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성킴 Jan 26. 2024

3인 가족 오사카 여행기 - 둘째 날

 오사카에 왔으니 유니버셜스튜디오에는 꼭 가야만 했다. 남편과 둘이 가서 신나게 놀았던 그곳에 우리의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것 자체가 특별한 일이었다.

 9월의 오사카 날씨가 제주도 한 여름 날씨만큼 덥다는 걸 간과했던 건 내 잘못이지만 이렇게까지 더울줄이야. 어마어마한 햇볕과 습도로 아침부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닌텐도 월드 확약권을 구매하지 못한 우리는 오픈런을 위해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다.


사진속 우리는 너무나 평온하다


 일찍 나선 것이 무색하게도 전철 노선을 잘못 타는 바람에 30분이 늦어져 열심히 달렸다. 거기다 어제 여행 와서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 정안은 밤 12시가 넘어서 잠드는 바람에 컨디션이 좋지 못했다. 비록 시차가 없는 곳으로의 여행이지만 예민한 아이들은 아무래도 수면시간이나 먹는 것 등에서 조금 더 신경을 써줘야할 것 같다. 하루의 시작이 삐걱삐걱 거리는 것 같지만 그래도 닌텐도월드 확약권을 위해 우리는 달렸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유니버셜 스튜디오 앞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있었다.


긴장한 아들


 다행히도 우리는 닌텐도 월드에 입장할 수 있는 시간을 선택해서 예약할 수 있었고 그때부터 엄청난 안도감이 밀려왔다. 정안은 처음 보는 큰 규모의 놀이동산에 조금 긴장한 것 같았다.


계속 저기압. 엄마만 신났다


 닌텐도 월드 확약권이 없는 것도 없는 것이지만 놀이기구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입장할 수 있는 자본주의 익스프레스 티켓도 없었기에 뭐 하나를 타려면 1시간씩은 줄을 서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래서 놀이기구는 딱 하나만 탔다. 뭣도 모르고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서 그냥 탔다. 이것 또한 내 욕심이었다. 정안은 크게 놀이기구에 관심이 없었다. 타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것저것 타 봐야지 하는 나의 욕심이었다. 아이가 스스로 뭔가를 요구하지 않는다면 굳이 1시간씩 기다려가며 놀이기구를 타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오히려 급속도로 컨디션이 안좋아질뿐.


사진은 이 날의 온도 습도를 담을 수 없으니 그저 동화속 같구나..
웃지 않는 아이ㅠㅜ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뜨거워지는 날씨에 정안은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다. 호텔로 돌아가겠다고. 동그란탕이 있는 목욕탕이 있는 우리 호텔로 돌아가고 싶다고. 모두가 행복한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혼자 호텔로 돌아가겠다고 우는 아이가 당황스러웠지만 이런 날씨에 짧은 반바지를 입힌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안 되겠다 싶어 조금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다. 어차피 아침도 제대로 못 먹었으니 일찍 밥을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거기다 점심시간에는 모든 레스토랑에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기 때문에 조금 일찍 가는 게 맞다. 유니버셜 스튜디오에는 외부 음식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있다. 가방 검사도 하지만 주머니까지 뒤지지는 않기 때문에 아이들을 달래주고 힘을 줄 초콜릿바나 사탕, 쿠키류를 조금 가져가는 것이 좋다.



 에너지를 조금 충전하고 실내 위주로 돌아다니기로 했다. 생각보다 실내 테마파크가 크고 다양해서 다행이었다. 실내에서 놀다 보니 이동하는 시간에 야외를 걸으면 나조차도 견디기 힘든 더위가 느껴졌다. 실내 테마파크에서 열심히 뛰어놀다가 잠이 든 우리 아들. 이게 과연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 4세 정안에게 이 유니버셜 스튜디오는 너무 컸던 것일까.


 

 그래도 아들이 잠들어 준 덕분에 해리포터 성에 가볼 수 있었다. 정안이 깨어 있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다행히 기회가 주어졌다. 종코의 장난감 가게에서 정안이 깨어나면 줄 롤리팝도 사고 빠른 속도로 둘러보고 퍼레이드 시간에 맞춰 큰길에 자리를 잡았다.

 이때부터였나요..? 우리 아들이 유니버셜과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

 생각해 보니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는 오직 마리오와 포켓몬스터인데 그전에는 관심도 없는 캐릭터들과 놀이기구를 억지로 보고 타고 있었다. 처음 오는 곳이 신기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다 본인이 좋아하는 캐릭터 친구들이 (그것도 진짜같은!) 나와서 춤을 추니 이제야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드디어 웃는 얼굴!!!!!!


 드디어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박수도 치고, 손도 흔들어 주면서. 보통의 정안은 누군가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스타일은 아니다. 포켓몬스터는 정안의 손을 흔들게 만들었다. 신나는 퍼레이드를 보고 나니 닌텐도 월드에 입장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래, 우리 이것 때문에 왔잖아 조금만 더 힘내자. 멀리서 마리오 성이 보이면서부터 정안의 기분이 점점 좋아졌다.



