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커뮤니티의 새로운 방향
이시국은 이시국이다. 올해 초부터 전염성이 강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가 멈춰버렸다.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대한민국은 바이러스를 이겨내는 듯 했으나, 생활 방역으로 전환하며 역시나 전파력이 높은 성질로 인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따라 삶에 많은 변화들이 생겼고 특히나 큰 규모의 오프라인 모임은 사실상 무기한 연기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많은 행사들이 취소되었다.
예전에 한창 열심히 활동했던 디자인 스터디 모임 THIS. 또한 현재 사회적 거리두기 중이며, 예전처럼 큰 규모의 스터디나 딴짓파티 같은 파티 모임은 이제 할 수 없게 되었다. ㅠㅠ(아쉽..) THIS. 같은 스터디는 단순 공부를 넘어서서 다양한 디자이너들과 함께 네트워킹을 하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이제는 예전처럼 활발하게 활동했던 것이 현실감이 사라졌을 정도로 머나먼 옛적?의 추억이 되는 듯 하다.
디자이너들은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이 있는 것 같다. 그도 그럴 듯이 항상 새로운 것에 빠르게 대처해야 하는 업무적 특성이 있고, 학교나 회사에서 그 모든 것을 다 배울 수는 없다. (회사 by 회사, 부서 by 부서, 학교 by 학교 겠지만…) 인적 네트워크의 범위가 내 주변으로 한정되어 버리면 소위 고인물이 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고 이는 불안감으로 연결된다. 특히나 디자인 분야는 UX, BX를 막론하고 연차가 많이 쌓였다고 실력이 있다고 판단하기는 힘들다. 물론 실력을 평가하는 것은 다양한 지표를 활용하여 평가를 해야 하겠지만 연차 하나만 가지고 디자이너의 역량을 전부 평가할 수는 없다.
따라서 많은 디자이너들이 디자인 스터디 및 사이드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회사나 학교에서 채워주지 못하는 인적 네트워크 형성 및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일 것이다. 특히나 학교에서는 실무와 같은 깊이감 있는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어렵고, 실무에서는 여러가지 제약 때문에 자신이 기획 하거나 디자인한 결과물을 실제 아웃풋에 반영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디자인 포트폴리오는 취업 및 이직에 필수적인 자료이기 때문에 어찌보면 생존과 직결되는 부분인데 회사나 학교에서 이것을 만족시켜 주지 못한다면 어쩔수 없이 외부에서 찾는 방법 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 덕분에 디자인 스터디 및 사이드 프로젝트 모임이 한창 성행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모임은 오프라인 모임이 절대적으로 중요했던 만큼 지금 이시국에는 어떠한 방향으로 디자인 스터디를 하는 것이 좋을 지 많은 국내의 운영진 들이 고민하고 있을 것 같다.
코로나 여파로 인해서 많은 모임들이 온라인으로 대체되고, 회사는 재택 근무를 시작했으며 출장도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면 모두 금지하고 있다. 안 좋은 점이라면 이로 인해 회사는 출장비를 절약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코로나 이후, 즉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최대한 출장비를 절약하고 오프라인 매장을 온라인으로 많이 대체 하려 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아무튼 이렇게 우리는 평생 겪어보지 못한 세상에 갑자기 놓이게 되었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연상케 하는 사건들이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디자이너가 세상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사실 코로나 이전에도 2020년 디자인 트렌드로 예측되었던 것 중에 한 꼭지가 바로 윤리적 디자인이다. 요즘 많이 관심 가는 단어가 바로 ‘선한 영향력'에 대한 부분인데 디자이너는 본질적으로 컨셉을 비주얼화 하여 호감을 주는 역할을 하므로 윤리적 디자인을 기반으로 하여 선한 영향력을 세상에 끼칠 수 있다.
Lennart Overkamp는 Daily Ethical design에서 윤리적 디자인을 Usability (사용성), Accessibility (접근성), Privacy (프라이버시), User Involvement (사용자 참여), Persuasion (설득), Focus (집중), Sustainability (지속 가능성), Society (사회) 이렇게 8가지로 정의하였는데, 이 글을 읽고 나서 디자인 윤리가 단순히 장애인이나 저소득층을 위한 디자인만이 윤리적 디자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보다 디자이너가 윤리적으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
원문 글은 하기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alistapart.com/article/daily-ethical-design/
특히나 요즘에는 특히나 디자이너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인성도 좋은 디자이너가 인정받는 만큼 우리는 윤리적 디자인에 대한 스터디를 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 알게 된 분이 바로 빅토르 파파네크라는 분이신데, 사회와 환경에 책임을 지는 제품 디자인, 도구 디자인, 사회 기반 시설 디자인, 적정기술 디자인을 강력하게 주장한 디자이너이자 교육자이다. 물질주의가 팽배했던 시대에 디자인의 정신적 가치를 부각시키면서 생태적 균형을 전제로 한 디자인의 실현을 강조했다.
