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자랑거리였던 사람의 회고록
조금 부끄럽지만 솔직한 나의 이야기를 하겠다.
나의 어머니인 그녀에게도,
그녀의 아들인 나에게도,
위로와 안식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담담하게 적어본다.
이 글의 끝맺음으로부터 우리에게
조금 더 안온한 날들이 있기를.
나는 2남 중 첫째로 태어났다.
태어나는 순서는 내가 정할 수 없는 것이지만, 줄곧 장남이라는 자리가 부담스러웠다.
대부분의 부모님이 그렇듯 나 역시 그들의 큰 축복이었다고 한다. 내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내가 태어났을 때 이곳저곳에 연락을 돌려 자랑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내 부모의 자랑거리였던 것이다. 나는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자랑거리가 되려고 꽤나 긴 시간을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은 그래도 꽤나 그것을 잘 유지해 왔던 것 같다. 솔직하게 말하면, 뼈를 깎는 노력 정도는 하지 않았지만, 글짓기 대회나 미술대회에서 입상을 한다거나, 학급임원을 한다거나, 성적이 전교권이었다거나, 인성적으로도 조용하고 차분하고 동생을 잘 챙기는 그런 아이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만큼, 기대도 그만큼 받으며 성장했다. 그래서 그런 탓일까? 솔직히 좀 버거웠다. 만약 내가 기질적으로 외향적이었다면, 나름대로 기대받는 것을 즐기며 성장해왔겠지만, 솔직히 나는 내향적이었다. 그래서 그 모든 게 과업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나는 헌신적인 부모의 열과 성을 다하는 사랑 속에서 자랐다. 의젓하다거나, 장남답다거나, 똑똑하다, 착하다, 순하다 등의 수식어가 나를 설명하는 말이 되었다.
실제로 그렇냐고 물어본다면, 그렇지 않다.
나는 그냥 조용하고 소심한 내성적인 아이일 뿐이었다.
고슴도치 제 새끼 함함한다는 말처럼, 나의 부모님은 나를 그렇게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기대에 부응하려는 나의 액션도 한 몫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꽤나 긴 시간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부응하기 위해 살았다. 다행히도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원래 내가 그런 줄 알았다. 나는 그들에게 싫다는 말보다는, 나도 그게 좋아라는 말이나 행동을 통해 그들이 기뻐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었던 것 같다. 가족, 친구, 연인 등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들이 꽤 긴 시간, 나의 내면을 몰랐던 것을 보면, 사실 나는 연기에 소질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메서드 연기를 거의 평생에 걸쳐 한 셈이다.
어느 시점이 되자,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만든 내 이미지는 나의 족쇄가 되었다. 물론 메소드연기를 하는 모습 중에서도 스스로 만족한 모습도 있다. 자신감 넘치는 태도라던지….(지금 생각해 보니 딱히 모르겠어서 넘어가겠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시점에 나는 내 안에서 미움과 원망 따위가 자라는 것을 느꼈다. 나는 돌변을 선택했다. 이대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미워할 것만 같아서, 나는 여태까지와 다르게 착한 아들이 아닌 나쁜 아들이 되어야 했다. 아마 이 시기에 부모님. 속을 가장 많이 상하게 했을 것이다. 나름 모범생이고, 착한 아들이 갑자기 돌변했으니까. 사춘기라면 사춘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시점부터 나에 대한 사유를 많이 하기 시작했으니까.
내면의 괴리 속에서도 나는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꽤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었다 항상 열정적이고, 뭐든 잘했으며, 어린 나이에 비해 직장 내에서 직급도 높은 편이었다. 어리지만 항상 당당하고 멋있는 그런 여성이었다. 항상 귀밑을 조금 넘는 칼단발이나, 숏컷 느낌으로 머리를 했는데, 옷을 잘 차려입는 탓인지, 그 헤어스타일이 오히려 세련되어 보였다. 하이힐을 신고 빠른 템포의 걸음으로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걸었다. 눈썹은 약간 산이 있는 둥근 곡선으로 그리고 다녔는데, 날카로운 눈매에 어우러진 모양새가 시원하고 강한 인상을 주었다. 말투 역시 아나운서처럼 발음이 또박또박 들려서, 그녀의 하이힐 소리만큼이나 시원시원했다.
엄마는 교육열이 높은 학부모였는데, 내가 성적이라는 것에 얽매이기 전까지는 그녀의 높은 교육열이 나에게는 무척 선물 같았다. 새로운 책들을 틈틈이 사주기도 하고, 60권짜리 전집을 선물로 주기도 하였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나는 책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지식을 쌓는다는 개념보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듯 좋아했던 것 같다. 책의 종류는 가리지 않았다. 역사책에 빠져있을 때도 있었고. 생물에 대해 설명하는 과학책이나, 고전문학, 동양철학 등 다채로웠다.
독서는 어렸을 때 유일하게 엄마의 기대와 나의 기호가 순수하게 맞아떨어진 행위였다. 나는 즐겁게 독서를 했고, 그녀 역시 내가 독서하는 것을 매우 만족해했다. 당시 직장에서 본부장이었던 그녀가 아침조회 때마다 내 이야기를 하며 조회를 했으니, 당시 나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는지 알 수 있다.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행위가 그녀의 자랑거리라는 것이 매우 좋았다. 딱 이거 한 가지였지만.
이런 안타까운 사실이 후에 내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온전히 나를 위한 선택을 하기에도,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기에도 어정쩡한 선택들을 하게 했던 것 같다. 나는 누구를 실망시키는 것이 무서운 아이인 채로 성인이 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가족이 주는 사랑과 내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반거짓의 인생을 살게 된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실 부모님이 미웠던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그들의 멋진 부분만을 자랑스러워한 것 같아서 미워할 만한 입장이 못 되는 듯하다. 나의 그간의 삶도 우리가 사랑해 온 흔적이라 느낀다.
성인이 된 나는 딱히 자랑할만한 것이 없는 성인이 되었다. 장학생으로 갔던 대학교도 중퇴하고, 실패한 어학연수와, 한계를 느낀 타국에서의 생활, 불합격한 경찰시험까지, 많은 실패와 타인들에게 제침을 당하는 삶을 살았다. 그 간의 애매한 태도는 나의 삶을 애매한 위치에 데려다 놓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애매하게 헤맨 만큼, 적어도 그만큼의 내 땅을 얻은 셈이다. 결국 나는 내가 딛고 일어설 대지가 있는 것이니까,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지만, 충분하다.
다만, 이제는 스스로를 원동력으로 살아가는 내가 되려 한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 처음이기에 사랑하는 대상을 대하는 것 역시 서투르다. 바람직한 행동과 태도는 있겠지만,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 대단한 사람이지, 하지 못한다고 해서 못난 사람이 아니다. 엄마와 나는 어쩌면 서로가 서로에게 자랑거리이고 싶었던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삶의 모든 것이 초면이기에 낯을 가리고, 실수를 범하고, 비굴해지고, 치사해지지만, 그럼에도 그 중심에 사랑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꼭 안아줄 수 있는 마음을 생기게 해 준다.
모두 각자의 삶을 무언가를 원동력 삼아 부단히 노력해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디선가 이런 문구를 보았다.
“ 엄마는 아이를 낳는 것은 맞지만,
아이보다 나은 인간은 아니다. “
그녀도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원동력 삼아,
부단히 노력하며 서툰 삶을 살아온 한 여자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는 이제 멋진 엄마를 놓아주었다.
대신 안쓰러운 엄마, 애틋한 엄마, 귀여운 엄마를 마주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그녀의 모습도 나에겐 사랑스러운 모습이고,
여전히 자랑거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