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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성킴 Aug 10. 2021

잘 쓰인 글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오랜만에 잠이 오지 않는 새벽이다. 남편 없이  집에 아이와 함께 누웠다. 남편은 내가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싸기를 마저 하기 위해 조천 집에 남았다. 우리는 내일 오전에 있을 냉장고 설치를 위해  집에서 자기로 했다. 아파트라 그런  둘만 있어도 무섭지 않다.(  전에  놓은 글이라 전에 발행한 글과 순서가 맞지 않는다.)

 커튼 하나 없는 집에 이불 깔고 누워 있으니 쉽게 잠이 올리가 있나. 리모델링이 끝나고 몇 주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가득한 새집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파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었다.  

 습하다. 제주의 습기는 시간이 흘러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베개까지 눅눅해지는 기분이 든다. 바람 한 점 없는 여름밤이다.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간간히 자동차 지나는 소리도 들린다. 우리가 제법 사람 사는 동네로 나오긴 했구나.

 잠이 오지 않으니 무언가를 쓰게 된다. 잠들지 않는 새벽에 쓰는 글에는 낮에 쓰는 것과는 또 다른 질감이 있다. 조금 더 감성적이고 솔직해진다. 나를 조금 더 주관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다. 감성적인 사람은 새벽에 글을 쓰고, 이성적인 사람은 낮에 글을 쓴다. 지극히 내 관점이다.



꽃나무 또한 낮의 모습과 밤의 모습이 다르게 느껴진다.

 

  쓰인 글은 유통기한이 없다. 수백, 수천 년이 지난 글을 지금에 와서 읽어도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하지만 새벽에 쓰는 글의 유통기한은 여름철 나물처럼 6시간이  안될 때가 있다. 아침에  떠서 다시 읽었을  아이쿠, 하며 삭제하거나 숨기게 되는 그런 글들. 새벽에 쓰는 글은 그만큼 위험하다. 그와 반면 새벽에  글의 감성을 따라   없을 때도 있다. 다시 그런 느낌을 살리고 싶은데  시간에는  그게  안된다.

 가끔 유통기한이  글을 적은 날엔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번이고  글을 곱씹어 읽어본다. 제조자가 만든 유통기한이라 주관적이긴 하다. 아침에 읽든, 낮에 읽든, 모두가 잠든 새벽에 읽든  글은 항상 마음에 든다. 지금 내가 이곳에 남기는 모든 글들의 유통기한이 길었으면 한다. 그래서 나는 적은 글들을  번에 업데이트하는 일이 드물다. 밤에 적고, 낮에   다시 살펴보고, 자기     읽어본다. 지울  지우고, 넣을  넣는다. 시간에 따라 어떤 문장은 삭제되고, 어떤 문장은 추가된다.  글의 유통기한을 늘이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다.

 삶에 있어 사랑에도, 건강에도, 살아 있음 자체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하지만 내가 남긴  글의 유통기한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글을 적는 행위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정안이가 내 나이쯤 되어 갈 때 나의 글을 한 번 보여주고 싶다. 그때까지도 나의 글이 신선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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