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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성킴 Oct 30. 2020

본격 남편 예찬

나와 평생을 함께 할 누군가에게

 이 글은 본격 남편 예찬이다.


 제주도에 살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정안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고, 그 말인즉슨 다시 남편과 둘만 보내는 시간이 생겼다는 것이다. 22개월만에 둘이서 보내는 자유시간이 생겼다. 그 시간이 짧은 듯하면서도 꽤 길게 느껴졌기에 이 시간이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남편과 나는 쿵짝이 잘 맞는 편이다. ‘아어이다’가 잘 된다고나 할까. (우리 부부는 아직도 무한도전을 본다. ‘아어이다’는 박명수 님이 무한도전에서 한 말이다. 찰떡궁합이라는 뜻.) 내가 착하게 살아서 받는 선물이라는 생각이 드는 우리 남편과 나는 1년 6개월의 짧은 연애를 하고 결혼했다. 지금은 22개월 아이가 있는 4년차 부부이다.

 고등학교 동창이 데리고 온 친한 형이었고, 나는 갤러리에서 일하는 예쁜 애였다.(남편의 시선. 하하) “예쁜 친구 있는데 한 번 보러 갈래?” 하는 사탕발림 같은 그 친구의 꼬임에 넘어가서 따라왔다가 평생 나와 같이 살게 되다니.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 하나가 인생을 바꾼다. 그때 나오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만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연애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결혼해서도 서로의 잘못으로 싸운 적은 아직 한 번도 없다. 내가 혼자 화내거나, 오빠 혼자 삐지거나 한 적은 있어도 서로 언성을 높이며 싸운 적은 없다. 처음 오빠가 화를 낸 건 결혼식 전에 웨딩촬영도 할 겸, 캐나다 어느 지역으로 갈지 둘러볼 겸 북미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캐나다 캘거리에서 미국 엘에이로 가는 항공편이 꼬여 비행기를 몇 번이나 다시 타고, 공항 대기 시간이 엄청나게 길어질 때쯤 우리는 둘 다 예민했고, 긴장했고, 피곤했다. 나는 말끝마다 “아닌 거 같은데?”, “그게 확실해?”라는 말로 오빠가 하는 일마다 토를 달았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오빠가 하는 일에는 사사건건 의심을 했다. 참다 참다 오빠는 공항에서 터졌다. 여행 내내 잘 참다가 터진 거다. 그때도 손에 들고 있던 A4용지와 자잘한 짐들을 “에이씨!”하면서 바닥에 내동댕이 치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는 미안하다고 사과하러 다시 돌아왔다. 그런 남자다 우리 남편은. 잘못한 게 없지만 화를 냈다는 이유로 다시 돌아와서 사과하는.



 연애 때도 세상 둘도 없는 남자 친구였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이후로는 더없이 좋은 남편이, 아빠가 되어 주었다. “결혼하면 어때?”라는 주변 미혼 친구들의 질문에 “결혼하면 정말 좋아. 빨리 결혼하라구! 근데 남자가 지수가 아니라 결혼이 무조건 좋다고 추천하기가 좀 그렇네.”라는 대답을 해 야유를 듣곤 했다. (지금 생각해도 조금 재수가 없긴 하다.)또 정안이를 임신하고 25kg이 쪘는데(거기까지만 체중을 쟀다. 그 이후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낳고 난 이후에도 살은 빠지지 않았다. 그래도 단 한 번을 살 빼라는 소리 없이 맛있는 거 많이 먹으라고, 예쁘다고 했줬더랬다. 정말 천사가 따로 없다. 내가 아무리 기분 나쁜 소리를 하고, 잔소리를 해도 내가 다 맞다고 해주는 사람이다. 아기를 키우는 엄마라면 거의 다 가지고 있는 터널 증후군도 나 대신 오빠가 걸렸다. 지금도 손목에는 제법 큰 혹이 있다. 육아의 훈장이다. 지금도 정안이는 아빠가 없으면 잠들지 못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매일을 아빠와 엄마와 함께 잠을 잤다. 이유식을 먹을 왕아기 시절에는 직접 이유식도 만들어서 먹인 아빠였다. 이러니 내가 어떻게 남편 예찬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남편은 하루라도 “오빠!” 부르는 소리를 안 듣고 보내 보고 싶다는 우는 소리도 하곤 했다. 찾을 때가 행복한 줄도 모르고.

 여기저기로 불쑥불쑥 잘 떠나는 나를 보면서 지인들은 참 대단하다고들 한다. 친구도 가족도 없는 곳에서 어떻게 잘 지낼 수 있겠냐고. 난 정말 괜찮다. 남편만 있으면 된다. 남편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사랑하는 연인이고, 부모님을 대신할 보호자이기도 하다. 심지어 나의 조리원 동기도 남편이다. 12월 말이라 아기를 낳은 산모도 적었고, 그 날 아기를 낳은 산모는 나뿐이라 같이 조리원을 둘러볼 사람 하나 없었다. 그래서 매일매일 나랑 밥 먹고 아기 얘기하고 조리원 생활을 같이 한 것도 남편이다. 조리원 동기까지 옆에 가까이 있는데 전 세계 어딜 가든 외롭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잘 지냈고,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 부모님은 조금 섭섭하실 수도 있지만 내가 이렇게 멋진 남편을 만나 안정된 가정을 가진 것을 더 좋아하신다.(라고 내 마음대로 생각한다.)


 

 누군가의 아들로, 오빠로, 자신의 삶을 살던 한 사람이 나와 만나서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되었다. 나는 내가 엄마가 된 일만이 위대하면서도 초라했고, 대견스러우면서도 서글픈 일이라고 생각하고 지냈다. 모든 것을 함께 이룬 남편의 마음은 한 번도 헤아려주지 못했다. 나만 힘들고 나만 지친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당연히 아무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더 많이 당황하고, 힘들고 지쳤을 사람은 내가 아니 남편일지도 모른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책임져야 할 사람이 늘었으니 그 중압감은 얼마나  클지 나로서는 쉬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럴 줄도 모르고 나의 감정 쓰레기통인 것처럼 나의 화, 미움, 분노, 슬픔을 오빠에게 모두 털어내버렸으니 털어 낸 나는 시원하겠지만 그 감정을 고스란히 받은 오빠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남편은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이라 아마 더 힘들었을것이다.

 항상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해 주는 고마운 나의 지수. 언제나, 지금도, 앞으로도 내 삶의 1번. 앞으로 우리 인생에는 구구절절한 가슴 시린 사랑도 아픈 이별도 없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시트콤처럼 가족드라마처럼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을거 같다. 우리가 함께 있다면 자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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