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일곱에 너네랑 논다 내가

by 이계절

할머니는 주위 사람들에게 날 자랑하는 것이 유일한 낙인 것처럼 동네방네 내 사생활을 말하고 다녔다. 밤중에 엄마가 보고 싶어 울었다거나 씻기를 싫어해 머리 냄새가 난다거나, 심지어 배앓이를 하느라 묽은 똥을 싼 이야기까지! 덕분에 나는 노인정 멤버들에게 비밀이 없었다. 그럴때면 볼멘소리를 늘어놓았지만 할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애기한테 창피한 게 어딨어' 라며 넘겨버렸다. 일곱살에게도 수치심은 있는데...!


할머니란 아빠의 엄마였으므로, 나에겐 어른의 어른이나 마찬가지였다. 대들거나 맞서는 건 어려워 한동안 동네의 놀림거리로 살았다. 생각보다 노인정의 화젯거리는 빠르게 바뀌었다. 유행을 따라가려면 할머니도 건너건너 누군가의 흉을 봐야했으니 내 이야기를 할 시간은 적어졌다.


나이 육십에 너네를 키운다 내가.


그무렵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중얼거렸고 나는 그 말을 배웠다. 내 주위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하는 말은 생각보다 효과가 컸다. 그말이 재밌었는지 뭔지 유치원에 가서 친구들에게 똑같이 말했다. 나이 일곱에 너네랑 논다 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친구들의 표정을 보고 꽤 뿌듯했다. 무언가, 나만 아는 말을 했다는 게 특별해 보여서. 아마 친구들이 내게 '그게 무슨 말이야' 하고 묻지 않았던 건 두가지 이유가 있었을 거다.


첫째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엄마를 잃은 아이'로 소문나 날 어여삐 여겼기 때문이고

둘째는, 일곱살인 내가 여섯살 아이들과 놀았기 때문이다.


유치원 통근차량 앞에서 날 기다리는 사람이 할머니로 바뀌자마자 소문은 빠르게 돌았다. 정이 넘치는 학부모들은 날 골라내는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아이들 역시 말을 골라내지 않았다. 집에서 부모님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내게 전한 것이다. 엄마가 너한테 잘해주래. 엄마가 너랑 같이 놀아주래.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엄마 없는 애도 빼놓고 놀면 안 된대.


너네 엄마는 참 다정하구나. 내 엄마는 지금 어디서 뭐하는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호의를 베푸는 아이들에게 성을 낼 수는 없으니, 엄마의 말씀을 성경마냥 전할 때마다 할머니처럼 중얼거렸다. 이 나이 먹고 너네랑 논다 내가. (어때. 나도 어른한테 듣는 말이 있다 이거야, 하는 마음으로.)


시도 때도 없이 늙은이 말투를 뱉는 나를 본 선생님은 얼마 안 가 아빠에게 소식을 전했다. 나잇대에 맞는 어휘와 언어습관을 잡아주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고. 아빠를 타고 할머니까지 넘어간 소식은 역시나 노인정까지 퍼졌다. 아파트 정문을 걸어나가면 옆 정자에 앉아있던 어르신들이 나를 보고, 애늙은이 지나간다며 웃어댔다. 웃음소리가 어찌나 큰지 한참을 걸어가도 귓가에 맴돌았었다. 묽은 똥을 싼 것과 할머니 말을 따라한 게 똑같은 웃음거리라니. 적지 않은 충격을 받고, 나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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