그는 ‘사물을 그저 아름답게만 만드는 것에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것은 죄악이다’ 라고 이야기하여 정말 현실세계에 필요한 문제 해결을 위한 디자인을 주창하였다. 정말 지금 UX 시대에 가장 딱 필요한 말이 아닌가 싶다.
지금 우리가 생산해내고 있는 모든 디자인 산출물들은 10%만을 위한 디자인이라고 한다. 나머지 90%는 그 혜택을 받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Sustainable design이라던가 Universal design이라던가 하는 분야가 한참 유행했던 것 같은데 사실상 지금 시국은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처음 겪고 있는 고통이다 보니 지금은 오히려 100%를 위한 디자인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다음은 지식채널 e에서 10년전에 공개했던 영상인데, 10년전 영상이지만 지금 이시국에 다시 저 영상을 보니 무언가 감회가 남다르다.
그 외에도 UN에서 제시한 The Global Goals라는 것이 있는데, UN의 지속가능 개발 목표는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시행된 밀레니엄개발목표(MDGs)를 종료하고 2016년 부터 2030년 까지 새로 시행되는 유엔과 국제사회의 최대 공동목표다. 인류의 보편적 문제 (빈곤, 질병, 교육, 성평등, 난민, 분쟁 등) 와 지구 환경문제 (기후변화, 에너지, 환경오염, 물, 생물다양성 등), 경제 사회문제 (기술, 주거, 노사, 고용, 생산 소비, 사회구조, 법, 대내외 경제) 를 2030년까지 17가지 주 목표와 169개 세부목표로 해결하고자 이행하는 국제사회 최대 공동목표다. The Global Goals는 이를 17가지로 나누어 정의하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앞으로 THIS. 같은 디자인 스터디에서는 저 UN의 The Global Goals에 부합하는 주제로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어떨까? 였다. 사실상 예전보다 지금이 어느 때보다도 좋은 프로젝트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과물은 UX던 BX던 뭐가 되던 좋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디자인 프로젝트를 세상에 소개한다면, 그것 만으로도 시작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사실 올해부터 Runner’s Challenge라는 이름으로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려 했는데 아직 코로나 시대에 어떻게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 안전하면서 좋은 프로젝트가 될지 고민 중이라 시작을 못했다. 조금 코로나가 더 진정 되면 소수 인원 한정으로 운영진과 협의해서 진행하면 좋을 것 같다.
최근에 THIS. 커뮤니티의 리브랜딩에 참여했는데, 그 과정에서 생각난 아이디어가 바로 THIS. Runner였다. 매번 멤버들을 ‘스터디원' ‘운영진' 이런 식으로 부르는게 딱히 매력적이지도 않고 브랜딩이 되어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고민고민 끝에 명칭을 새로 정하게 되었는데, 실제 사이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인원을 Runner라고 부르기로 했다. 디자이너들은 업무를 할 때 ‘달린다' 라는 표현을 실제로 사용하기도 하고 스터디를 하는 Learner 라는 말과도 라임이 맞다 (응?). 그리고 UN에서 제시한 The Global Goals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THIS.는 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있기에 디자인이 연상되는 단어가 아니기를 바랬다. 우리는 그냥 ‘러너’일 뿐인 것이다.
그 외 메인 운영진인 Fred님은 Pacer (페이스 메이커) 로 명명하기로 했고 실제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아도 단톡창에 있거나 온라인에서 활발하게 소통하는 사람들은 Jogger (조거) 라고 부르기로 했다. 처음에 THIS.에 새로 가입하는 사람은 Walker로 부르기로 했다. 아마 조만간 온라인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조거들을 모집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휴식기 동안 사실 스터디 활동을 아얘 쉰 건 아니었다. 작년에 THIS. 스터디를 함께 했던 좋은 멤버들 중에 몇몇을 모아 ‘사람다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10명 남짓한 소수 인원이기도 하고 현재는 대부분 Zoom으로만 회의를 하고 있기에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어떻게 스터디를 하면 좋을 지 베타테스팅 성격도 있다고 본다. Zoom 말고도 시중에 나와있는 다양한 온라인 화상 프로그램을 테스트하며 최적의 스터디 운영을 위한 테스트 중이다. 사람다움 프로젝트는 디자인의 본질인 ‘사람'을 연구하는 사이드 프로젝트이다. 각자 ‘사람'에 대한 고찰을 하고 그 생각을 글과 디자인 결과물로 표현해내는 프로젝트이다. 속 깊은 친구들과 함께 스터디를 하고 있기에 정말 재밌고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 지 기대가 된다. 그 외 러너스 챌린지라는 이름으로 코로나가 좀 잠잠해 지면 추가로 러너들을 모집해 또 다른 사이드 프로젝트를 할 것 같다.
