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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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절

2002년, 월드컵의 벅참이 아직 떠나지 않았던 10월의 금요일. 우리집에는 울음 소리만 가득했다. 엄마가 집을 나간 탓이었다. 장을 보러 나간다던 엄마의 뒷모습에서 나는 어렴풋이 마지막임을 느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겨우 6살짜리 유치원생이 엄마의 빈자리를 가늠하기는 어려웠으니까.


집에는 나와 동생만 덩그러니 남았다. 이제야 돌을 앞둔 동생은 현관문이 닫히자 마자 서럽게 울었다. 나는 저러다 동생이 자지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작은 손으로 더 작은 동생의 손을 붙잡았다. 울지마라, 울지마, 하면서. 바람과는 달리 동생은 더 세차게 울어댔고 눈물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코피까지 흘렸다. 동생을 싸고 있던 흰 면보에 새빨간 코피가 묻은 모습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주 가끔 꿈에 나올 정도로 말이다.


얼마 있지 않아 아빠가 들어왔고, 피범벅이 된 동생과 휴지로 얼기설기 피를 닦는 나를 보며 삽시간에 눈치를 챈듯 싶었다. 나는 죄인처럼 변명했다. 내가 그런 게 아니라고. 내가 때리거나 해를 가하지 않았다고. 아빠가 가장 처음 물은 건 엄마의 행적이었다. 장을 보러 간댔어. 엄마가 매일 들고 다니던 장바구니가 식탁에 그대로 놓인 걸 알면서 나는 장을 보러 갔다고 말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정말 엄마는 장을 보러 간다고 했으니까.


어른이 집에 오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이제 내가 동생을 어르고 달랠 필요가 없었다. 아빠는 동생을 안아 욕실로 향했고 나는 혼자 옷을 갈아입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녹색 상의로. 시간은 9시가 넘어 잘 시간이었고, 녹색 상의는 잠옷이 아니었지만 그냥 갈아입었다. 지금 잘 때가 아니라는 걸 나는 알았던 걸까? 흰 꽃이 그려진 옷은 선명히 기억 나는데, 그 옷으로 갈아입은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한 건, 내 선택이 맞았다는 거다. 나는 잠을 자지 못하고 아빠와 함께 집을 나섰다. 물론 동생도 함께. 아빠는 동생을 앞세워 외가로 쳐들어갔지만 처참히 무시당했다. 외갓집에 있는 그 누구도 나와 동생과 아빠를 다정하게 보지 않았다.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앞세워 숨어버렸다. 본인이 나를 낳은 엄마라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것처럼 굴었다. 나는 어렸지만 꽤 일찍 엄마를 포기했고, 아빠도 한 달의 걸친 설득 끝에 아내를 포기했다.


나는 순식간에 한부모 가정이 되었다. 소송으로 진행된 이혼 과정을 6살 짜리에게 자세히 설명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눈치껏 내게 엄마가 없어졌다는 건 알았다. 아빠는 핏덩이 같은 자식 둘을 보고 꽤나 마음이 복잡했다고 한다. 어른 없이 지내기엔 너무 어렸고, 자신은 돈을 벌어야 했으니. 그래서 곧장 엄마를 집에 들였다. 내 엄마 말고, 아빠의 엄마를.


나의 엄마는 나를 버렸지만 아빠의 엄마는 나를 거뒀다. 엄마에게 버림 받은 덕분에 아빠의 엄마와 20년을 살았다는 말이다. 44년생, 촌스러운 파마머리, 호탕한 웃음 소리와 두툼한 손, 지독한 절약 정신과 생활력, 이에 고춧가루가 낀 줄도 모르고 나만 보면 활짝 웃는 내 할머니.


시간은 훌쩍 지나 6살이던 나는 27살이 되었고, 갓난쟁이던 내 동생은 23살 직장인이 되었다. 우리 자매는 어엿한 성인으로서 응당 책임을 다 하며 살고 있지만 할머니는 점점 저물어 가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셋이 살고 있고,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한다. 어린 아이처럼 변해 버린 할머니를 보며 과거부터 현재까지 하나씩 기록을 남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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