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가 없다고? 없는 거라고?

by 이계절

7살 12월. 학교에 올라가기 전 마지막 크리스마스. 그동안 특별히 크리스마스를 챙기지 않았던 우리집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물을 받았던 날이다. 그것도 무려 산타에게 말이다.


크리스마스 이브, 유치원에서는 한창 '울면 안 돼'가 흘러나왔다. 우는 아이들에게는 선물을 주지 않는다는 다소 요구 조건이 확실한 가사 덕분에 그 노래만 나오면 아이들이 거짓말처럼 눈물을 멈추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어린 아이일수록 욕망과 본능에 충실하다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다.


초록색과 빨간색 색종이를 섞어 만든 엉성한 크리스마스 카드에 저마다 가지고 싶은 선물을 써내는 시간이 있었다. 카드는 아이들 몰래 학생 수첩에 끼워져 부모님께 전달되었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가지고 싶은 선물을 받았다. 나만 빼고.


당시 내가 가지고 싶었던 선물은 손잡이를 돌리면 팔찌가 만들어지는 비즈 공예 장난감이었다. 분명 크리스마스 카드에도 장난감 이름을 똑바로 써넣었는데, 아무래도 산타는 장난감이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크리스마스 당일 새벽까지 나는 졸음을 참아가며 눈을 뜨고 있었다. 산타에게 직접 선물을 받기 위해서다. 할머니는 날더러 제발 자라고 애원했지만, 나는 호락호락하게 잠들지 않았다. 이게 바로 미운 7살이지. 암.


할머니는 불 꺼진 방에서 홀로 눈을 켜고 있는 날 얼마간 쳐다보더니, 방을 나가 아빠와 작전회의를 했다. 일단 거기서 1차 위기가 왔다. 어라? 왜 선물 논의를 아빠랑 하지? 산타는 아직 안 왔는데?


2차 위기는 아침이었다. 할머니가 두툼하고 따뜻한 손으로 내 배를 쓰다듬는 반칙을 했기 때문에 나는 속절없이 잠들었다. 토닥토닥, 하는 손놀림이 내 심작 박동과 기가 막히게 공명해 귀로 심장소리가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아주 깊게 잠들어 있던 나를 아빠가 흔들어 깨웠다.


빨리 나와 봐! 산타 할아버지가 현관문에 선물을 걸어놓고 가셨어!


산발이 된 머리도 정리 못하고 뛰어나갔는데, 현관문에 걸려있는 건 비즈 장난감이 아니었다. 장난감 카테고리에 속해있지도 않은, 베이지색 떡볶이 코트였다. 재벌집 막내아들이 줄기차게 입고 나왔던 그 떡볶이 코트 말이다. 세상에...


나는 실망을 숨길 줄 모르는 어린이였기 때문에 아빠한테 장난감은 어디있냐고 물었다. 분명 크리스마스 카드에 적은 건 비즈 공예 장난감인데, 산타 할아버지가 분명 내 카드를 읽었다면 장난감도 놓고 갔을 거라고. 그때 나는 보았다. 아빠의 당혹스러운 표정과 어쩔 줄 몰라하는 눈빛을.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신났던 아빠의 목소리는 금세 착 가라앉았다. 마치 잘못 던진 물수제비에 실패한 돌맹이처럼.


사실 산타는 없어. 이건 아빠가 주는 거야.


아니, 사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말을 안 했을 뿐이라고요. 산타를 믿는 편이 내가 원하는 선물을 받기 쉬우니까! 미운 7살의 얕은 생각은 말 한마디로 박살나 버렸고 내 취향이 아닌 떡볶이 코트만 손에 남았다. 그 다음 겨울까지 꽤 요긴하게 입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다음 해부터 아빠는 크리스마스를 챙기지 않았다. 산타가 없으니 선물도 없다나.


산타는 없었다는 새로울 것 없는 사실로 나는 큰 교훈을 얻었다. 누군가 선물을 준다면 토를 달지 말자. 중요한 건 선물 그 자체보다, 선물을 준비한 사람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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