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신부 말고 그냥 도깨비

by 이계절

한국 드라마, 특히 로맨스 드라마에는 전혀 취미가 없던 내가 '꽃보다 남자' 이후 처음 본 드라마가 <도깨비>였다. 공유와 김고은의 로맨스 서사가 취향이었던 건 아니고, 그냥 공유를 좋아해서(...) 봤다.


드라마 내내 김고은은 명랑하고, 굳세다. 엄마는 죽었고 못된 이모가 아무리 괴롭혀도 본인 공부 열심히 하며 살아간다. 그런 김고은에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돈 많고 잘생기고 다정한 도깨비가 나타난다. 심지어 당신이 신부라는 말과 함께.


드라마의 주제와는 어긋나지만, 나는 공유가 김고은에게 물질적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다. (김고은이 도깨비 신부로서 공유를 구하는 복잡한 이야기는 잠시 뒤로 내려놓고.) 아무리 마음을 다잡으며 살아가는 김고은이라도 고등학생 신분으로 가난을 타파하는 건 무리이니까. 실제로 드라마에서도 공유는 김고은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풍족한 환경을 제공해준다.


어렸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좋은 짝 만나 결혼하라는 말이었다. 얼마나 어렸냐면, 아직 유치원생이었을 때다. 일기를 읽기로 잘못 알고 있어 항상 일기 말미에 '읽기 끝~'이라고 쓰는 애한테 결혼이라니.


할머니는 본인 팔자가 이모양이니 너네는 귀하게 대접해주는 사람을 만나라고 신신당부했다. 할머니가 말하는 귀한 대접의 첫번째 조건은 언제나 돈이었다. 일단 돈이 많아야 고생을 안 한다면서 부자를 만나라고 말했다. 그게 어디 제 마음대로 되나요 할머니... 아마 할머니의 평생 소원은 내 결혼이었나 싶을 정도로, 나의 모든 행동을 결혼과 연결지었다.


씻기 싫어 앙탈을 부린다. -> 나중에 남편이 너 냄새난다고 하면 어떡할래!

배가 불러 음식을 남긴다. -> 시어머니 음식도 그렇게 남길래?

할머니의 생각과 내 생각은 다르다고 말한다. -> 시댁 식구들한테도 말대답 할 거야?


대체 무슨 논리냐고 반박하고 싶어도 일곱살에게는 대들만한 용기도 없었고 말주변도 모자랐다. 부족한 어휘를 채우게 되면 꼭 멋지게 반박하리라, 다짐하며 열심히 씻었더랬다. 있지도 않은 시댁을 생각하며 하기 싫은 일을 해치우고 나면 또 있지도 않은 시댁의 칭찬이 들렸다.


그래~. 이래야 시어머니가 좋아하지.


나는 시어머니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던가. 정작 할머니는 지독한 시집살이 때문에 맨날 울었다고 했으면서. 왜 나한테도 시댁을 물려주려는 걸까. 돈이 많은 남자는 반드시 좋은 남자일까.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자라나 나는 결론을 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돈이 반드시 필요한 것도 맞고 돈이 많을수록 좋은 것도 맞다. 하지만 내가 돈이 많은 남자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 도깨비 신부가 아니라 내가 도깨비가 되면 되니까.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속담이 무색하게 나는 할머니가 심은 콩으로 자라지 않았다. 열심히 본인의 신념을 내게 조기교육으로 심어주려 했지만 할머니는 실패했다. 대신 차근차근 본인 돈벌이 잘 해가는 수박쯤으로 자란 나를 보면서 할머니는 꽤 만족하신다.


그래, 뭐 결혼 굳이 할 거 있냐? 결혼하면 고생만 하지. 라는 본인 비판을 곁들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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