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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o Jul 23. 2020

화해

나와 화해하다

떨어지는 에너지와 탄력, 가물해지는 기억력과 시력에도 불구하고 마흔이 마음에 드는 몇몇의 이유가 있다. 에너지와 시간이라는 자원이 넘치던 시절엔 오히려 몰랐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것이 있다.


힘이 떨어져 급히 당분을 섭취하는 오후 4시 반 ‘내가 힘떨어졌다는 걸 들키면 안 되지’노화가 온몸에서 티난다는 걸 나조차 인정하기 싫었던 노화journey의 초입. 그땐 믹스커피나 홍삼을 먹으면서 뛰어 회의에 들어갔다. 몇해 더 지나 지금은 노화를 인정하고 배워가는 단계랄까?? 이젠 4시 반엔 나는 힘이 떨어진다는 것을 인정하고 멍때리며 홍삼과 온갖 건강보조제를 먹는다. 이것저것 힘난다는 비타민과 건강보조제는 다 사들여서 (이거라도 먹어 힘이 난다면야 돈으로 힘을 살 수 있다면 아암... 온갖 40대 타겟의 건강보조제브랜드의 호갱이 된) 하나씩 꺼내서 멍때리며 먹는데 드는 시간은 5-10분. 힘이 없으니 멍때리며 생각을 한다기 보다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너는 왜 이 비타민을 먹냐?’

‘이거 먹고 힘내서 뭐 하려고?’

‘이 일을 하면 뭐가 대단하냐?’

‘안 하고 때려치고 이대로 하루종일 멍때리고 싶지?’

‘근데 때려치면 그 담엔 뭘 할 거니?’

‘넌 왜 사니?’

그렇게 생각들이 지나가면 다시

‘이제 하던 일 마저 하자’로 돌아간다

신기한건 노화로 내가 어제 4시 반에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는 걸 잊고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는 거다. 금붕어가 되어가나????


좋은 점은 힘이 떨어지니 굳이 힘을 내지 않는다

그러고 나니 뭐 대단히 힘주며 사나 싶다

회의때마다 만만해 보이지 않으려고

힘을 하도줘서 눈이 빠질 지경이다

반대편에서 나보다 2배로 눈에 힘준 사람이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려는 듯 목에도 힘을 준다

이전 같았으면 ‘이 자식이!!!’하며 나는 더 했을텐데

눈에 힘빼고 바라보니 마음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녀석... 귀엽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게 됐다 처음으로

마치 다중이가 된 마음으로 내가 나를 본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 스스로와 화해했다

회의실에서 상대편을 바라보던 그 마음으로 내게

‘너를 이제 이해해’

이제서야 겨우 나 스스로와 화해한 것 같다

어쩜 대단할 수도 또는 아무 것도 아닐 일에 힘주고 산 나, 그 힘으로 나와 싸우던 나를 내가 본다

‘너도 귀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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