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비슷한 사람과 비슷한 관계를 맺고 아파할까?

사람은 달라지는데 반복되는 관계?

by 이수염

쓰레기 콜렉터나, 똥차콜렉터라는 말이 있다.

혹은 주변인들로 공식 사랑꾼이라고 인정받지만,

정작 관계는 매번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왜 그럴까?

우리는 같은 사람을 반복해서 만나는 걸까?

아나면 같은 역할을 반복해서 하게 되는 걸까?



관계가 끝난 뒤에야, 나는 언제나 조금 늦게 이해한다.

그 사람을 잃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 곁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기 때문이다.


처음엔 늘 비슷하다.

새로운 얼굴, 다른 말투, 다른 삶의 궤적. 분명히 처음 만난 사람인데, 어느 순간, 익숙한 자리에 내가 앉아 있다는 걸 느낀다.

설명하는 사람, 이해하는 사람,

먼저 괜찮아지는 사람, 끝까지 말하지 않는 사람.


그래서 나는 오래도록 우리가 정말 같은 사람을 반복해서 만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질문은 조금 달라졌다.

우리는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 같은 역할을 알아보고, 그 자리에 다시 앉는 건 아닐까.


사람은 달라지는데, 관계의 구조는 어쩐지 늘 비슷하다. 그건 우연일 수도 있고, 아마도 내가 가장 익숙하게 수행해 온 방식일지도 모른다. 나는 늘 그 역할을 잘 해냈고, 잘 해냈기 때문에 더 자주 맡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역할이 나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잘 해내는 역할이 반드시 나에게 맞는 역할은 아니라는 사실을 관계가 끝난 뒤에야 조용히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다른 역할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말은 다른 사람이 되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나를 바꾸겠다는 다짐도 아니다.


그저 이런 감각에 가깝다.

이 관계에서 나는 이런 부분은 잘했지만, 이 지점은 너무 힘들었다. 이만큼은 나였지만, 이만큼은 나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감각은 다음 관계로 갈 때 아주 조금, 나를 다른 방향으로 밀어준다. 그건 계획도 아니고 실험도 아니다. 관계가 끝나고 남은 기억이 자연스럽게 나를 이동시키는 방식이다.


나는 일부러 다른 역할을 맡아본 적이 없다.

다만 관계를 통과할 때마다, 내가 너무 과하게 쥐고 있었던 것과 부족해서 상처받았던 것을 조금씩 분별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역할은 줄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은 덜어내고, 어떤 것은 조금 더 키워본다.

늘 이해하던 사람이 처음으로 이해받기를 기다려보기도 하고, 참아오던 사람이 불편함을 말해보기도 한다.

이건 용기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람은 관계를 통해서만, 자기 자신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으니까.


누군가는 말한다. 타인을 경험으로 환원하는 것은 잔인하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관계가 끝났을 때, 우리는 더 이상 함께 있지 않지만,

그와의 기억은 나에게 남는다.

그 기억이 경험이 되는 것은, 의도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사람은 떠나고, 기억은 남고, 그 기억은 나를 바꾼다.

그건 배신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에 대한 가장 솔직한 태도다. 그리고 나는 안다. 내가 덜 다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상대를 덜 다치게 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상처를 덜 받는다는 건, 차가워진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더 조심스러워진다는 뜻이다.

경계를 세운다는 건, 닫힌다는 의미가 아니라

넘지 않겠다는 약속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열려 있으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같은 방식으로 상처를 받지 않고, 같은 방식으로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람. 그건 더 나아지는 일이다.

더 많은 역할을 소화하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같은 역할만 반복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는 것.


우리는 결국 사람을 바꾸며 사는 게 아니라, 자리를 바꾸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자리가 바뀔 때마다, 나의 시야도 조금씩 넓어진다. 타인을 보는 눈과 나를 성찰하는 눈이 동시에 커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 비로소 나는 이 역할이 나였고, 이 역할은 아니었다는 걸 구분하게 된다. 그래서 이제는 관계가 시작될 때보다 끝났을 때의 나를 더 신뢰하게 된다. 그 사람을 떠나보낸 뒤에야

나는 조금 더 나를 알게 되니까.


나는 다른 사람이 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같은 나를 조금 덜 다치게 사용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나를 닫는 대신 조심스럽게 열어준다고 믿는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되지 않았다.

다만, 같은 나로 다른 자리에 서게 되었을 뿐이다.


나와 누군가의 관계에

좋은 자리, 좋은 역할이라는 것은 없지만,

매번 같은 자리에 선다면,

나도, 내 앞에 누군가도

항상 같은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


당신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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