THIS. 리브랜딩에 참여하면서 윤리적 디자인 스터디로 방향성을 잡았는데 좋은 레퍼런스가 무엇이 있을까 찾던 와중에 몇 가지 좋은 사례를 찾을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코로나 맵이다. 코로나 동선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준 코로나 맵은 매우 좋은 사례이다. 지금은 여러 기관이나 기업에서 코로나 동선 맵을 제공하고 있지만 이러한 아이디어는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쳤던 좋은 사례였던 것 같다. UX 솔루션이기도 하면서 실질적으로 구현을 한 프로젝트이니 더할나위 없이 대단하다.
두 번째는 예전에 네이버에서 제작하여 세계 3대 디자인상 중 하나인 ‘IDEA(International Design Excellence Awards)’ 에서 색각이상자를 위한 지하철 노선도가 사회적 영향력(Social Impact) 분야에서 동상(Bronze)를 수상했던 작품이다. 어찌보면 단순한 GUI의 변형일 수도 있으나 색각이상자가 환승선을 컬러로 구분하지 못한다는 문제를 발견하여 환승역의 경우 호선을 명확히 명시해 주었다. 이는 일반 사람들에게도 더 비주얼적으로 명확한 장점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단순히 아름답게' 만든 것 이상의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이것이야 말로 유니버설 디자인이며 빅토르 파파넥이 이야기한 가치와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스마트폰 중독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데 스마트폰 중독을 막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가 많이 소개되고 있어서 놀랐다. 그 중에서 구글에서는 아얘 종이로 된 커버를 만들어서 전화 말고는 사용이 불가능? 하게 만든 재미있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하지만 보통 핸드폰을 쓰는 것을 꺼리게 만드는 잠금화면 UX를 개선한 작품들이 많았다. 하나의 아이디어로도 저렇게 다양한 솔루션이 나올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여러모로 참고가 되는 작품들이었다.
사실 UX 뿐만 아니라 윤리적 디자인은 BX 프로젝트에서도 충분히 좋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디자인계의 혁신(?!) 이었던 이모지의 경우가 그렇다. 이모지는 기본적으로 유니코드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데이터 드리븐 디자인이기도 해서, UX 로 봐야 할지 BX로 봐야 할지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그래픽 디자인의 일부라고 본다면 재미있는 부분이 많다. 2014-2019까지 다양한 직업 차별 문제, 인종차별 문제, 장애인 차별 문제, 환경 문제 등을 조명한 이모지들이 많이 생겨났다. 특히 2020년에는 성 소수자를 위한 이모지들이 많이 생겨났는데 이모지가 사회 문화 종교 등 인간의 기본적인 사회적 형태를 비주얼로 잘 담아냈다고 본다. 따라서 이모지 디자인 또한 어느 정도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디자인 스터디에서 ‘윤리적'인 요소가 꼭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 가면 갈수록 실력 뿐만 아니라 인성과 실력을 겸비한 디자이너가 각광받는 시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의 현상에 조금 더 심도 깊게 고찰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이러한 부분을 같이 공감하고 깊게 토론하는 그런 디자인 스터디가 THIS.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싶다.
나는 봉준호 감독님을 좋아한다. 그가 단순히 능력이 뛰어나서, 황금 종려상을 받아서 등의 이유가 아니다. 가장 ‘인간적인' 고찰을 하며 그것을 일반 대중에게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90%를 위한 디자인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너무 소수만 이해할 수 있는 영화는 내 취향이 아니다. 작품성은 크게 인정받았으나 상업영화로는 성공하지 못했던 작품들도 많은데, 봉준호 감독님은 상업영화로도 충분히 큰 성공을 이뤄냈다. 이는 일반인들도 흥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디자이너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가장 잘 팔리는 디자인을 만들어야 하면서도 윤리적인 요소까지 담아내는 디자인이 분명 대중에게 사랑받을 것이라고 본다. 사실 회사에서는 시키는 업무에 치이다 보면 이런 부분들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러한 주제는 딱 사이드 프로젝트로 하기에 적합한 주제가 아닐까 싶다.
많은 전문가들은 코로나 이후 시대인 포스트 코로나에도 이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예측한다. 감염력이 강한 코로나는 완전한 종식이 선언되려면 꽤나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리고 종식이 되더라도 디자인 스터디 또한 뉴노멀(시대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표준)을 구현해야 한다. 그래서 2020년은 최대한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의 장단점을 테스트하고 분석하는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당분간은 온라인 모임이 주를 이루겠지만 오프라인 모임도 없어질 수는 없으므로 최대한 안전하게 오프라인 모임과 온라인 모임을 병행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 봐야 할 것 같다.
THIS. 사람다움 프로젝트에 참여 중인 달리는 도넛입니다. 디자인을 사랑하며 UX에 관심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