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형태와 밀도

영화 〈만약에 우리〉를 보고

by 이수염

사랑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너무 쉽게 결과를 묻는다.

그래서 함께 남았는지, 끝났는지, 다시 이어졌는지를 기준으로 사랑의 성패를 가늠한다.

이 질문은 효율적이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놓친다.

사랑을 관계의 결과물로만 이해하는 순간, 그 과정에서 발생했던 감정의 밀도와 그 사람이 그 시기에 감당할 수 있었던 삶의 조건은 모두 생략되기 때문이다.


〈만약에 우리〉는 이 익숙한 질문을 비켜 간다.

이 영화는 사랑이 성공했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사랑이 어떤 상태로 존재했는지,

그리고 그 상태가 어떻게 사람을 남겼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는 연애 영화라기보다 사랑의 형태론에 가까운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나는 가벼워지지도, 더 깊어지지도 않는 묘한 정지 상태에 머물렀다. 정리가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함부로 정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로의 사랑의 밀도를 가볍게 볼 수 없었고, 나나 상대의 그릇을 감히 작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1. 그 시기에 알맞았던 사랑 ― 미도달의 형태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의 사랑은 우리가 흔히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라고 부르는 관계다.

타이밍은 어긋났고, 말은 늘 한 박자씩 늦었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서로를 놓치기를 반복하며 아슬아슬하게 줄 위를 걷는다.


이 관계를 두고 미성숙했다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하지만 그 평가는 사랑을 결과 중심적 사고로 환원할 때만 가능하다.

이들의 사랑은 미성숙해서가 아니라, 그 시기의 삶에 정확히 맞아떨어진 밀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충분히 사랑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

다정한 사람들일수록 자신의 감정보다 상대의 상태를 먼저 고려한다.

그래서 사랑은 점점 자기표현이 아니라 자기조절의 문제로 변한다.


배려는 반복되고, 그 배려는 점차 말하지 않음이 된다.

말하지 않음은 오해를 만들고, 오해는 미움으로 변한다. 이 미움은 사랑의 반대가 아니다.

사랑이 너무 가까이 있었을 때 발생하는 마찰에 가깝다.사랑과 미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

이 상태는 감정적으로 가장 고단하지만, 윤리적으로는 가장 정직한 상태이기도 하다.

기대가 있었고, 그 기대가 좌절되었기에 미움이 생긴다. 기대가 없었다면 미움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놓아버린다.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더 이상 감당할 여력이 없어서.

여기서 이 영화는 한쪽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놓아버린 사람과 잡지 못한 사람을 동시에 남겨둔다.


나는 이 장면에서 놓아버린 상대와 끝내 잡지 못했던 나를 함께 떠올렸다.

이 관계에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다.

다만 그 시기의 삶이 허락한 만큼만 사랑할 수 있었던 두 사람이 있을 뿐이다.


이 사랑은 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미도달은 실패라기보다 존재론적 한계에 가깝다.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삶의 조건이 만든 경계였기 때문이다.


2. 미도달 이후에도 남는 사랑 ― 관계의 잔존


이 사랑은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형태로 남는다. 함께 살지는 못했지만,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서로의 집이 되어주었던 시간.

이 감각은 관계의 지속 여부로는 측정되지 않는다.

이것은 사랑이 기능이 아니라 상태였다는 증거에 가깝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결국 안 됐으면 그만큼이었겠지.”

하지만 이 말은 사랑을 지나치게 성과 논리로 환원한다. 많은 사랑들은 얕아서 끝난 것이 아니다.

그때의 삶이 이미 가득 차 있어서 더 담을 수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사랑은 끝났지만 가벼워지지 않는다.

놓았지만 왜소해지지도 않는다. 그저 도달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하나의 확신에 머문다.

서로의 사랑의 밀도를 가볍게 볼 수 없고,

나나 상대의 그릇을 감히 작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

이 태도는 자기합리화가 아니라

사랑을 윤리적으로 기억하려는 선택에 가깝다.


3. 도달을 요구하지 않는 사랑 ― 완성의 형태


이 영화에는 연인들의 사랑과 전혀 다른 좌표에 있는 인물이 등장한다. 구교환의 아버지다.

그는 아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 사랑은 기대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결과를 요구하지 않는다.

아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을 평가하지 않는다.

이 사랑은 통제하지 않으면서도 무관심하지 않고,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방치하지 않는다.

일종의 윤리적 거리 위에 놓여 있다.


더 인상적인 것은 여주인공을 대하는 태도다.

그는 그녀를 아들의 연인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도와야 할 대상도, 보호해야 할 존재도 아니다.

그저 타인을 타인으로, 하나의 인간으로 대한다.


이 태도는 감정의 크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관계에 대한 윤리적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랑은 도달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가까워지지 않아도 괜찮고, 멀어져도 상처받지 않는다.


이 사랑은 미완이 아니다.

도달하지 못했음에도 이미 완성된 상태로 존재한다.

존재 그 자체로 사랑이 성립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4. 미완과 완성 ― 사랑의 서열을 거부하며


이 영화는 사랑의 우열을 나누지 않는다.

연인들의 사랑이 부족했고, 아버지의 사랑이 더 크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두 가지 질문을 남긴다.

왜 우리는 연인 관계에서만 사랑의 완성을 요구하는가.

왜 사랑은 끝까지 가지 못하면 미완으로 불려야 하는가.여주와 남주의 사랑은 도달해야 한다는 전제를 가진 사랑이다. 그래서 미도달은 아픔과 성장으로 남는다.

이 사랑은 시간 속에서 사람을 변화시킨다.


반면 아버지의 사랑은 도달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닿지 않아도 이미 사랑이다.

이 사랑은 시간 속에서 형태를 바꾸지 않는다.


이 둘은 실패와 성공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랑의 형식이다. 하나는 미완으로 남아 사람을 성장시키고, 하나는 완성된 상태로 사람을 지탱한다.


에필로그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나는 두 문장에 머물렀다.


우리는 서로를 감당하지 못했을 뿐,

사랑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도달하지 못한 사랑이 모두 미완이라면, 도달을 요구하지 않는 사랑은 이미 완성된 상태로 존재한다.


〈만약에 우리〉는

사랑을 정리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사랑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흔하지만 깊다.

그리고 결국 우리들의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