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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o Nov 02. 2017

마흔

#01.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 나를 제대로 알기

작년과 올해 개인적으로 고비가 있었다. 그 고비를 지나면서 늘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갈구했던 것 같다
1/왜 사는가
2/무엇을 위해 사는가
3/어떻게 사는가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은 의외로 쉽게 나왔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기 때문에 산다. 그렇게 때문에 1번에 대한 고민은 더 이상하지 않기로 했다. 2와 3에 대한 고민은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는 꽤 되었고 (본격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성인이 된 이후로부터 그리고 철들면서는 더더욱 이 질문에 대해 답해보려고 노력하였으나 사실 답이 안 나왔다.) 하도 답이 안 나오길래 답은 못 구하겠고 질문이 혹시 2개라서 답을 여러 개 찾아야 해서 힘든가 싶어서 (ㅎㅎ) 질문을 하나로 만들어봤다.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 것인가

올 한 해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내게 그리고 내가 속해 있는 사회에 가족과 친구들을 통해서라도 힌트라도 얻고자 분투한 한 해인 것 같다. 물론 이 질문은 너무나 심오해서 심플하게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분투 끝에 답을 언젠가 얻는다고 해도 영원하지도 않을 거라 삶의 경험이 더해지고 가치관이 변화하면서 계속 변할 것 같기도 하다. 

일단, 일 년 가까이 매일매일 고민해도 답이 안 나온다. 답이 안 나와서 왜 안 나오는 가를 고민해봤다. 의외로 사람들이 간과하고 사는 것이 있는데 이 비슷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가장 큰 전제는 '나는 나 스스로에 대해서 완벽하게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나를 아는 노력에 대해서는 어쨌건 다 했다는 전제 하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하고, 나처럼 답이 안 나온다고 투덜거리거나 중간에 지쳐 포기하고 그냥 대충 하루하루를 살고 있기도 하다. (물론 답을 안 찾아도 된다. 그냥 하루하루 대충 사는 것이 나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싶다. 그리고 나는 어이없게도 어쩌면 너무 당연한 건데 그동안 나 스스로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고 과신(?) 해왔던 것 같다. 사실은 서른여덟 해나 나 스스로를 아주 잘 매니지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면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그 전제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1/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2/ 나는 나를 아는가
3/ 어떤 특색이 있는가
4/ 나는 나답게 살아왔는가
5/ 4번 질문에 대한 답이 NO라면 '나'답게 살고 싶은 삶은 어떤 것인가?
6/ 굳이 5번 질문을 하는 이유는 사람은 누구나 본질적인 가장 '나'다운 삶을 살 때 행복하고 보람을 느끼며, 반대로 그렇지 못할 경우 힘들고 불행하기 때문이다
7/ 그렇다면 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나'다운 삶을 살지 못 해왔기 때문인가?

이렇게 질문을 하면서 '나'를 찾기 시작했다. 프로필상으로, 형식적으로 나타나는 몇 살이고, 어디에 살고, 어느 학교를 나왔고, 무슨 일을 하고, 결혼 유무나 자식을 키우는지, 얼마를 벌고 이런 거 말고..

무얼 좋아하고
어떤 주제에 흥미를 가지고 
반대로 어떤 일에 분노를 하며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며
언제 기쁘고, 슬프고, 외로운지...
이제 서른여덟, 서른여덟씩이나 먹은 내게는 아무도 물어봐주지 않는 (어쩌면 일상에서는 이럴 필요도 시간도 없는) 질문들을 내게 하기 시작했다. 

1/나는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가치를 추구하여 
후가시 넣은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환상이 없으면서도
사회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한 합리적/실용적 품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따라서 명품이나 허세적인 그 어떤 것에 관심이 없으면서도 내가 참석해야 하는 우리 회사 브랜드의 격식에 어울리는 치장은 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2/시간관념에 강박증이 있어서 절대로 늦는 법이 없는데, 이건 내 시간이 중요한 것처럼 다른 이의 시간도 중요하다는 것을 존중하기 위한 생활의 철칙 같은 것이다. 따라서 내가 상대의 시간을 존중하듯, (상대도 내 시간을 존중해주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을 경우 몹시 실망하는 편이다.)
3/ 그 어느 곳에도 얽매이고 싶지 않아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소속감을 가지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혼자만의 자발적 고독의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져야만 내가 속한 그 어떤 곳에서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낼 수 있다.
4/ 명령하거나 복종시키려는 그 어떤 대상, 존재에 수긍하지 못한다. 이에 대해서는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고 대항하려 한다. 특히 합리적인 이성으로 납득할 수 없는 그 모든 사람, 인습, 사회제도 등등에 강한 적개심을 보인다.
5/ 자유의지를 가진 자유인이지만 투철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위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면서도 내가 져야 하는 책임은 꼭 이행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한다
6/ 자유롭게 탐구하고 사색하기 좋아하여 뛰어난 관찰력과 기억력을 가지고 있으나 이것이 내가 관심을 갖는 곳에만 발휘되는 selective capacitiy임도 인정한다.

이렇게 계속 계속 생각하고
가끔은 적어도 보다가
결론 내린 것은
내 생활에서 '자유' '자율성' '독립'이라는 키워드가 나왔다. 이 세 가지야 말로 너무나 중요한 키워드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러나 내가 살아온 길은 이와 너무 반대인 나는 굉장히 권위적인 부모님 슬하에서 딴짓 한 번 하지 못 하고 자란 범생이로, 어릴 때는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눈치를 보고, 사회인이 되어서는 상사의 눈치를 보며 그야말로 반자유, 반자율적, 반독립적인 삶을 살아오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그래서... 그렇게 힘들었구나. 나는 자유로운 사람인데.. (자유로운 사람이 책임이 없는 사람이라고는 오해하지 마시길. 나는 자유롭기도 하면서 그 누구보다도 강박적인 '책임감'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소결론이 왜 내가 가끔 몹시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는지, 내가 앞으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하는데 힌트를 주었다. 너무 긴 이야기라.. 다음 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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