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어린이 증후군

아빠의 엄마

by 이계절

가난과 우울을 짊어지고 자라난 초등학생은 착해야만 했다. 집안 사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들키더라도 그로 인해 비난받지 않기 위해. 당시 내게 선생님이란 부모님만큼 엄하고 무섭고 중요한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선생님이 되길 바랐고 나는 당연히 커서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꿈은 감히 꿀 생각도 못했다.


‘착한 나’는 어른의 말에 거역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시키는 일은 절대 마다하지 않고 모두 해냈다. 그 절정이 바로 초등 4학년, 11살 때였다.


당시 담임 선생님은 40대의 여자분이셨는데,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체형의 옷을 잘 입는 사람이었다. 한창 장난이 심한 나이인 11살 아이들을 호통과 눈빛으로 휘어잡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나도 나중에 저런 선생님이 되어야지, 할 정도로 나에게는 멋진 선생님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로 수업이 모두 끝나고 선생님을 도와 서류 정리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학생들이 선생님의 일을 돕는 일이 흔했는데, 대게 어렵지 않은 단순 노동이었다. 내일 나눠줄 안내문을 10장씩 나눈다거나 날짜 순서대로 서류를 정렬한다거나 하는 일이었다.


반에서 학원을 다니지 않는 사람이 나뿐이라 선생님을 돕는 일이 많아졌고, 공공연하게 나는 도우미라고 불렸다.


하루 이틀 늦게 들어오는 일이 잦자 할머니가 어디서 무얼 하다 오느냐고 물어봤다.


- 선생님이 나한테만 일을 시켜.

- 네가 믿음직스러운가 보다. 열심히 도와드려.

- 그런가 봐!


많은 아이 중 ‘나한테만’ 일을 시킨다는 것에 은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할머니의 말은 더 확신을 심어주었다. 역시 나는 다른 아이들 보다 선생님과 가까워.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어. 너무 좋아!


여름 방학이 끝나고 나도 학원에 다니게 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학교가 끝나면 곧장 학원으로 가야 하는데 걸핏하면 선생님을 돕느라 학원에 늦었다. 어느 날은 아예 못 간 적도 있었다. 한 달에 10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인 영어학원에 빠진다는 소식을 접한 할머니는 나를 붙잡고 다시 물었다.


- 왜 학원에 안 가. 그게 얼마 짜리인 줄 알아?

- 아니, 선생님이 뭐 좀 도와달래서...

- 학원도 가지 말고 도와달래?

- 학원 다닌다고는 말 안 했는데...


할머니는 기가 찬 듯 날 쳐다보더니 나더러 미련한 바보라고 했다. 아니, 억울해. 착한 어린이는 어른이 하는 말은 다 들어야 한다며. 심지어 선생님은 어른 중에서도 더 어른인 거잖아. 그럼 내가 맞잖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시키는 대로만 했는데 왜 나무라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그럼 나무랄 일을 시킨 할머니가 나쁜 게 아닌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일단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었다. 납득은 안 되어도 눈치는 있어서 다행이었다.


선생님은 학원에 다니게 된 나를 안타까워했다. 이제 누구에게 일을 시키냐는 농담도 했다. (농담이 아닌가?) 내 뒤를 이어 선생님을 돕던 아이는 나처럼 할머니와 사는 아이였다. 별거 아닌 공통점에 어쩐지 기분이 아주 나빴다. 불쾌했던 것 같기도 하다. 꼭 그 공통점 때문에 선생님이 일부러 나를 더 신경 썼던 것만 같았다.


학원에 늦지 않게 되자 할머니는 무척 좋아했다. 성실한 사람만이 살아남는다고 새로운 이념을 심기 시작했다. 착한 것과 성실한 건 비슷하지만 달랐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당시에는 설명할 수 없었지만 다르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았다. 그때부터 선한 것보다 성실함을 우선으로 뒀다. 무단 횡단은 나쁘지만 학원에 늦지 않으려면 그 정도는 혼자 용인하는 이상한 성실함이었다.


뭐가 되었든 할머니가 만족하니 괜찮았다. 내 모든 행동의 근간은 할머니의 칭찬이었으므로 이미 성공이었다. 그 근간이 흔들린 건 불과 2년 뒤 중학생이 되고 나서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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