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할 수 없는 것에 선을 긋는 일
우리는 문제가 발생하면 본능적으로 묻는다.
“그래서 누가 책임져야 하지?”
이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 이미 수많은 전제를 깔고 있다. 책임은 특정 개인에게 귀속될 수 있으며, 그것은 비교적 명확하게 나뉠 수 있고, 올바르게 배분되기만 하면 사태는 정리될 수 있다는 믿음. 그러나 현실에서 책임의 배분은 늘 지연되거나 왜곡되거나, 혹은 아예 실종된다. 책임을 나누려는 시도는 왜 이렇게 자주 실패할까.
책임은 표면적으로는 행위에 따라 결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누가 무엇을 했는지, 어느 단계에서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이 일련의 과정은 마치 도식화가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책임이 문제 되는 지점은 언제나 행위 이후다. 결과가 발생한 뒤, 우리는 단순한 인과관계가 아니라 의미를 묻기 시작한다. 그 선택은 불가피했는가, 회피할 수 있었는가, 그 사람은 알면서도 했는가, 아니면 몰랐어야 했는가. 이 순간부터 책임은 계산의 대상이 아니라 해석의 대상이 된다.
행동은 나눌 수 있지만, 책임은 나뉘지 않는다.
업무는 분장할 수 있지만, 책임은 분절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책임은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행위에 부여되는 윤리적 의미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실패나 사고는 단일 원인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구조적 결함, 반복된 관행, 암묵적인 합의, 개인의 판단 착오가 겹겹이 쌓인 결과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한 사람의 얼굴을 찾는다. 시스템을 만든 사람, 최종 결재자, 혹은 가장 눈에 띄는 위치에 있던 사람. 이 과정에서 책임의 배분은 분석이 아니라 서사로 변한다. 이야기는 복잡한 원인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이야기는 언제나 단순한 악역을 필요로 한다.
책임을 배분하려는 시도가 어려워지는 첫 번째 이유는 여기 있다. 현실은 공동 책임의 구조인데, 우리의 언어는 개인 책임에 최적화되어 있다. 구조를 말하면 책임이 흐려진다고 느끼고, 개인을 지목하면 공정해졌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이는 해결이 아니라 안도의 문제다. 누군가를 특정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시스템을 고치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을 얻는다.
또 하나의 문제는 책임의 배분이 행정이 아니라 도덕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순간 발생한다. 역할과 권한을 나누는 것은 규칙의 문제지만, 책임을 나누는 순간 우리는 평가를 시작한다. 누가 더 성숙했어야 했는지, 누가 더 많은 권력을 가졌는지, 누가 침묵했는지, 누가 눈을 감았는지. 이 질문들은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입장을 드러내도록 강요한다. 그래서 책임 논의는 빠르게 분열된다. 각자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상황을 두고도 어떤 이는 “그 정도면 어쩔 수 없었다”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알고도 외면한 건 책임이다”라고 말한다. 이 차이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 감수성의 차이다. 책임은 사실보다 감각에 더 가깝다. 그러니 배분이 합의에 이르기란 애초에 어렵다.
책임을 느끼는 방식 또한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사소한 실패에도 자신을 과도하게 탓하고,
어떤 사람은 명백한 과실 앞에서도 구조 뒤에 숨는다.
책임은 객관적으로 동일한 무게로 분배되지 않는다. 개인의 성향, 두려움, 양심, 사회적 위치에 따라 체감되는 무게가 다르다. 그래서 외부에서 책임을 선 긋듯 나누는 순간, 누군가는 이미 충분히 무너진 상태이고, 누군가는 여전히 가볍다. 이 불균형은 또 다른 불신을 낳는다.
우리는 책임의 배분을 공정의 언어로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감정의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분노를 어디에 둘 것인지, 불안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 불편한 감정을 어떤 이름으로 봉인할 것인지. 책임 논쟁은 종종 문제 해결이 아니라 감정 처리의 장이 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책임을 ‘나누는 법’보다 ‘전가하는 법’에 익숙하다는 점이다. “다 같이 결정했다”는 말은 공동 책임의 선언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개인 책임을 희석하는 방패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구조를 말할 때조차 우리는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 구조를 호출한다. 이 반복 속에서 책임의 배분은 점점 신뢰를 잃는다.
그래서 책임을 나누자는 말은 때로 공정의 약속이 아니라 면책의 예고처럼 들린다. 누군가는 책임이 사라질 것을 기대하고, 누군가는 또 한 번 떠안게 될 것을 직감한다. 이 불신 속에서 배분은 시작도 하기 전에 무너진다.
결국 책임의 배분화가 어려운 이유는 책임이 명확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책임은 지나치게 명확하기 때문에 어렵다. 그 명확함이 우리 각자의 윤리, 두려움, 이해관계를 정면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책임을 나눈다는 것은 단순히 비율을 정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행위다.
그래서 사람들은 책임을 나누는 대신 미루고, 흐리고, 침묵한다. 책임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책임이 너무 무겁기 때문에.
책임은 계산될 수 없는 것을 계산하려는 시도에서 늘 저항을 일으킨다. 구조 속의 개인이라는 말이 편안하게 들리는 이유는, 그 말이 개인을 이해해 주는 동시에 구조를 고치지 않아도 되는 면책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말이 날카롭게 들리는 이유는, 그 말이 구조를 보지 않으면서도 즉각적인 도덕적 만족을 주기 때문이다.
이 사이 어디쯤에서 우리는 늘 흔들린다.
책임을 정확히 나누고 싶지만,
정확히 나누는 순간 감당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걸 알기 때문에.
어쩌면 책임의 배분이란 완성될 수 있는 답이 아니라, 끝없이 갱신해야 하는 질문인지도 모른다. 누구에게 얼마나 묻는가 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다시 묻지 않게 되었는가를 돌아보는 일이다. 책임이 사라진 자리에는 종종 질문의 포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