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권력을 손에 넣었다. 유치원 최고참이 된 나는 꼬꼬마 사이에서 어른 흉내를 내는 꼬마였다. 평소에는 나이별로 반을 나눠 수업을 받지만, 넓은 놀이방에 다 같이 모여 애니메이션을 관람하는 시간이 있었다. 4살, 5살, 6살 사이에서 7살인 우리반은 (당연히) 가장 키가 컸고, 큰 키만큼 으스댔다.
핑구, 패트와 매트, 호호 할머니 같은 걸 보면서 대체 으스댈만한 일이 뭐가 있겠나, 싶지만 나도 잘 모르겠다. 그때는 그냥 그랬다.
특히 나는 발육이 굉장히 빨라서 유치원에서 가장 큰 아이였다. 정확한 숫자는 기억이 안 나지만 또래 친구들과 찍은 사진에서 나만 머리가 튀어나와 있는 걸 보면 내 기억이 맞다는 걸 알 수 있다.
할머니의 집밥을 너무 잘 먹고 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키와 몸무게가 빨리 늘었고 아이들이 나를 올려다보는 게 어딘가 자랑스러웠다.
키만큼 자존심이 세진건지 약해보이는 일들은 하기 싫어했는데, 당시 나에게 약해보이는 일이란 1. 밥 남기기 2. 머리 감기 3. 아픈 티내기 였다. (머리 감는 게 왜 약해보이는 건지 나도 모른다. 그냥 그때는 그랬다.)
하지만 어린 아이라면 응당 겪어야하는 일 중 하나, 바로 유치 빼기가 다가오고 말았다. 보통 초등학교는 올라가야 이를 빼는데, 나는 발육이 빨라서 그런지 유치원 때 이가 몽땅 흔들렸다.
제일 먼저 흔들린 건 앞니, 그것도 위와 아래가 한번에 흔들렸다. 무슨 병이 걸려서 이가 흔들리는 건 줄 알고 무서웠지만 무서운 티를 내는 건 7살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할머니에게 덤덤하게 말했다. 여기 이가 흔리는데... 무서워서 말끝을 흐린 건 아니다. (맞다.)
할머니는 벌써 이가 흔들린다며 놀라더니 실을 가져와 흔들리는 이에다 돌돌 감았다. 이때부터 말로 할 수 없는 공포가 밀려온다. 이를 뺀다면서 치과를 가는 것도 아니고 (물론 치과도 싫어한다.) 그냥 집에서 이렇게 빼는 거였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내 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실패를 정리했다. 베베 꼰 흰실은 여전히 내 앞니에 걸려있었다. 실패를 먼저 서랍에 정리해놓은 할머니가 내 입을 벌리고는 눈을 감으라고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고 했지만 이미 할머니의 엄지 손가락이 내 입을 비집고 들어온 순간부터 자존심이고 뭐고 눈물이 쏟아졌다.
우는 나를 두고 할머니는 웃음을 참다가 기별도 없이 실을 잡아당겼다. 문제는 이가 한 번에 빠지지 않았다는 것. 반만 붙어 덜렁거리는 이를 두고 할머니는 다시 한번 실을 잡았다. 나는 이때부터 정신이 나갈 정도로 울었다. 누가 들으면 할머니가 애를 잡는 줄 알았을 거다.
기어코 내 두 팔을 봉쇄하고 빼낸 아랫니는 쌀알보다 겨우 큰 정도였다. 섧게도 우는 나를 일으켜 세워 얼마간 피를 닦아주니 그제야 손에 쥔 이가 보였다.
이거 창문 밖으로 던져. 그래야 새 이가 예쁘게 나는 거야.
왜? 이를 던지면 왜 새 이가 예뻐?
제비가 헌 이를 물어가고 새 이를 가져다 주거든.
할머니 말에 따라 베란다 창을 열고 있는 힘껏 이를 던졌다. 원래 지붕 위로 던져야 한다는데, 아파트 옥상까지 던지는 건 무리니까 적당히 멀리 던지는 걸로 타협했다.
허전한 잇자리를 보면서 쓰린 눈가를 훔치는데, 뒤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렸다.
너, 지금 있는 이 한번씩 다 빼야 돼~. 호호호호
허망한 눈으로 할머니를 본들,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할머니가 아니더라도 이는 빠지는 거니까. 다만 일곱살에게는 가혹한 일이었다. 이후 일년, 초등학교 1학년이 채 다 가기도 전에 내 이는 전부 갈렸다. 그때마다 이가 흔들리는 걸 숨기려고 지독하게 숨어다녔다.
눅눅한 장롱 냄새가 스며든 이불 사이에 숨고, 사방이 뚫린 식탁 밑에 숨고, 위가 훤한 욕조에도 웅크려 숨었다. 할머니는 이 한번 뽑겠다고 손녀를 찾아다녀야 했다. 아무리 잘 숨어도 할머니는 귀신같이 날 찾았다. 아무렴, 살림을 도맡는 사람보다 집안을 잘 알 수는 없지.
그럼 난 또 손발을 부르르 떨며 이가 떨어져 나가는 공포를 맛봐야 했다. 그때마다 헌 이를 베란다 밖으로 던지면서 제비에게 빌었다. 이정도 받아갔으면 이제 그만 받아가도 되는 거 아니냐. 얼마나 더 가져갈 생각이니.
내 원망이 무색하게 제비는 그 뒤로도 헌 이를 받아갔다. 어쩌면 할머니와 제비가 짜고 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단기간에 많이도 가져갔다. 이갈이가 빨리 끝난만큼 나는 영구치를 남들보다 오래 쓰는 건데, 치아 관리를 너무 대충했다. 제비를 많이 욕해서 그런가.
하긴, 머리 감기도 싫어했던 애가 양치라고 꼬박꼬박 했겠는가. 지금은 새 이를 받을 수 있다면 헌 이 정도야 다 뽑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