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사랑을 받는 연습

사랑의 전제값

by 이수염

나는 오래도록 사랑을 믿지 못한다고 말해왔다.

혹은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랑은 나에게 필수요소가 아니라고 표현해 왔다.

이 말은 얼핏 보면 사랑을 폄하하는 태도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사랑을 부정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언어에 가까웠다.


사랑을 믿지 못한다는 말에는 언제나 감정의 결핍이 있다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사랑을 조심하게 된 이유는, 사랑이 무엇인지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따뜻하다.

모닥불처럼 사람을 끌어당기고, 가까이 가면 손을 녹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사랑은 불이다.

통제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으며,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반드시 데이게 된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사랑에서 남는 가장 깊은 화상은

가까이 갔을 때가 아니라 밀어냈을 때 생긴다.


나는 한동안 사랑이 와도 밀어내지는 않겠다’는 태도로 살아왔다. 이 정도면 충분히 열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문을 잠그지 않았고, 손을 뻗어오는 마음을 일부러 밀치지도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이 다짐은 생각보다 유약하다는 것을.


사랑은 일정한 거리까지는 다짐으로 유지된다.

안부를 나누고, 웃고, 시간을 보내고, 서로의 표면을 존중하는 단계까지는 의지로 충분히 버틸 수 있다.

문제는 사랑이 깊어질 때다.

상대가 나의 부족한 모습을 보려고 할 때, 내가 관리해 온 이미지 너머로 들어오려 할 때, 혹은 이 관계가 언젠가 끝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올 때.


그 순간부터 다짐은 윤리가 아니라 의지가 되고,

의지는 감정보다 항상 약해진다.

그래서 나는 결국 사랑을 밀어내는 쪽을 선택해 왔다.


사실 내가 두려워한 것은 사랑 그 자체가 아니었다.

사랑 앞에서 내가 통제력을 잃는 상태가 두려웠다.

부족한 모습을 들키는 것, 그럼에도 괜찮다고 말해줄지 말지의 판단을 상대에게 맡기는 것, 나의 가치가 관계의 지속 여부에 따라 흔들릴 수 있다는 감각.

이 모든 것이 하나의 두려움으로 수렴된다.


‘이 상태의 나로도, 나는 유지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사랑이 깊어질수록

상대를 밀어낸다기보다 나 자신을 구조 밖으로 빼내왔다. 사랑이 나를 규정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철회하는 방식으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 조심성이 나를 보호하는 대신

나를 가두고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사랑을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사랑이 들어올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놓은 채, 그 안에서 스스로를 안전하다고 설득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직접 연습하는 대신, 아주 사소한 것들로부터 완벽주의를 내려놓는 연습을 시작했다.

마무리하지 않은 메모를 그대로 두고,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방치하고, 대충 끝낸 하루를 굳이 설명하지 않는 연습.

일부러 미완의 상태를 만들고, 그 상태의 나를 도망치지 않고 바라보는 연습이었다.


이 연습은 생각보다 잔인했다.

사소한 것들은 변명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아직 준비 중이다”라는 말로 가려지지 않는다.

그저 미완인 채로 남아 있는 나를 정면으로 보게 만든다. 하지만 이 연습을 통해 나는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몸으로 배워가고 있었다.


미완이어도, 나는 유지된다.


이 정도로 허술해도 하루는 간다.

설명하지 않아도 관계는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먼저 나를 버리지 않는다.

이것은 사랑을 위한 연습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포기하지 않는 연습이었다.


사랑 앞에서 무너지는 사람들은 대개 사랑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유지되지 않을 나’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사랑이 올 때마다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런 나를 사랑할까?’


이 질문은 겸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 존재를 사랑의 조건 아래에 두는 질문이다.

사랑을 받기 전에 내가 먼저 통과해야 할 심사를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셈이다.

나는 이 질문을

다른 문장으로 바꾸고 싶어졌다.


‘이런 나도 사랑해 주는 네가 고맙다.’


이 문장은 자신감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다. 자기 존재를 전제값으로 두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사랑을 조건의 결과로 보지 않고, 관계 안에서 이미 발생한 사실로 받아들이겠다는 태도.

이 전환이 일어나면 사랑은 더 이상 시험이 아니다.

잘 보여야 하는 무대도 아니고, 버텨야 하는 긴장도 아니며, 언제든 추락할 수 있는 지대도 아니다.

그저 나와 너 사이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감정으로

존재하게 된다.


사랑이 흔들릴 수는 있다. 관계가 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변화 속에서도 나는 협상 테이블에 올라가지 않는다.


사랑은 변해도, 나는 폐기되지 않는다.


결국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완성된 사람이 아니다.

자기 의심이 완전히 사라진 사람도 아니다.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미완의 나를 전제값으로 둘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전제 위에서만 타인의 사랑을 왜곡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의심이 사라진 자리에 감사가 남는다.


‘이런 나를 사랑할까?’가 아니라

‘이런 나도 사랑해 줘서 고맙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사랑은 더 이상 불안의 원인이 아니라 관계의 사실이 된다.


나는 아직도 조심스럽다. 여전히 불 앞에서 망설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사랑을 감당한다는 것은 불에 타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불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 나를 유지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사랑이란,

불에 타지 않기 위해 거리를 재는 일이 아니라

불 앞에서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 법을 묻는 질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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