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와 개발자에 대한 편견은 왜 생기는 것일까?
넷플릭스에서 한창 즐겁게 시청했던 드라마 스타트업 마지막화가 끝났다.
스타트업이라는 트렌드가 생겨나기 시작하면서부터 항상 마음속에 사표(?!)를 품고 창업에 대한 꿈을 키워 왔었지만 쫄보 특성상 아직도 퇴사를 못하고 있다.
나보다 훨씬 용감한 주변 친구들은 스타트업 대표들이 되었고, 성공한 친구도 있었고 실패한 친구도 있었다. 그렇게 직 간접적으로 스타트업에 대한 지식을 차곡차곡 쌓아갔었는데, 스타트업이란 주제로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으니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스타트업은 생각보다 고증이 잘 되어 있었다. 학생 시절 자주 참여했던 해커톤의 완성형(?!) 같은 느낌이었고 (실제 내가 참여했던 해커톤은 드라마처럼 체계적이지 않았다) VC 투자자들이 스타트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멘토링 해주는지 나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물론 드라마에서는 사적인 감정으로 도와준 것이겠지만 말이다.
VC 벤처 투자자들은 극 중 한팀장처럼 럭셔리하게 사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배낭을 짊어지고 발로 뛰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하지만 한팀장(한지평)의 설정은 자수성가 케이스로 벤처 투자 수익보다는 주식 투자와 병행하여 성공한 듯하다. 어렸을 때 주식 모의투자 우승에 대한 이력도 있었으니 가능한 시나리오다.
드라마 스타트업에서는 해커톤에서 순위에 입상하여 엑셀러레이터인 '샌드박스'에 투자를 받아 스타트업을 시작하게 된다. 주인공 달미의 삼산택 스타트업 회사는 CEO 한 명, 디자이너 한 명, 개발자 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우 일반적인 IT 스타트업의 인원 구성이다.
정사하와 남도산 (디자이너와 개발자)
드라마를 재미있게 시청하다가 드라마에 대한 내용이나 미장센 등보다는 등장인물들의 콘셉트에 관심이 갔다. 아무래도 UX 디자이너 출신이다 보니 디자이너로 나오는 정사하 (배우 스태파니 리) 캐릭터와 개발자로 나오는 주인공 남도산 (배우 남주혁)의 역할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실제 모델 출신 배우를 섭외한 디자이너 정사하의 역할은 어땠을까. 드라마 스타트업에서는 극 중 단 한 번도 그녀의 역량에 대해 조명하지 않았다. 그녀가 했던 일은 초반에 스타트업 해커톤에서 피피티를 만들었던 일만 보여준 것이 거의 전부였다. 그 외에는 팀 내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보여주지 않았고 (마지막화까지!) 계속 까칠하고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는 역할을 맡았다. 마지막화에서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였으나, 디자이너로서가 아니라 여성으로서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중간에는 디자이너를 그만두고 돈을 벌기 위해 변호사일을 하다가 다시 또 디자이너로서 합류한다. 디자이너 업무가 그렇게 공백이 있어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일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주인공 남도산 (배우 남주혁)은 천재 개발자 콘셉트로 나오는데 이도 전형적인 너드 (Nerd)로 나온다. 너드는 네이버 사전에서 사전적 의미로,
멍청하고 따분한 사람
컴퓨터만 아는 괴짜
라고 나오는데 사실 너무나도 잘생긴 배우 덕에 너드미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오히려 너드미를 노리고 만든 캐릭터 같기도 하지만 정말 답답한 부분이 많다. 남도산이 하는 행동을 보면 그 외모에 모태솔로라는 설정이 말이 안 되기는 하지만 이성을 대하는 부분은 차치하고서라도 업무로서는 탑급 실력으로 나온다. 3명의 개발자 중에서 리더급으로서 인정받는 모습들은 훌륭하게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도 전형적인 개발자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물론 역시 마지막화에서는 많은 부분 성장하고 변화했다고는 하나, 큰 틀에서는 결국 벗어나지는 못했다.
정사하와 남도산은 드라마에서 왜 그렇게 그려졌을까? 사실 해외에서도 위 사진처럼 공돌이들은 컴퓨터 수리공으로 생각하나 보다. 이는 사회적인 편견인데, 개발자들은 여전히 너드로서 취급받고 답답한 캐릭터로 여겨지는 것 같다. 실리콘 밸리의 성장이 천재적인 개발자로부터 시작된 것인데 왜 이런 편견이 계속되고 있을까?
