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쯤 되면 적대감과 호의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나는 그걸 구분하는 능력이 굉장히 발달한 아이였다. 다른 말로 하자면 눈치를 많이 봤다는 말이다. 친구네 엄마가 아이스크림 하나 쥐여주는 것도 한사코 거절하는, 남에게 민폐 끼치면 죽는 줄만 알았던 내가 되고 말았다.
원인이 무언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아마 ‘엄마 없는 타를 내면 안 된다’는 할머니의 주문 때문 아니었을까? 할머니가 말하는 ‘엄마 없는 티’는 남에게 얻어먹거나, 도움을 받거나, 장난을 치는 행동이었다. 그 모든 것들은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이고 그건 곧 엄마가 없단 걸 사방에 광고하는 행동이라고 했다.
과영양으로 키와 몸무게 모두 표준편차에서 많이 벗어난 데다 행동마저 주변 눈치를 많이 보려니 자신감은 자연스레 바닥쳤다. 이렇게 만든 게 바로 할머니면서! 왜 친척들이 나보고 살쪘다고 하면 할머니는 그냥 웃고만 있냐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1학년 여름, 학교가 끝나 집에 가려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슬쩍 고개를 내밀어 보니 아무래도 그냥 걸어가기엔 무리이지 싶었다. 근데 다들 어떻게 알았는지 학교 건물 앞에 엄마들이 우산을 들고 쭉 서 있었다. 자식 끝나는 시간을 맞춰 우산을 들고 마중 나오다니. 부럽다.
혹시나 나도 할머니가 오진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자리에 서서 삼십 분을 넘게 기다렸다. 할머니는 없었고 나는 계단 뒤에 있는 공중전화로 갔다. 그때만 해도 초등학생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는 건 아주 드문 일이었고, 학교에는 공중전화가 비치되어 있었다. 1541 내지는 1633을 누르고 집 전화번호를 누르면 돈이 없어도 전화를 걸 수가 있다. 대신 전화를 받는 쪽이 요금을 낸다. 근데 그것도 받아야 말이지. 전화를 아무리 해도 아무도 받지 않으면 뭐, 그냥 끊어야지.
이미 한 시간은 지난 뒤라 1학년은 나밖에 없었다. 방도가 없으니 결국 장대비를 맞으며 집까지 걸어가기 시작했다. 당시 내 걸음으로 30분 정도 거리에 집이 있었는데, 아마 성인 기준으로는 15분 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다.
비에 젖으니 통통한 몸에 옷이 달라붙었다. 아무리 여름이래도 홀딱 젖어 오래 걸으면 추워서 덜덜 떨리기 마련인데, 그런 나를 보고 주변 어른들이 집이 어디냐고 데려다 주겠다고 한마디씩 말을 걸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우산을 빌려 쓰고는 집을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모두 거절했다. 나를 위해 그들이 굳이 우리 집까지 수고하는 건, 큰 폐를 끼치는 거라고 생각했다. 폐를 끼치면 엄마 없는 티를 내는 거니까, 할머니한테 혼날지도 모른다.
이를 악 물고 집까지 도착했을 때는 억울하면서 뿌듯했다. 질척대는 신발을 벗고 젖은 양말로 거실을 지나 방으로 들어가니 할머니는 자고 있었다. 이게 말이 되나? 8살짜리가 혼자 비를 맞으며 30분을 걸어올 동안 한 번도 안 깨고 잤다고? 자고 있는 할머니 앞에서 엉엉 울고 말았다.
어머, 뭐야. (시계를 한 번 보더니) 오늘은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다른 애들은... 다 엄마가 데리러 오는데... 왜...
(그제야 젖은 나를 발견하고) 전화를 하지. 그래서 이 비를 맞고 걸어온 거야? 나는 비 오는 줄도 몰랐네.
(계속 눈물만 나는 중)
다른 애들은 엄마가 데리러 오는데 너는 엄마가 없어서 서러웠어?
(눈물 나는 부분이 그게 아닌데 우느라 숨이 가빠서 반박할 시간이 없다)
엄마가 없다는 게 그런 거야. 뭐 어쩌겠니. 밥이나 먹자.
아니! 난 아직 하고 싶은 말 하나도 못했는데! 내가 서러웠던 건 엄마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평소보다 두 시간 가량 늦었는데도 날 먼저 찾지 않았던 할머니에게, 빗소리가 이렇게 크게 나는데도 내가 어떻게 돌아올지 전혀 생각하지 않는 할머니에게, 흠뻑 젖은 날 두고 태연히 밥을 지으러 간 할머니에게 화가 났던 건데. 지금 보니 이게 엄마가 없는 서러움인가?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한참을 히끅히끅 울다가 씻고 나와서 먹는 밥은 맛있었다. 늘 먹는 된장국과 쌀밥이었는데 왜 유난히 달았는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들어가 잠에 든 나는 감기에 걸렸다. 당연했다. 다만 밤 늦게 들어온 아빠는 내 얼굴을 볼 새도 없이 바로 잠들었고 할머니는 역시나 한번 잠들면 절대 깨어나지 않는 사람이라 새벽 내내 나 혼자 앓는 수밖에 없었다. 근데 또 앓다 보니 아침에는 괜찮아졌다. 아니, 안 괜찮았지만 할머니는 내게 괜찮다고 주문을 걸었다. 학교를 빠지는 건 어떤 이유에서든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이후로 나는 절대 집에 콜렉트콜을 걸지 않았다. 집에 전화할 시간에 그냥 내가 해결하는 게 빨랐다. 어쩌면 할머니는 나를 강하게 키운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