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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성킴 Jan 01. 2021

2021

더 이상 나이를 세지 않는 사람들에게

 2021년을 글쓰기로 시작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인 듯하다.

 요즘 글을 통 적지 못했던 것은 정안이의 가정보육 때문이었다. 2주간 미디어를 끊고 집에서 24시간 붙어 있다 보니 글을 쓰기가 힘들었다. 같이 자고, 같이 먹고, 같이 노는 신생아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으로 지내고 있다. 나에겐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하루하루지만 정안이에게는 늘 새로운 하루하루를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매일 하던 것만 하게 해주는 것이 미안해질 즈음 제주에는 온 세상을 얼어붙게 할 만큼의 많은 눈이 내렸다. 몇 년간 눈을 보지 못한 나에게는 황홀경을 안겨주었고, 눈 내리는 것을 처음 (제대로) 보게 된 정안이에게는 신선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2020년을 무사히 잘 보냈다고 주는 선물 같은 풍경이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겨울이라니.

모진 바람과 얼어붙은 땅의 불편함이 잊힐 만큼 아름다웠다. 내리는 눈을 보며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지금에 감사함을 느꼈다. 정안이에게 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나왔는데 나만 강아지처럼 신나 하고 심드렁한 정안이 모습에 살짝 당황했다. 눈은 오든가 말든가 뚱한 표정에 걷지 않으려고 하는 마당에 눈을 즐기는 시간은 찰나였지만 그래도 썰매는 좋아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사람이 없고 눈이 많이 쌓인 곳에 가서 멋진 사진을 남기고 싶었지만 현실은 도로가 꽁꽁 얼어 30분 걸리는 거리를 오빠는 2시간 만에 걸려 집에 도착할 만큼 도로 상황은 열악했고, 그 말인즉슨 차 끌고 어디 나다닐 생각 마라 하는 것과 같았다. 집 앞을 걸으며 눈 오는 모습을 보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눈이 온 것이 최근 가장 큰 일이었던 것 같지만 제법 큰 행사들이 지나갔다.

 크리스마스가 있었고, 정안이의 생일이 있었다.

 2021년에 정안이는 4살이 된다. 25개월에 4살이라니. 억울하다고 해야 하나 아님 이득이라 생각해야 하나. 정안이 생일과 크리스마스는 일주일이 채 차이가 나지 않아서 행사의 연속인 기분이 든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또 연말이니 정말 12월은 내내 파티 분위기다.

 정안이가 태어난 2018년의 크리스마스와 새해는 조리원에서 남편과 둘이 보냈다. 2019년엔 가족 친지분들만 모시고 돌잔치를 했고, 우리 부부가 이어 준 친구 커플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다. 말이 파티지 카탄(보드게임)을 하기 위한 핑계였다. 2020년 생일엔 우리 셋이 조촐하게 케이크를 불었다. 코로나 때문에 외식도 못한 작은 생일이었다. 대신 처음으로 산타를 만나는 크리스마스였다.

 

 


 나는 정안이와는 다르게 더 이상 나이를 세지 않는다. 어디 가서 나이를 이야기할 일도 없거니와 서른이 지나고 나서는 시간의 속도가 너무나 빨라서 내가 느끼는 나이와 현실의 나이의 갭이 커서 내가 따라잡지 못하게 되었다. 1년에 한두 번 나이를 말할 일이 생기는데 ‘몇 살이더라.’ 하고 한 번 생각하고 말하게 된다.

 나이는 중요치 않다. 하지만 또 나이는 중요하다. 나이 듦에 있어서 시간의 축적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내가 살아온 만큼 나는 현명해야 하고, 지식이 쌓여 있어야 하고, 여유가 있어야 하며, 누군가에 귀감이 되는 뭔가를 쌓아 두어야 한다.

 반면에 뭔가를 시작하고자 할 때, 도전할 때, 혹은 뭔가를 배워야 할 때가 되면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결국 나이 든다는 것은 이리 보나 저리 보나 어려운 일인 것이다.

 나는 과연 내 나이만큼의 농도가 짙은 사람인가. 글쎄, 잘 모르겠다.

 2021년에는 조금 더 진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조금 더 나이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새해를 맞아 다짐하는 걸 보면 아직 애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뭐 어때 다 각자 나름의 속도가 있는데. 이런 세상 속에서도 2021년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걸어본다. 아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모든 부모의 소망도 함께. 말도 빨리 하고 키도 쑥쑥 크길 바라는 나의 욕심까지 담아 새로운 해를 맞이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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