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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성킴 Feb 14. 2021

트로트를 좋아하세요?

취향이 다름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돌돌 말려 꼬여버린 이어폰을 가방에서 꺼내 풀었다. 버스 안에 울려 퍼지는 트로트가 불편해서 꺼낼 수밖에 없었다. 버스를 자주 타고 다니던 시절에는 언제든 이어폰이 필수였다. 가방 안을 뒤적거리다 이어폰이 없으면 ‘망했다...’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오곤 했다.

 지금은 가끔 일이 생겨야 타는 버스 안에서는 음악 없이 주변 소음이 더 안정감을 주는 경우가 있다. 굳이 이어폰이 없어도 불편하거나 심심하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큰 소리로 트로트 음악이 흘러나오면 어쩔 수 없이 나는 이어폰을 주섬주섬 꺼낸다.


 누구에게나 취향은 있다. 그리고 그 취향은 전염되기도 한다. 전 국민의 관심은 지금 트로트에 쏠려 있다. 텔레비전을 켜면 모든 채널에서 트로트가 쏟아져 나온다. 어린아이부터 새하얀 노인까지 모두 트로트를 부른다. 60세가 넘도록 트로트에 관심이 없던 우리 아빠까지도 트로트를 듣는다.

 제주도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텔레비전이 있었을 때도 딱히 정규 프로그램을 보는 편은 아니었다. 재미있는 드라마가 시작하면 그 시간을 기다렸다가 보는 정도였다. 언제부턴가 가끔 친정에 가면 보는 티브이 채널은 트로트가 나오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아이돌이나 배우 이름은 모르면서 미스터 트롯에 나오는 다 똑같이 생긴듯한 사람들의 이름을 줄줄이 다 꽤고 있는 부모님을 보고 있자니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앞집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다정하게 성을 떼고 이름을 불러가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아는 듯이 그들을 친밀하게 생각했다.

 나에게 있어 트로트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듣는 노래 정도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데 모든 이들이 트로트에 열광한다.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좋아하지도 않는다. 호불호를 따지자면 불호에 가깝다. 특히 나는 어린아이들이 트로트 부르는 것이 불편한데, 그들이 저 가사의 뜻을 알고 저렇게 구슬프고 한이 가득한 표정으로 부르는 것인지 엄마가 시켜서 그냥 부르는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뭐랄까 강남에서 부자로 태어나 고생의 ‘ㄱ’도 모르는 10대 래퍼가 흑인의 차별에 대한 랩을 읊는 느낌이랄까. 물론 ‘영재’라고 불리는 어린 트로트 가수들을 보면 보통의 아이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잘하는 것은 확실하다.

 요즘은 나의 취향을 밝히기 무서운 마음이 든다. ‘트로트 듣기 불편해요.’라고 말한다면 나는 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글을 적는 내내 나는 적이 되지 않기 위해 부드럽고, 완곡하게 적어 내려갔다. 자신과 취향이 같지 않다고 공격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나 자신이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이다. 트로트에 빠진 부모님께 “그런 걸 도대체 왜 봐?”, “아빠 시끄럽다 소리 좀 줄여.”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했으니 취향이 다르다고 해서 색안경을 끼고 보는 건 나였다.

 아주 편협하게 속이 좁은 행동을 했다.

 쇼미 더 머니가 유행하면 라디오에서는 힙합이 나온다. 미스터 트롯이 유행이라면 라디오에서는 당연히 트로트가 흘러나오는 것이 맞다. 팝핀을 멋지게 추는 꼬마 아이를 보고 환호성을 지르듯, 트로트를 잘 부르는 아이를 보면 대단한 것을 인정하고 박수를 쳐 주어야 한다.

 나와 취향이 다른 것을 존중하고 인정해 주는 것. 나의 취향을 인정받고 싶다면 다른 이의 취향을 먼저 이해하도록 노력해보자. 내가 이걸 좋아하듯 저이는 저걸 좋아하는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보자.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와 같은 취향의 사람들 하고만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수고를 줄이려고. 예전에 나이 듦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내 나이만큼 나는 깊어지고 싶다 했고 그러기 위해서 나는 누군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 같다. 타인의 취향을 편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어른이 되는 연습을 시작해야겠다.

 트로트가 내게 준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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