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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성킴 Mar 30. 2021

엄마,아빠도 데이트가 필요해

 제주도에 와서 남편과 단 둘이 데이트를 한 게 언제인지 까마득할 때 즈음 오빠의 반가운 월차 날짜가 잡혔다. 이전에는 누가 제주도를 방문한다던가 혹은 우리가 육지에 다녀온다던가 그런 일 때문에 온전히 둘만 있을 수가 없었다.

 이번엔 진짜 데이트다.

 처음 해 보는 데이트도 아니고,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풋풋한 연인 사이도 아니지만 설레었다. 우리 둘은 일주일 전부터 다음 주 금요일에 우리 뭐하지 하는 고민으로 매일이 즐거웠다. 나는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영화가 보고 싶었다. 코로나 때문에 가지 못한 게 아니고, 정안이가 있으니 영화관은 꿈도 못 꾸는 사치였다. 앞집 할머니 말에 따르면 오전에 일찍 영화관에 가면 대관한 것처럼 아무도 없이 쾌적하게 잘 볼 수 있다는 거다. '미나리'가 핫하니 오빠 이건 봐야 해 하면서 계획한 첫 번째 스케줄은 조조영화였다. 정안이를 일찍 어린이집에 등원시켜주고 가면 될 것이다. 하지만 며칠 생각해보니 이게 얼마만의 데이트인데 이런 실내에 박혀서 2시간씩을 소비하는 게 뭔가 아까워졌다. 영화는 밤에 정안이 잘 때 소리를 제일 작게 해 놓고 몰래 봐야 제맛 아니던가.

 "오빠 영화 보는 건 취소야 다른 거 생각해보자."

  그렇게 금요일이 되었고, 정안이는 아빠가 집에 있으면 분명 어린이집에 가지 않으려고 할 것이 분명하기에 오빠는 출근하는 것처럼 정안이 등원차량이 오기 10분 전쯤 차를 타고 나갔다. 평상시보다 늦게 나가는 아빠가 의심스러웠는지 나간다고 하니 생전 울지 않던 아기가 같이 나가자고 울기 시작한다. 우리도 선생님이 데리러 올 거야 하면서 겨우 달래고 옷을 입혔다. 차는 바로 옆 건물 뒤에 대놓고 정안이는 등원 차량을 타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내 눈에는 아빠 차가 보이는데 다행히 정안이 눈에는 안 보였나 보다. 007 작전도 아닌데 진땀이 났다.

 정안이를 보내고 아침부터 돌리던 빨래를 옥상에 널어놓고, 오랜만에 화장을 했다. 사실 며칠 전에 증명사진을 찍으려고 화장을 했는데 얼마 만에 한 풀메이크업인지 마스카라도, 뷰러도, 아이라이너도 모두 실종되어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풀메이크업은 실패하고 간단한 화장만 했는데도 기분이 달랐다. 오빠는 이미 완벽한 플랜이 있으니 걱정 말라며 의기양양하게 운전을 시작했다.

 정안이 데리고 가기 힘든 핫한 개인 카페에 가서 우리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사진도 찍고 오빠 사진도 찍었다. 얼마 만에 우리 사진인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연애할   사진 찍기 바빴는데,  흔한 셀카  장도  찍어지는 요즘에 이런 시간들보석같이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정안이 데리고 와도 되겠다 여기는, 하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이제 어쩔  없는 엄마가 되었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끊임없이 생각나는 아이가 생겼다. 나만 재밌고, 나만 맛있는  먹으면 죄책감이 느껴지는 엄마가 되었다. 다행히 정안이는 먹는 것에 관심이 없어서 맛있는  혼자 먹는 죄책감은  덜하다.


 

 그렇게 우리는 드라이브도 하고, 꽃구경도 하고, 맛집도 검색해서 가고, 멋진 해변에 가서 사진도 찍었다. 정안이가 하원 하는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와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정안이를 데리러 가는  시간까지 우리는 즐거웠다. 신데렐라처럼 시계를 계속 확인하긴 했지만.  시간 내내 정안이가 없어서 뭔가 허전했다. 자주 아이를 맡기고 데이트를 하는 사이였더라면 마음이 편했을까. 우리끼리만 노는  시간이 미안하진 않았을까. 이제 정안이가  크면 우리는 우리의 시간이  늘어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둘만의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두는 중이다.

 우리 둘이 함께 하는 시간은 줄었지만 셋이 함께라  즐거운 시간들이 늘어났다. 우리 둘만 있었더라면 절대 몰랐을 소중한 감정들. 엄마, 아빠가 데이트를 하니 셋이라  감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은 하원 후 바다에서 뛰어 노는 걸로 대신했다. 다행히 해가 길어졌고, 바람은 더이상 차갑지 않다. 아이와 충분히 함께 뛰어 놀 시간이 많아졌다. 이렇게 놀고 나니 죄책감이 조금은 씻어진 듯 했다. 둘만의 시간은 이제 충분했으니 셋이 이 아름다운 하루하루를 또 같이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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