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구조의 상관관계

하나의 개인, 둘의 구조

by 이수염

인간은 개인으로 태어나지만, 개인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두 사람 이상이 모이는 순간, 관계는 자연스럽게 구조를 형성한다. 역할이 생기고, 기대가 만들어지며, 책임의 방향이 정해진다. 이것은 의도하지 않아도 발생하는 현상이다. 구조는 누군가가 설계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함께 존재하는 순간 자동으로 생성된다.


우리는 흔히 구조를 국가나 제도, 조직과 같은 거대한 시스템에서만 찾으려 한다. 그러나 구조는 사적인 영역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가족 안에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위계가 있고, 연인 사이에는 감정의 주도권과 책임의 비대칭이 생긴다. 친구 관계에서도 누군가는 결정권을 쥐고, 누군가는 그 결정에 따르는 위치에 놓인다. 구조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문제는 인간이 구조를 형성하는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구조를 조율하는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데 있다. 조율자는 구조를 대표하는 위치에 서지만, 그 순간에도 그는 여전히 개인이다. 욕망과 신념, 감정과 이해관계를 지닌 채로 구조의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이때 발생하는 것이 인간의 이중성이다. 개인이면서 구조의 얼굴이 되는 존재, 이것이 조율자의 본질이다.


가장 극단적인 구조는 국가다. 국가는 개인들의 집합이지만, 개인의 의지를 초과하는 힘을 행사한다. 그 구조를 조율하는 자들은 흔히 지도자, 입법자, 행정가라 불린다. 이들은 구조를 조정하는 역할을 맡은 순간, 개인의 입장을 앞세워서는 안 된다. 구조를 조율하는 위치에서 개인을 내세운다는 것은, 그 역할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만약 개인의 신념과 감정이 구조의 판단 기준이 된다면, 조율자는 더 이상 조율자가 아니라 단지 권력을 가진 개인에 불과해진다.


그래서 인간은 조율자를 통제하기 위해 또 다른 구조를 만든다. 국가에는 국회와 사법부가 있고, 기업에는 주주와 이사회가 있다.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권력, 판단을 감시하기 위한 판단의 구조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큰 문제가 드러난다. 그 구조를 구성하는 주체들 역시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통제자는 또 다른 개인이며, 그 역시 개인성과 구조적 위치라는 이중성을 벗어날 수 없다.


결국 인간은 인간을 통제할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은 인간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 이 실패는 제도가 미숙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제도의 재료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교한 장치를 만들더라도, 그것을 운용하는 주체가 인간인 이상 개인의 판단과 이해관계는 구조 속으로 스며든다.


이 지점에서 많은 논의는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하나는 개인의 선택과 책임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잘못이 발생하면 그것은 개인의 도덕성과 판단의 문제라는 주장이다. 다른 하나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입장이다. 개인의 선택은 구조가 허용한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며, 문제의 원인은 구조에 있다는 시선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 둘 중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다.


개인은 구조를 완전히 벗어날 수 없고, 구조는 개인의 판단 없이 작동할 수 없다. 인간의 선택은 자유롭지만, 그 자유는 항상 조건부다. 구조는 인간의 모든 행동을 결정하지는 않지만,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지형을 만든다. 이 지형을 무시한 채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문제를 반복하게 만들 뿐이다.


그래서 구조에 대한 논의는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손실 관리의 문제에 가깝다. 인간의 이중성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대신 그 이중성이 어디에서 증폭되고, 어떤 경로로 전파되며, 어느 지점에서 가장 큰 피해를 낳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구조란 인간을 이상적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인간이 최악의 선택을 하더라도 그 피해가 무한히 확산되지 않도록 막기 위한 완충 장치다.


조율자에게 요구되어야 할 것은 도덕적 순결함이 아니다. 오히려 개인을 구조로부터 최대한 분리하려는 노력, 그리고 자신의 개인성이 구조 전체로 전이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제한하는 태도다.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조율자의 자리에 오른 개인은 이미 그 직무와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점점 확신하게 된다. 인간 사회의 문제는 ‘나쁜 개인’보다 ‘개인을 전제로 작동하는 구조’에서 반복된다. 그렇기에 구조를 말하는 일은 개인을 공격하기 위한 일이 아니라,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다. 구조를 본다는 것은 인간을 비관하는 태도가 아니라, 인간을 과대평가하지 않는 태도다.


인간은 개인이지만, 인간은 무리를 이루며 살아간다. 이 사실을 부정하는 순간, 우리는 같은 문제를 다른 얼굴로 반복하게 된다. 구조를 말하지 않는 사회는 결국 개인을 소모하고, 개인을 말하지 않는 구조는 결국 폭력으로 변한다. 그 사이의 긴장을 직시하는 일,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사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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