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잠이 오지 않는 새벽이다. 남편 없이 새 집에 아이와 함께 누웠다. 남편은 내가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짐 싸기를 마저 하기 위해 조천 집에 남았다. 우리는 내일 오전에 있을 냉장고 설치를 위해 새 집에서 자기로 했다. 아파트라 그런 지 둘만 있어도 무섭지 않다.(몇 주 전에 써 놓은 글이라 전에 발행한 글과 순서가 맞지 않는다.)
커튼 하나 없는 집에 이불 깔고 누워 있으니 쉽게 잠이 올리가 있나. 리모델링이 끝나고 몇 주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가득한 새집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파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었다.
습하다. 제주의 습기는 시간이 흘러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베개까지 눅눅해지는 기분이 든다. 바람 한 점 없는 여름밤이다.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간간히 자동차 지나는 소리도 들린다. 우리가 제법 사람 사는 동네로 나오긴 했구나.
잠이 오지 않으니 무언가를 쓰게 된다. 잠들지 않는 새벽에 쓰는 글에는 낮에 쓰는 것과는 또 다른 질감이 있다. 조금 더 감성적이고 솔직해진다. 나를 조금 더 주관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다. 감성적인 사람은 새벽에 글을 쓰고, 이성적인 사람은 낮에 글을 쓴다. 지극히 내 관점이다.
잘 쓰인 글은 유통기한이 없다. 수백, 수천 년이 지난 글을 지금에 와서 읽어도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하지만 새벽에 쓰는 글의 유통기한은 여름철 나물처럼 6시간이 채 안될 때가 있다. 아침에 눈 떠서 다시 읽었을 때 아이쿠, 하며 삭제하거나 숨기게 되는 그런 글들. 새벽에 쓰는 글은 그만큼 위험하다. 그와 반면 새벽에 쓴 글의 감성을 따라 할 수 없을 때도 있다. 다시 그런 느낌을 살리고 싶은데 낮 시간에는 또 그게 잘 안된다.
가끔 유통기한이 긴 글을 적은 날엔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몇 번이고 그 글을 곱씹어 읽어본다. 제조자가 만든 유통기한이라 주관적이긴 하다. 아침에 읽든, 낮에 읽든, 모두가 잠든 새벽에 읽든 그 글은 항상 마음에 든다. 지금 내가 이곳에 남기는 모든 글들의 유통기한이 길었으면 한다. 그래서 나는 적은 글들을 한 번에 업데이트하는 일이 드물다. 밤에 적고, 낮에 한 번 다시 살펴보고, 자기 전 또 한 번 읽어본다. 지울 건 지우고, 넣을 건 넣는다. 시간에 따라 어떤 문장은 삭제되고, 어떤 문장은 추가된다. 내 글의 유통기한을 늘이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다.
삶에 있어 사랑에도, 건강에도, 살아 있음 자체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하지만 내가 남긴 이 글의 유통기한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이 글을 적는 행위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정안이가 내 나이쯤 되어 갈 때 나의 글을 한 번 보여주고 싶다. 그때까지도 나의 글이 신선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