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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스이즈아프리카 Aug 17. 2023

소원을 말해봐

1차 설계라고 이름 붙여야 하는 안타까움.

소원을 말해봐


 설계의 과정은, 그리고 건축사무소는 우리에게 지니 같았다. 

원하는 걸 말해보라는 말. 

이런 말을 언제 들었었더라? 아마 어릴 때 몇 번, 연인과의 말장난 몇 번 ? 

그러나 아주 어린 그 때에도 알고 있었다. 기껏해야 상대방이 기대하는 내 소원은 자전거 정도일거라는 걸. 내 바람에는 어떤 분명한 한계점이 존재한다는 것. 


그런데 이 번엔 진짜다. 어쩌면 한계없이, 마구 상상해낼 수도 있는 일이었다. 막 동굴이나 벙커같은 것도 될 수 있고 막 크리스탈 전등같은 공간도! 그런 경계없음이 설레었다.

 그러나,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건축비였다 ! 



죽어도 못 보내 어떻게 널 보내 . (feat. 1차설계)


건축 단계에 막 발을 디딘 호기로운 우리는 원하는 것을 취향껏 내질렀다. 심지어 어떻게 자료를 전달해야할지 몰라, 막 자기소개서 처럼 주절주절 엄청 써서 보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이예요' 라고 알리면, 더 우리같은 집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 엄마도 날 잘 모르는데, 고작 그런 몇 장의 글로 우리를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지금 돌이켜보면 어이가 없다. 이걸 받아든 건축사님의 심정이 지금은 좀 이해가 간다. 적어도 우리가 '두서없는 사람' 이란 건 알린 것 같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반가운 연락이 왔다. 설계가 나왔으니 사무실을 방문해달라는 건축사무소로부터의 연락이었다. 

 건축사무소에서 보여주신 자료는, 충격적이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게 이런건가?!
관상 좀 보시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의 삶을 표현함에 있어, 이보다 정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너무너무너무너무 마음에 쏙 들었던 설계.

내가 딱 바라던 건축과 환경과 공간 구성 딱 그 자체였다.

 건축사님들의 치열한 고민이 녹아있는 듯했고, 집 내부의 동선만 우리 생활에 맞게 조금 손대면 더할 나위없어보였다.


그러나 우리의 부족으로 인해 이 멋진 설계를, 이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내줘야했다.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원자재가 40%가까이 상승한 것도 있고, 바닥면적이 80평 정도 되어 상상을 초월한 시공 견적이 나왔다. 인테리어나 주변 환경 조성등을 감안했을 때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닌 듯했다.

   아니, 다 털어내면 지어볼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집 때문에 마음 졸이고 쪼들리기 싫어서 이 곳에 왔고, 집을 짓겠다고 결심한게 아니었던가. 헷갈리는 순간들이 계속 찾아온다. 그 때 마다 정신줄을 잡아야한다. 그렇지만 그만큼 너무 마음에 들고, 놓기가 아쉬웠다.


이쯤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건축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멋진 설계와 진실한 시공등 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완성되는 것이 건축물이겠으나,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건축주의 재력이다. 건축주가 멋진 설계를 얼마나 감당해낼 수 있는지의 문제이다. 처음에 상담하고 우리를 거절했던 건축사무소가 말하는 게 이거였다. 그들도 이런 일들을 여러번 겪으며 나같은 쩌리 건축주들을 걸러내는 방법을 우아하게 터득한 것이다. 그에 반해 딱봐도 쩌리 건축주인걸 알면서도, 우리 손을 잡아준 지금의 건축사무소는 얼마나 고마운가.


 그렇게 다시, 설계의 과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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