디자이너도 마찬가지다. 사실 정사하 캐릭터는 '한국'의 디자이너에 대한 편견으로 보인다. 디자이너의 편견은 깔끔하고 옷 잘 입는 그런 패션 디자이너에서 온 것 같다. 실제 IT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는 대부분 UX 디자이너인데, 사실 이렇게 패셔너블한 사람은 많이 못 봤다. 패션 디자이너와 브랜드 디자이너, 광고디자이너, 그리고 ux 디자이너는 서로 영역이 다른 부분이나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디자이너'라고 퉁치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물론 스타트업의 디자이너라면 ux 뿐 아니라 bx까지 다루는 경우가 많은 경우를 감안하고서라도 말이다.
외국의 UX 디자이너들과 일을 몇 번 해 보았지만 적어도 같이 일해 보았던 외국 디자이너들은 꽤 소통이 잘 되는 편이다. 그들은 의견을 주고받는 데에 능하며 디자이너가 웬만한 기획자들만큼 의견 개진을 잘하고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강하다. 그런데 드라마 스타트업의 정사하 역할은 소통이 전혀 되지 않으며 오히려 업무에 방해만 되는 짐 역할인데, 외모를 제외하고는 임팩트 있게 그려지지 않은 것이 정말 안타까웠다. 실제 한국 사회에서 보는 디자이너의 시선은 이런 것일까? 새삼 궁금해졌다.
사회의 직업에 대한 편견은 왜 생기는 걸까. 주변에 있는 비 디자이너 혹은 비 개발자에게 실제로 물어봐도 대부분 어느 정도는 드라마 스타트업에서의 디자이너, 개발자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가지고 있었다. 직업의 편견은 그 직업에 대하여 개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 태도, 가치관 등이 일반화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는 의미이다. 그중에서도 부정적인 모습들이 더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외와 국내를 막론하고 디자이너는 까칠한, 개발자는 답답한 이미지가 어느 정도는 타 전공자들에게 있는 것 같다. 드라마 스타트업은 그것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디자이너는 새침데기, 개발자는 너드. 이러한 개념은 IT 기업이 발전하고 다양한 스타트업이 커져 가면서 깨져가고 있다. 스타트업 초창기에서는 사실 모든 구성원 하나하나가 일당백의 역할을 해야 하므로 자기 역할에 대한 선을 긋는 것은 옳지 않다. 기획자는 CEO, 영업, 회계, 전략 파트를 모두 담당해야 하고 디자이너는 브랜딩, UX, 광고, SNS 마케팅까지 담당해야 한다. 그리고 개발자는 프런트 백앤드를 모두 담당해야 한다. 큰 기업에서는 한 분야의 전문 인력을 뽑지만 스타트업 초창기에는 인력이 없으므로 위 역할을 다 담당해야 한다. 그런 각오가 없이는 스타트업을 시작하면 안 된다고 본다.
그렇기에 편견에 사로잡혀 한 분야에만 몰두하고 역할에 대한 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주체적인 구성원으로서 스타트업을 운영해야 한다. 디자이너가 기획자가 될 수도 있고 개발이 가능하다면 개발의 업무를 도울 수도 있다. 물론 스타트업이 안정화되고 규모가 커지면 그때부터는 역할을 한정 짓고 그에 맞는 인재를 채용하면 된다.
드라마 스타트업은 물론 나름의 고증을 잘 지키고 있었으나, 마지막에는 훈훈한 결말로 현실과는 거리가 생겨버렸지만 그래도 매우 재밌게 보았던 드라마다. 드라마의 현실성에 대해서는 다음 영상에서 실제 벤처 투자자와 스타트업 CEO를 모셔서 잘 설명해놓았으니 참조하면 좋을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VQf30qxngZM&feature=youtu.be
드라마 스타트업은 여러 관점에서 의미도 있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드라마였다. 무엇보다 드라마 자체가 매우 재미있어서 아직 안 보신 분들은 꼭 추천한다. (특히 IT 업계에 계신 분들이라면 꼭 추천) 해외에서는 비슷한 드라마로 실리콘 밸리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도 있었는데 함께 비교하면서 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 같다.
스타트업은 자유로움이 가장 큰 매력인 동시에 다양한 책임이 존재하는 곳이고, 항상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공간이다. 큰 역할은 디자이너, 혹은 개발자로 멤버로 합류했으나 항상 소통을 최우선 하며 담당 영역을 조금씩 늘려가며 편견 없이 업무를 한다면 사회에서 보는 특정 IT분야의 편견도 조금은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THIS.는 Do Something Meaningful이라는 슬로건으로 의미 있는 디자인 활동을 하는 디자인 커뮤니티입니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비핸스에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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