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성킴 Jan 14. 2021

리코타 치즈를 만들었다

 sns에서 우연히 리코타 치즈 만드는 영상을 보았다. 특별한 재료가 필요하지도 않고,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라 당장 나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러 장을 보러 갈 필요까지는 느끼지 못해서 장 보러 가는 날 치즈를 만들 때  필요한 재료를 같이 사기로 했다.

 우유 1,000ml, 요거트 500ml, 생크림 500ml, 레몬즙 90ml 그 외에 소금, 설탕 제외하고 몇 가지 안 되는 재료라 쉬워 보였다.

 당연히 아무데서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자주 가는 동네 하나로마트는 작은 규모라 그런지 생크림과 레몬즙을 구할 수가 없었다. 우선 구매할 수 있는 재료는 가져가고 나머지는 다음 날 버스를 타고 조금 큰 마트로 가서 사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날 버스를 타고 마트 앞에 내렸다. 오늘은 살 수 있겠지? 제법 큰 마트라 레몬즙은 금방 발견했다. 하지만 또 생크림에 발목이 잡혔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직원에게 “혹시 생크림 없나요?”하고 물었더니 “네, 생크림은 없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재고가 없는 게 아니고, 생크림이 없는 것이다.

 며칠 뒤, 남편 퇴근 후 더 큰 다른 마트에 갔지만 생크림은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재고가 없단다. 생크림 사기 이렇게 힘들 줄이야. 그렇게 생크림 구하기에 지쳐버렸고, 전에 구매한 요거트는 유통기한이 지나버렸다. 그렇게  해가 넘어갔다. 만만하게 봤던 리코타치즈 만들기는 재료 구하기부터 막혀버렸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고, 내 맘대로 되는 것도 없구나 하는 것을 리코타치즈 만들기 시작도 전에 배웠다.

 남편은 2022년쯤에나 치즈를 맛볼 수 있겠다며 놀렸지만 뭐라 반박할 수 없었다. 이 속도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 30분이나 차를 타고 나가 대형 마트에서 드디어 생크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드디어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리코타 치즈는 밥통으로도 만들 수 있고, 에어프라이어로도 만들 수 있는데 나는 전기밥솥 보온 기능을 이용한 방법을 따라 해 보기로 했다. 아기가 가정보육을 한 뒤로는 삼시세끼 밥 먹는 집이라 밥통이 쉬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 간과한 체 말이다. 6시간 이상 보온 기능을 눌려놓고 유청 분리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밥이 계속 밥솥에 있어서 시작을 할 수가 없었다.

 또 그렇게 시간이 지나 오빠가 쉬는 날 마지막 한 톨까지 탈탈 털어서 밥을 먹고 자기 전 드디어 리코타치즈 만들기를 시작했다. 오빠는 다행히 2021년에 맛보겠다며 한 마디 거든다.  준비한 재료를 한 번에 다 넣고, 두세 번 휙휙 저어주고 보온을 누르고 다음 날 아침 면보에 받쳐 유청을 제거하면 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밥솥을 열어보았다. 살짝 건드려보니 잘 분리가 되어있다. 이제 면보를 깔고 부어 주고 냉장고에 12시간 정도 놔두면 완성이다. 면보가 집에 있을 리가 있나 정안이 거즈 손수건을 조용히 꺼낸다. 손수건을 냄비 위에 올린 채반에 깔고 치즈가 되기 전 상태의 하얀 고 체를 옮긴다. 두 개로 나눠 담은 후 냉장고 속에 넣고 12시간을 기다린다. 늦은 밤 완성된 리코타 치즈. 한 입 맛보았을 때의 그 감동은 잊을 수가 없다. 세상 쉬운 레시피에 만만하게 보고 덤빈 대가치고 꽤 괜찮은 완성물이 나왔다. (완성작이라고 적었다가, 완성물로 바꾸어 적었다.)

 남편과 배 터지게 리코타치즈를 얹은 샐러드를 먹었다. 정안에게 한 입 먹여보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이렇게 맛있는 홈메이드 리코타치즈를 안 먹다니 너만 손해다. 그 와중에 샐러드 소스 사는 걸 깜빡해서 소스도 만들었다. 초록창에 치면 안 되는 게 없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초록창만 있으면 된다. 올리브 오일과 약간의 간장, 설탕, 식초를 넣어 만든 소스는 꽤 그럴싸했다. 앞집 할머니께서 직접 만들어서 주신 막걸리 식초가 들어가서 그런가 더 맛있게 느껴졌다.

“오빠 이 정도면 브런치카페에서 2만 원은 줘야 돼.”하며 거드름 피우는 말도 잊지 않았다. 같이 먹어 주는 사람이 맛있다 하니 괜히 기분이 더 좋았다.


다음 번엔 과정도 사진을 찍을 여유가 생기길 바란다.


 뭐든 만만하게 보고 시작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이다.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하며 시작하는 것이 나에게는 오히려 좋다. 하다 보면 ‘아, 그 정도 걱정할 일은 아니구나.’하며 오히려 힘이 난다.

 쓸데없는 걱정은 나를 갉아먹지만, 약간의 걱정은 나를 더 긴장하게 만들어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겸손하라는 말이다. “뭐야 이거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잖아.”하며 건방 떨기보다는 “쉬워 보이지만 그래도 열심히 한 번 해보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나에게도 주변의 모두에게도 좋은 일이다. 올 한 해 겸손해지자. 리코타치즈 만들기가 나에게 준 교훈이다.

 

작가의 이전글 202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