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안에서 선택과 책임을 지는 법
우리는 한계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 모든 조건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 모든 감정을 지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출발했다. 그 인정은 패배가 아니었다. 오히려 현실을 정확히 보는 태도였다.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착각을 내려놓고, 유한한 조건 위에 서겠다고 선언하는 태도였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안에서 선택을 한다. 그리고 책임을 진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멈춘다.
“어차피 환경이 이런데.”
“내 기질이 이런데.”
“상황이 이랬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조건은 설명이 될 수는 있어도, 면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책임은 결과에 대한 형벌이 아니다. 책임은 선택의 소유다. 우리는 결과를 모두 통제할 수 없다. 그러나 선택은 통제할 수 있다. 적어도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방향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어느 정도’를 너무 작게 본다는 데 있다. 우리는 자주 이렇게 말한다.
“어쩔 수 없었어.”
“그 상황에서는 다 그럴 수밖에 없어.”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감정은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말의 톤은 선택할 수 있었다. 상처는 받았을 수 있다. 그러나 되돌려 주는 방식은 선택할 수 있었다.
피로는 쌓였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이유로 누군가를 밀어내는 태도는 선택이었다. 우리는 종종 결과에 대해서만 책임을 말한다.
“결과가 나쁘면 책임을 져라.”
그러나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 당신은 어떤 선택들을 했는가.
결과 책임은 통제 범위를 벗어난 영역까지 요구한다.
그래서 종종 억울함을 낳는다. 그러나 선택 책임은 다르다. 그것은 내가 쥐고 있던 작은 방향키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인생 전체를 통제하지 못한다. 그러나 한 문장, 한 표정, 한 번의 태도는 통제할 수 있다. 그리고 인생은 대개 거대한 결단이 아니라 그 작은 선택들의 반복으로 만들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행동성’이다. 거창한 결심이 아니며, 인생을 바꾸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작은 방향 전환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이미 한계를 인정했다. 그러니 이제는 변명할 이유가 줄어들었다. 한계를 인정했다는 것은 “내가 전부는 아니다.”를 받아들인 것이고, 동시에 “그래도 내가 일부는 된다.”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 둘을 동시에 받아들이지 못하면 우리는 두 극단으로 흔들린다.
하나는 무력감이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다른 하나는 과대망상이다.
“나는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이에 선다. 우리는 전부는 아니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묻는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택은 무엇인가. 그것은 거대한 도전일 필요가 없다. 대화를 피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먼저 사과하는 것일 수도 있다. 화를 삼키는 대신 설명하는 것일 수도 있다. 침묵 대신 질문을 선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작은 전환은 작아 보인다. 그러나 반복되면 성향이 된다. 성향은 결국 인격이 된다.
우리는 흔히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원래’는 대개 반복된 선택의 결과다.
반복은 자동성을 만들고 자동성은 성격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기질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모든 자동성의 시작에는 한 번의 선택이 있었다. 화를 냈던 첫 번째 순간, 피했던 첫 번째 대화, 미뤘던 첫 번째 약속. 그때 우리는 다른 선택도 할 수 있었다. 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일은 불편하다. 왜냐하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피해자의 자리에서 조금 내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책임은 비난이 아니다.
책임은 주도권이다.
우리가 선택을 소유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대신 소유한다. 환경이, 상황이, 타인이 나의 선택권을 소유한다.
그러면 우리는 항상 반응하는 사람으로 남는다. 항상 늦게 움직이고, 항상 뒤에서 설명하는 사람으로 남는다. 그러나 선택을 소유하는 순간, 우리는 반응하는 사람이 아니라 결정하는 사람이 된다. 결정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이번에는 이렇게 해보겠다.” 그 한 문장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완벽을 약속하지 않는다. 우리는 변화된 인간이 되겠다고 선언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말한다.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하겠다. 그 차이는 미세하다. 그러나 그 미세함이 누적되면 방향이 달라진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결과를 끌어안고 자책하는 것이 아니다. 선택을 끌어안고 다시 시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실패할 수 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도 있다.
감정에 또 휘둘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조차 우리는 말할 수 있다. “이번 선택은 내가 했다.” 이 문장은 무겁다. 그러나 동시에 가볍다. 무거운 이유는 핑계를 놓아야 하기 때문이고, 가벼운 이유는 주도권을 되찾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거대한 혁명을 말하지 않는다.
작은 행동을 말한다. 연락을 미루지 않는 것.
사과를 늦추지 않는 것. 말을 날카롭게 던지지 않는 것.
피하고 싶은 대화를 한 번 더 붙드는 것.
이 작은 선택들이 우리를 설명하게 될 것이다.
세상은 우리의 의도보다 우리의 반복을 기억한다.
그래서 우리는 반복을 바꾸기로 한다.
한 번에 모두가 아니라, 한 번씩.
우리는 한계를 인정했다. 이제 그 안에서 선택한다.
그리고 그 선택을 우리의 것으로 만든다. 누군가가 우리를 규정하기 전에, 환경이 우리를 결정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말한다.
이 선택은 우리의 것이다.
그것이 책임이고 행동이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이자 충분함이다.
우리는 오늘, 완벽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선택한다. 그리고 그 선택을 우리가 책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