7-8년 전에 왔을 땐 없었는데 정말 너무 멋졌다. 게임 속에 그대로 들어온 것 같았다. 한국에서부터 가져간 마리오 모자를 쓰고 있었더니 모든 직원들이 마리오상하고 인사를 해주고 모자가 멋지다고 엄지 척을 해주니 머리에 뭐 쓰는 거 싫어하는 우리 아들 한 번도 모자를 벗지 않았다.

 거기다 어트랙션 대기를 실내에서 할 수 있어서 1시간쯤 기다리는 거 문제도 아니었다. 핸드폰으로 포켓몬스터도 잡고, 중간중간에 설치된 물음표 블럭에 가서 점프도 하고 진짜 같은 인테리어들을 구경하면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기차를 타고 마리오성을 한 바퀴 돌았는데 그때 본 표정은 지금까지도 잊히질 않는다. 신기함, 행복한, 설렘 그런 모든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들이 얼굴에 가득 찬 그 표정. 아이만이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 그래 이 표정 보려고 여기에 왔지. 힘들었던 지난 몇 시간이 바로 치유되었다.



 쿠파의 성에도 가고, 밖에서 할 수 있는 여러가지 미션들이 있었지만 미션을 다 성공하기에 정안은 아직 어렸다. 우리 다음에 미션 성공을 다 할 수 있을만큼 커지면 그 때 또 오기로 하자. 밤이 되어 조명이 멋지게 켜진 마리오성을 보고 싶었지만 기다릴 힘이 없었다. 마리오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 했더니 또 대기만 40분. 그냥 포기하고 우리는 유니버셜 스튜디오 밖으로 나갔다. 굿즈샵에서 산 과자나 인형들보다 더 좋아했던 건 나오기 전에 만들었던 코인이었다.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름...)



 잠이 부족해서 기분이 좋지않았고, 너무 더웠고, 기다림이 지루했지만 우리 아들은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행복했던 기억만 가지고 돌아왔다. 너무 즐거웠다고 또 가고 싶다고 말한다.

 저녁을 먹을 장소를 미리 알아보고 가진 않았고, 규카츠를 먹고 싶어서 유명한 곳을 검색해서 가보았다. 아침도 점심도 대충 빵으로 때운 터라 배가 많이 고팠을 아들을 데리고 또 대기. 그래도 여기에서 또 모든 힘듦이 녹아내리는 일이 있었다.


토미타 규카츠. 우리 아들의 원픽


 규카츠를 몇 입 먹더니 "엄마 여기 바로 구워서 먹으니까 더 맛있는 거 같아! 엄마 맛있어서 너무 행복해."라는 말을 했다. 정안이 맛있어서 행복하다는 말을 하다니. 밥 먹다가 눈물이 날 뻔했다. 입이 짧고 먹는 것에 큰 흥미가 없는 아이가 맛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해주다니. 먹는 것 때문에 고생했던 몇 년 세월이 다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밥을 맛있게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오사카의 저녁을 느껴본다.

 미취학 아동은 일본 갈 때 꼭 유모차를 가져가는 것을 강력추천한다. 유모차가 없었다면 우리는 여행 자체를 시작하지 못 했을 것이다. 평지로 되어 있어서  끌고 다니는 것이 아주 편리하다. 특히 걷는 걸 좋아하는 우리 부부에게는 더더욱이 꼭 필요했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은 저녁 9시까지 라멘을 제공해 주는데 나는 우리 아들이 이렇게 잘 먹는 건 정말 처음 봤다. 숙소에 딸려 있는 작은 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나와서 라멘을 두 그릇을 먹는다. 여행 오길 정말 잘했다고 느껴지는 하루였다. 잘 먹는 것을 보기 힘든 아이기에 이런 것이 가장 뿌듯한 엄마다.


 사실 4-5살 어린 애들 데리고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가는 게 맞는 것인가,하는 생각을 여행 후에 많이했다. 부모의 욕심이 아닐까? 아이들은 그냥 키즈카페에만 가도 좋아하는데 굳이 이 고생을 해야하나? 정답은 '그래도 가야한다.'이다. 다녀 온 후 정안은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대한 이야기를 가끔씩 한다. 아직도 기억해? 할 정도로 시간이 흘렀는데 문득문득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또 가고싶다고. 너무 덥고 힘들지 않았냐물으니 그렇지 않다고 한다. 힘들고 지쳤던 기억은 아이의 머릿속에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즐겁고 재밌었던 기억만 가득차 있었다. 그렇다면 안 갈 이유가 없다. 순간은 힘들지 몰라도 추억은 행복을 남긴다. 엄마아빠는 비록 힘들고 지칠지라도 아이들을 위해서 유니버셜스튜디오에 꼭 다녀오시길.

 이튿날 오사카 여행도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