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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한 Apr 07. 2024

직장인이 되려고 태어난 건 아니지만

직장인이 되려고 태어났는가.

(*마루야마 겐지,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루야마 겐지의 천둥 같은 문장을 보고 나는, 직장인으로 죽기로 결심했다.


직장인이 어때서, 직장인으로도 충분히 근사하게 살 수 있다고! 하며 책을 북 찢......을 만큼 손아귀가 억세지도 못했고 마음마저 작고 소중한 데다 제 돈 주고 산 책이라, 다만 추천해 준 선배를 원망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이런 책을 추천해 주다니 잘 다니는 회사를 나가라는 거야 뭐야. 자기는 20년도 넘게 다니고 있으면서. 그러면서도 책을 얌전히 덮어 책장에 잘 꽂아두었다.


책이 나빴던 것은 아니다. 통렬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체기가 내려가는 것 같이 가슴이 얼마만치 시원하기도 했다. 그런데 '직장인 되려고 태어났는가'라는 물음에는, 마음이 조금 상했다. 더 멋진 표현도 많겠지만 흔하디 흔한 '마음이 상했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상하다: 근심, 슬픔, 노여움 따위로 마음이 언짢아지다. (*표준국어대사전)


흔하디 흔한 직장인은 근심이 많아 슬프다. 슬프다 노여워지고 노여워하다 직장인 '따위'라는 생각이 들고 이내, 마음이 언짢아진다.


그래서 '직장인이 되려고 태어났는가. 직장인의 처지란 노예 그 자체라는 것을 모르는가'라는 마루야마 겐지의 물음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하고, 마음이 조금 상하고 말았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음이 상해서, 또는 얼마 안 남은 자존심이라도 지키려고 그런 것은 아니다.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답을 너무 잘 알아서이거나, 답을 너무 몰라서.


우선, 답이 너무 뻔하지 않은가. 직장인이 되려고 태어난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냥 태어난 거지. '우리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우릴 만났고 우리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다. 그렇게 나고 자라며, 걷고 말하고 배우고 나아가고 멈추다' 직장인이 되었다(*이소라, 'Track 9' 가사에서 착안, 또는 옮겨 씀). 그러니 '직장인이 되려고 태어났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말이 되지 않으므로 답할 필요가 없다.


한편으로는, 답을 모르겠다. 그 물음에는 직장인 같은 걸 하느라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는데, 나는 직장인이 싫지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는 쪽이다. 직장인은 근사하다. 대체로 적당하다. 즉, 전체로 보아서 또는 일반적으로 정도에 알맞다는 말이다. 모든 직장인이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고, 정도에 알맞은 정도 또한 사람마다 다를 것이나, 직장인은 대체로 적당히 근사하다. 그러므로 나는, 답할 수 없다.


물론 답을 바라고 쓴 문장이 아닌 줄 알지만, 의도가 그게 아닌 줄도 너무 잘 알지만. 굳이 답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 한 문장을 이 정도로 물고 늘어지며 '이러저러하므로 나는 절대 답하지 않겠다'고 기를 쓰고 드러눕다시피 하면, 마루야마 겐지 센세도 '애썼다' 하며 그 문장의 의도와 본질을 이해시키기를 포기하고 그저 귀엽게 봐주지 않을까.    


직장인은 환상적이다, 까지는 모르겠으나 충분히 괜찮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인의 처지란 노예 그 자체'라고 판정해 버리기에는 즐거운 구석이 너무 많다. 그런 '직장인의 즐거운 구석'을 가능한 많이 찾기를 바란다. 더 이상 직업란에 '직장인'을 두고 괜히 다른 것들을 기웃거리다 마지못해 '직장인'을 선택하고 혼자 멋쩍게 웃지 않아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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