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남편을 잃은지 두 달 만에 손주들을 떠안았다. 열 살 많은 철부지 남편에게 30년 동안 돈을 벌어다주고 이제 막 혼자가 되었을 때였다. 할머니는 어제 먹은 저녁 메뉴도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를 떠안았던 그 10월의 금요일은 생생하게 기억하신다. 부슬비가 내렸으며, 지아비가 남긴 도박빚을 막 청산한 참이었다고.
여느 할머니가 그렇듯, 우리 할머니도 손주 기죽는 꼴은 절대 보지 못했다. 유치원 생일파티가 있던 날, 다른 아이들보다 더 좋은 선물을 준비해야 한다며 내 몸집만한 화분을 들고 간 적이 있다. 일부러 좋은 흙을 담았다며 호들갑을 떨던 할머니의 바람과는 다르게 나는 그날 내내 기가 팍 죽어 있었다. 문구점에서 파는 학용품 세트, 물감 따위의 것들과 내 화분은 너무 결이 달랐기 때문이다. 형광빛이 도는 분홍색과 파란색 사이에서 나만 거무죽죽한 화분을 들고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힘겹게 들고 갔던 화분을 선생님에게 넘겨버리고 선물은 준비하지 못했다고 거짓말했다.
이 화분은 어디서 가져왔어?
집앞에서 주웠어요.
똑단발이 잘 어울리던 선생님은 내게 화분의 출처를 한 번 묻고는 알겠다며 창가에 화분을 올려놓았다. 어찌나 좋은 흙인지 화분에 물을 주자 속에 있던 지렁이가 고개를 쳐들고 나와 아이들에게 인사했다. 6살짜리 아이들은 친지렁이파와 반지렁이파로 나뉘어 말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친지렁이파 : 꼬물대는 게 귀엽다. 미끌거리는 느낌이 신기하다. 우리가 키우자.
반지렁이파 : 기어가는 모양이 징그럽다. 밖에 던져버리자.
선생님은 간식을 준비하러 간 사이 저들끼리 소란스러워진 우리를 보고 다급히 다가왔다. 아무도 다치거나 울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걸, 나는 보았다. 유치원은 항상 시끄러운 곳이지만, 소동의 중심이 되는 걸 바라지 않았다. 이목이 집중되고, 나에게 아이들의 눈빛이 몰리는 건 정말 사양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지렁이로 싸우는 동안 나는 그 뒤에 한발자국 물러나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선생님은 나를 한 번, 지렁이를 한 번 쳐다보고는 지렁이를 휴지로 감싸 흙에 돌려보냈다. 다만 원래 있던 화분이 아니라 유치원 정원에 있는 나무 밑동으로. 그리고는 지렁이가 흙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지 한참을 설명했다. 좋은 일을 하는 지렁이는, 꼭 나고 자란 흙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말도.
나는 어쩐지 집에 갈 때쯤에는 기분이 풀렸다. 할머니는 친구가 화분을 좋아했냐고 잘못 짚어 물었지만 구태여 아니라는 답을 하지는 않았다. 어찌 되었든 할머니는 웃고 있는 손주를 봤고, 그 손주는 저 때문에 웃는 할머니는 보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