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이름으로 선택된 불안

우리는 왜 좋은사람을 두고 불안한 사랑을 선택할까?

by 이수염

솔로지옥, 환승연애, 하트 시그널, 그 밖의 수많은 연애 프로그램들의 반응이 뜨겁다.


요즘 연애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사람들이 정말로 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가 선명해진다.

그것은 연애의 성공도, 사랑의 완성도 아니다.

오히려 선택 이전의 흔들림, 확정되지 않은 마음,

그리고 불안이 유지되는 시간이다.


누군가는 꾸준하다.

감정의 방향이 분명하고, 태도가 일관되며, 상대를 존중한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보며 말한다.

“좋은 사람이네.”

하지만 그 말은 칭찬이라기보다 분류에 가깝다.

그 사람은 이야기의 중심에서 빠르게 밀려난다.


반대로 마음이 정해지지 않은 사람, 선택을 유보하고, 여지를 남기고, 감정을 확답하지 않는 사람에게

시선이 오래 머문다. 출연자도, 대중도, 심지어 비판하면서도 그 불안한 관계를 끝까지 따라간다.


이 장면 앞에서 나는 사람들이 설렘을 말할 때,

사실은 불안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나의 행복이 중요하다.”

이 문장은 분명 옳다.

그런데 이 명제가 실제 선택의 순간에 작동할 때,

이상하게도 안정은 그 안에서 빠져버린다.


대신 남는 것은 불확실성, 긴장, 결핍, 그리고

내가 이 상황에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는 욕구다.


불안한 상대를 보며 우리는 생각한다.

이 사람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그리고 그 미완의 구조 속에 자기 자신을 하나의 조각처럼 넣고 싶어진다. 내가 들어가면 이 관계가 안정될 것 같고, 내가 선택되면 이 사람은 달라질 것 같고,

나의 존재가 이 불안을 정리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믿는다.


이 지점에서 인간은 스스로를 과대평가한다.

불안한 상황에 자신이 들어가 그 상황을 안정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이미 안정된 상대를 두고도 나에게만은 불안해지기를 은근히 기대한다.


“나는 예외일 것이다.”

“나는 다르게 작용할 것이다.”

“이 사람의 불안은 나로 인해 멈출 것이다.”


하지만 이 믿음은 상대를 향한 이해라기보다

자기 영향력에 대한 신념에 가깝다.

그래서 어떤 선택들은 사실상 불안의 일부가 되는 선택임에도

“내가 원해서”,

“나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말로 포장된다.

그 선택이 정말 행복을 향하고 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내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감각이다.


이쯤에서 질문은 바뀐다.

인간은 정말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걸까?

아니면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사는 걸까?


혹은 더 정확한 질문.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내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감각 자체가 이미 행복으로 오인되고 있는 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인간의 행복은 구조적으로 모순에 빠진다. 자신의 존재 영향력을 증명하는 상태를 행복이라고 정의하는 순간, 행복은 도달과 동시에 다시 증명해야 할 과제가 된다.


“아직도 내가 필요한가?”

“아직도 내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이 질문이 사라지지 않는 한, 행복은 유지될 수 없다.

오히려 불안을 필요로 하게 된다.

불안이 있어야 나의 영향력을 증명할 무대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행복에 도달하는 순간에도 다음 불안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다.

안정은 지루해지고, 불안은 다시 선택된다.


이 구조 안에서 행복은 결코 도착지가 될 수 없다.

행복은 수행이 되고, 수행은 실패 가능성을 내장한다.

그래서 그 행복은 언제나 위태롭다.


반대로 정말 안정적인 행복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유지되는 상태다.

내가 애쓰지 않아도, 내가 증명하지 않아도,

상대의 일관성과 구조가 나를 지탱하는 상태.


그래서 그 행복은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고,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 자리를

행복으로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나친다.


연애 프로그램은 이 모든 것을 압축된 형태로 드러낸다.우리는 출연자들의 선택을 보며 고개를 젓는다.

그러면서도 그 선택을 이해해버린다.

왜냐하면 그 구조가 너무나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이 문장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는 행복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선택하는 것은 행복이 유지될 수 없는 자리다.

그리고 그 선택을 자유라고 부르고, 사랑이라고 부르고,나의 행복이라고 부른다.


행복은 그렇게 매번 증명해야 할 이름으로만 남고,

우리는 그 이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불안을 선택한다.

어쩌면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행복에 도달하지 않기 위해 가장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내며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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