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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성킴 Dec 10. 2020

아기와 함께 하는 여행

사실 나는 여행기를 적고 싶었다.

 대학시절부터 나의 꿈은 나의 사진과 글로 책을 쓰는 것이었다. 막연한 꿈이었다. 그래서 마음먹은 것이 아이와 함께 다니는 여행기를 한 번 써보는 것이었다. 사랑이나 이별 같은 그런 청춘의 한 단면을 적어 내려갈 줄 알았는데, 여행기라니. 그것도 아기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니. 미루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아기와 함께하는 여행을 제대로 시작을 하려는 찰나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여행기를 적고자 한 이유는 이러하다. 먼저 사진이 잘 나온다. 아주 심플하지만 중요한 문제이다. 사진과 함께 여야지만이 부족한 나의 글을 커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해외에서 찍는 사진은 뭔가 더 '그럴싸하다'. 똑같은 자동차이고, 똑같은 하늘이고, 똑같은 건물인데 뭔가 더 멋지고, 뭔가 있어 보인다. 그 부분에 대해 대학시절 전공 수업 교수님께 여쭤본 적이 있다. 알려 주신 교수님 말씀으로는 공기의 밀도, 햇빛의 양과 세기 등이 그런 것들을 다르게 만든다고 하셨다. 자세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오~"하며 고개를 끄덕였던 것은 기억이 난다.

 두 번째, 조금 낯간지러운 글을 써도, 다시 보면 엉망인 글을 써도 꽤 괜찮은 글처럼 보인다는 거다. 꽤 괜찮은 사진 밑에 낯 간지러운 글귀 몇 개. 그거면 여행기를 술술 써 내려갈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이 여행기를 쓰고자 하는 시작이었다. 아이와 함께 한 첫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는 망설임 없이 글을 딱 하고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천만에, 그건 나의 오산이었다.

 마지막으로 정안이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우리의 추억을 담아서 선물로 주고 싶었다. 정안이가 글을 읽고 이해를 할 수 있을 때쯤에 우리는 네가 기억 못 하는 그때 이런 여행을 다녔고, 엄마는 이런 생각을 했어하고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와 내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안이는 아들이고, 정말 큰 변화가 없으면 외동아들로 자라게 될 것이다. 아들이 커갈수록 부모와의 소통이 조금 힘들어질 때쯤 이 책이 우리를 이어 줄 거라는 그런 막연한 상상도 하면서.


 

 아기와 함께 하는 여행은 혼자 하는 여행이나 친구, 연인과 함께 하는 여행과는 그림이 조금 다르다. 낭만이나 일탈, 설렘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걱정의 연속이며 당황스러움의 연장선이다. 아기의 행복해하는 모습, 아기의 웃음소리가 이 여행의 치유이자 목적이 된다. 나만을 위해 하던 여행이 타인을 위한 여행이 되었을 때 나 역시 그만큼 성장하게 된다. 아기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다. 모든 것이 아기의 시선이 중심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새롭게 보인다. 혼자 갔을 때 느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들에 감동하고 감탄하고, 전혀 불편하지 않았던 것들에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예쁜 옷, 가벼운 가방, 풀메이크업이 없는 여행. 쉴 새 없이 찍어대던 셀피가 아닌 아기의 모습을 담느라 바쁜 여행. 내가 좋아하는 음식, 팬시한 레스토랑에 가는 것보다 아기의자가 있는지, 아기와 함께 갈 수 있는 그런 식당인지가 중요한 여행. 나의 컨디션보다는 아기의 컨디션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여행이라 힘들지도 모른다. 나의 예쁜 셀피는 남길 수 없지만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미소의 가족사진을 만들어 낼 수 있고, "거기 갔을 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 하는 무용담보다는 앞으로 쉴 새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우리 가족의 새로운 추억거리가 생기는 그런 여행을 할 수 있다.  


 여행을 가기 전 나는 수없이 많은 걱정에 쉽사리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냈다. 처음 해 보는 것이라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왜인지 모르지만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일이 일어날 것을 예상할 때 보통의 시나리오는 최악의 상황을 써 내려가게 된다. 우리의 첫 여행지는 호주였다. 나와 남편은 어디로 이사를 가기 전 그곳에 미리 가서 어느 동네에 사는 게 좋을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동네인지 미리 답사하는 것을 좋아한다. 캐나다에서도 그랬고, 호주도 그러한 이유에서 첫 여행지가 되었다. 정안이가 10개월이 될 때쯤의 일이다. 10시간 이상의 장거리 비행을 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너무 울면 어떻게 하지, 안 자면 어떻게 하지하는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안이는 원래 잘 울지 않는 아기였다. 그리고 낯가림도 없는 아기였다. 그런 순한 기질의 아이를 왜 잘 안 자고, 많이 우는 아이로 만들어 사서 걱정을 했는지 모르겠다. 호주에서 먹을 게 떨어지면 어떡하지부터 해서 무슨 무인도에 가는 사람처럼 굴었다.


