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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성킴 Mar 08. 2021

우아한 백발 뒤에 감춰진 진짜 모습

백발의 노부부 관찰기

 토요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 함덕에 있는 카페에 갔다. 커피와 베이글을 먹기에 딱 좋은 곳이다. 우리가 함덕 해수욕장에서 가장 자주 가는 카페이다. 음료를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침 운동을 하고 온 후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가족 여행을 와서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백발의 한 할머니가 보였다. 자리를 찾는 데 꽤 오랜 시간을 들였다. 여기도 앉아 보고, 저기도 앉아 보고, 여기저기 둘러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창가에 차리를 잡고 잠시 후 백발의 할아버지가 쟁반을 들고 올라오셨다. 아,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좋은 자리에 앉고 싶으셨구나.

 마주 보고 앉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보며 우리는 백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머니는 백발에 짧은 커트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짧은 백발에 포마드 스타일로 깔끔하게 빗어 넘긴 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정말 멋있다고 느껴졌다. 머리를 많이 쓰는 직업이라 머리가 하얗게 샜을까 하며 은퇴한 교수 부부 같아 하며 그들을 상상했다.

 할머니는 차를 마시고, 할아버지는 커피를 마시며 케이크 한 조각을 나누어 먹었다. 할아버지는 패드를 꺼내 전자책을 읽었고 할머니는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우리도 나이가 들어도 카페에 와서 같이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자고 얘기를 하던 찰나 할머니의 이상한 행동이 포착되었다. 갑자기 케이크를 먹던 포크를 냅킨으로 닦기 시작했다. 아주 깨끗하게. 묻어있는 크림이나 빵 부스러기가 보기 싫은 걸까? 왜지? 하는 의문을 가지고 계속 쳐다보았다. 새 냅킨을 펴서 포크 두 개를 거기에 싼다. 그러고는 할아버지에게 건네고 할아버지는 그것을 가방에 넣었다. 우리가 본 게 뭐지? 하며 남편과 나는 말없이 눈만 동그랗게 떴다. 잠시 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우리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더니 신발을 벗고 맞은편 의자에 다리를 떡 하고 올린다. 겉모습만 보고 그 사람들의 본성을 몰라 본 전형적인 예로 들 수 있을 법한 일이었다.


카페에서 바라 보는 함덕 해변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 뒤로 카페의 포크를 훔치고, 신발을 벗고 의자에 발을 얹은 진짜 자신들의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그것에 속은 나 같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아주 잠시, 한 시간도 안 되는 시간만에 진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누군가를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것이 이렇게 무섭다는 것을 그 짧은 시간에 배웠다.

 그럴싸하게 꾸민 외모에 우리는 반응한다.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을 경우에 그들의 얼굴, 입은 옷, 머리스타일을 보고 판단한다. 이건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은 아니겠지만 나는 그렇다. 부끄럽지만 나는 호감 가는 외모와 스타일에 관대하다. 카페에서 보게 된 노부부의 모습만 해도 그들이 ‘그럴싸한’ 모습이 아니었다면 실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 편으로는 나이가 들면 살아온 모습이나 성격에 따라 외모가 바뀐다고들 하지 않는가. 욕심쟁이는 심술이 얼굴에 더덕더덕 붙어있고, 인자한 사람은 눈과 입이 반달 모양이 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걸까? 하긴 사기꾼은 얼굴에 사기꾼이라고 티가 나지 않겠지. 도둑놈도 도둑놈처럼 생긴 건 아닐 거고.

 동화책 결론처럼 인간은 겉모습이 아닌 내면을 보아야 해, 같은 그런 뻔한 결말인데 뭔가 찝찝함을 떨칠 수 없다. 이 찝찝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세상 인자하게 생긴 노부부가 포크를 가방에 넣는 걸 본 이후로 모든 것에 물음표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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