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살 할머니의 한글 배우기 프로젝트
1944년, 우리나라가 광복을 목전에 앞둔 6월의 어느날. 할머니는 이북 초가집에서 태어났다. 다음해 광복을 맞는 기쁨을 알기엔 갓난쟁이였던 할머니는 다섯살 무렵 동생을 업고 남한으로 내려왔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탓이다. 다행히 온가족이 무사히 내려왔지만 전라도 시골에서도 가난하긴 매한가지였다. 가난한 집 첫째딸로서, 할머니는 초등학교 대신 밭으로 나가 농사를 지었다. 고지식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첫째딸은 집안의 살림을 도맡아야 한다'는 지론을 실천하기 위함이었다.
국민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할머니는 까막눈으로 육십년을 살았다. 불편하긴 했지만 문제는 없었다고 했다. 20년을 넘게 식당을 운영하면서 글을 모르는 게 가능한가 싶지만 머릿속에 본인만 알아볼 수 있는 장부를 그려놓고 그림을 그렸다고. 재료가 배달오면 완벽하게 셈을 해서 돈을 내고, 거스름돈까지 놓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잘 살아왔지만 나와 동생을 키우려니 까막눈이 문제가 되었다. 유치원에서 꼬박꼬박 받아오는 알림장을 읽을 수가 없었고 젖먹이 동생이 아프기라도 하면 병원 접수를 할 수가 없었으니. 마침내 할머니는 글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동네 회관에서 한글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내가 유치원에 있는 시간동안 동생을 등에 업고 분유를 먹이며 수업을 들었다. ㄱ, ㄴ, ㄷ을 익히면 ㅏ, ㅑ, ㅓ, ㅕ를 배우고, 다음으로 가나다를 배웠다. 수업을 듣기만 하면 끝이 아니다. 공책에 깜지를 쓰는 숙제도 해야 하고 복습도 해야 한다. 집에서 마음 편히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이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할머니에게는 나와 동생이라는 짐이 있었다.
한글 수업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와서 밥을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한창 많이 먹는 일곱살의 내가 때맞춰 밥을 먹을 수 있으니까. 밥상을 차리면 빨래를 해야하고, 빨래가 끝나면 다시 밥상을 치우고. 설거지까지 마치고 나면 어느새 밤이 되어 나와 동생을 재운다. 그제야 할머니의 공부 시간이 찾아온 거다.
할머니는 우리가 깊이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용히 화장실에 들어갔다. 불을 켜고, 변기 뚜껑을 덮어 그 위에 앉아 책을 폈다. 주황불이 우리 잠을 해칠까 문도 살짝 닫고서 수업 내용을 완전히 외울 때까지 공부했다. 염불을 외는 것처럼 중얼거리기도 하고, 몽당연필로 책에 낙서도 해가면서. 처음에야 괜찮았지만 일주일이 지나니 할머니 눈이 벌개졌다. 실핏줄이 모두 터진 거였다. 할머니는 거울로 충혈된 눈을 들여다 봤으면서도 그저 웃기만 했다.
새벽 내내 빵 공장에서 반죽할 때도 이렇게 빨간 적이 없었는데 공부하다가 핏줄도 터져보네~ 아마 내가 공부만 제대로 했으면 대통령도 했을 거여.
결국 할머니는 한글을 깨쳤다. 본인 이름과 나와 동생의 이름을 나란히 써온 어설픈 글씨가 생각난다. 나는 할머니 속도 모르고 '내가 더 글씨 잘 쓴다'라고 말했고, 할머니는 '당연히 어린 네가 더 잘 써야지'라며 웃어 넘겼다. 이름 석자 쓰는 데 한평생이 걸렸다던 우리 할머니. 가끔 '바'를 'ㅓㅂ'로 쓰긴 하지만, 뭐 어떤가. 이렇게 멋진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