벌써 10년 전, 혼자 여행하던 그때의 그 공항

 

 나는 공항을 좋아한다. 비행기 타는 것도 좋아한다. 여행의 시작은 공항에서부터 시작된다. 공항에서의 설렘만큼 기분 좋은 것이 있을까. 하지만 이 여행에서만큼은 공항의 설렘을 즐기지 못했다. 그때만 해도 정안이는 끓인 보리자를 마시는 시기였고, 끓이지 않은 물로는 분유를 타서 주지 않던 초보 엄마 시절이었다. 정수기 물을 마시면 큰일 나는지 알았다. 정말 지금 생각하면 사서 고생을 한 것 같다. 가방에 짐이 너무 많았다. 휴대용 전기포트에 뜨거운 물을 담은 보온병, 한 번 끓였다 식힌 차가운 물을 담은 보온병, 아기 분유, 간식, 보리차를 담은 물통, 정안이의 최애 이유식 맘마밀, 거기다 커다란 베개와 이불까지. 기가 찰만한 짐 싸기 실력이다. 무거운 짐과 오랜 대기 시간은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거기다 휴대용 유모차까지 가지고 다니려니 편하긴 하지만 아기가 안 앉으면 그대로 짐이 되었다. 그래도 좋은 것이 있다. 비행기를 탈 때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는 것. 하하. 그 눈치 싸움의 대열에 낄 필요 없이 아기와 함께라는 이유 하나로 특권을 누릴 수 있을 때 이 모든 고생이 조금 누그러 진다. 아기를 데리고 여행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눈을 가늘게 뜨고 우리를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이유를 말해 주기보다는 한 번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베시넷을 미리 신청해 놓아서 넓은 앞좌석으로 배정이 되었고, 니마는 베시넷에 앉아서 아주 편안하게 출발할 수 있었다. 다행히 비행기에 사람도 많이 없었다. 앞뒤가 텅텅 비어있어서 다행이었다. 관종(관심을 바라는 사람)이었던 정안이는 새로운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웃어 줄 때마다 살인미소를 날려주며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안 봐주면 그 무렵 잘하던 개인기를 누가 볼 때까지 해댔다. 아기 이유식도 나오는데 정안이에게도 먹여보았다. 처음 먹는 거라 그런지 먹다가 토를 해서 우리의 영혼을 쏙 빼놓은 것도 잠시, 잠도 잘 잤다. 밤 비행기를 타서인지 잘 시간이 되니 잠을 잤다. 6시간은 거뜬히 잤던 것 같다. 하지만 베시넷에서 떨어질까 봐 나는 한숨도 못 잤다. 자도 되는데 잘 수가 없었다. 그렇게 걱정 인형이 호주로 향했다.



 11월의 브리즈번은 생각보다 꽤 추웠다. 여름옷만 잔뜩 챙겨간 우리는 몇 벌 챙기지 않은 긴팔로 단벌신사로 지냈지만 그 시간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행복했다. 이유식과 분유를 한 트렁크 챙겨 갔는데,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고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더 다양하고 많은 종류의 분유와 각종 이유식을 맛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처음 먹이는 걸 먹였다가 탈이 날까 겁이 나서 많은 시도를 못하다가 여행 막바지에 모든 음식이 다 떨어졌을 때야 시도할 수 있었다. 그때 먹었던 호주 분유를 더 많이 사 오지 못한 게 후회될 뿐이었다. 아이가 너무 어려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진 못했을 것이다. 걷지도 못하는 시기였으니까. 그래서 오히려 편한 여행이었을까. 정안이는 매일 12시간씩 통잠도 잘 자주 었다.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더 잘 잤고, 새로운 분유도, 기저귀도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적응했다. 정안이는 여행에 최적화된 아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주도에 올 때 자신만만했다. 정안이는 10시간 넘는 장거리 비행에서도 한 번도 안 울어서 찬사를 받은 아기야하고 거들먹거릴 수 있었다. 이것 또한 오산이었다. 아기는 금방 자라고, 성질도 여러 번 변한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이 변했다. 비행기 타기 전 수없이 연습했지만 실패했던 마스크 씌우기가 가장 큰 난관이었다. 더운 8월의 공기는 어른도 마스크를 빼게 만든다. 그 어린 아기가 잘 쓰고 있을 리가 없다. 그래도 에어컨이 켜진 공항 내에서는 10분 정도 겨우 씌워 비행기를 탔다. 대기시간은 겨우 30분, 비행 시간은 겨우 50분이었다. 낮잠 시간과 겹쳐서 그랬을까. 정안이는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그 어떤 동영상도, 간식도 달랠 길이 없었다. 그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나는 부산-제주도를 매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 비행을 끝내고 나는 한 번도 부산에 가지 않았다. 비행기를 탈 자신이 없었다. 멘탈이 탈탈 털렸다.

30분의 대기시간이 3시간보다 길게 느껴졌다.


  

 아이가 어릴 때 전 세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많은 것들을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은 모든 엄마의 공통일 것이다. 내가 살 거 안사고, 조금씩 모아서 일 년에 한두 번 아이가 좋아할 것이 가득한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그런 여행을 계획하는 즐거움을 잃었다. 슬프게도 지금 우리 앞에서 새로운 시대가 펼쳐졌다. 앞으로는 마음대로 여행할 수 없는 시기가 지속될지도 모른다. 마음만 먹으면 비행기 티켓을 끊어 비행기를 타던 시대는 막을 내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행복이 아기와 함께 시작되었다. 지금 당장 여행을 떠날 수는 없지만 나와 내 아이가 함께 하는 삶으로의 여행은 앞으로 몇 년이고 지속될 테니 나는 계속해서 글을 적어갈 수 있겠지. 그렇게 적어 내려간 글들을 아이에게 선물로 줄 수 있겠지.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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