 관해 생각해 봐야 하는 상황들을 마주하게 된다. 사회에서도 명확한 판단인척 하는 흑과 백의 논리는 만연하다. 역시 선과 악, 흑과 백, 내편과 네 편, 옳은 쪽과 틀린 쪽, 중간은 의심받고, 질문은 배신이 된다. 조심스럽게 말하면 회피하는 사람이 되고, 맥락을 이야기하면 변명으로 취급된다. 이러한 구조 안에서 스스로 생각하려는 자리는 점점 사라진다.


나 역시 호불호를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을 연습하다 보니 현재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나라는 사람의 모양이 확립되어 가는 것은 흙으로 도자기를 빚어내서 완성시켜 가는 것처럼 기쁜 일이지만, 때때로는 나라는 사람을 좋고 나쁨, 선과 악, 시시비비에 묶어 형태를 단정 짓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나의 의견이 확신이 아니라 점점 고집이 되기도 하였다. 한번 판단을 내린 것을 다시 보려면 너무 많은 것을 철회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복잡한 상황을 보려 하지 않았고, 상대의 변화 가능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흑과 백으로 나누는 것이 훨씬 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확실함이라는 모양으로 나를 기만하고 있는 단정적인 판단 앞에서 멈추려 한다.

그리고 이 판단이 나를 보호하는 생각인지 아니면 나의 사유와 판단을 멈추게 하는 방어인지 묻기로 했다.

옳고 그름보다 이 판단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것인지를 먼저 묻기로 한다.


좋은 것은 언제든 안 좋아질 수 있고, 나쁜 것 역시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될 수 있다. 그 불안정한을 견디지 못할 때, 우리는 흑백을 선택하고, 파벌을 만들고, 타인을 해친다.

생각이 굳는 순간은 항상 가장 확신에 찬 얼굴로 찾아온다. 때문에 우리는 더 경계해야 한다. 선택과 판단이 쉬워질수록, 나는 덜 생각하고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많은 선택을 빠르게 해야 하는 우리.

어쩌면 중요한 판단을 해야 하는 것들을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이라는 착각에 기대어

경솔하게 인생을 지나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생각에 자리를 내어주자.

우리는 빠르게 많은 선택과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이 설 자리를 만들어 주고,

이 순간에 이 판단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 줄 것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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