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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성킴 Aug 05. 2021

일 년 만에 커다란 식탁을 샀다.

 이사 오고 나서 가장 필요한 가구는 식탁이었다. 예전 집에서는 식탁 없이 바(bar) 형태의 높은 식탁과 의자를 사용했다. 의자는 딱 두 개. 정안이는 앉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높이의 의자와 식탁이었다. 정안의 크는 속도를 무시하고 산 결과였다. 언제까지고 아기의자에 앉아서 밥을 먹을 거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빠른 속도로 클 줄 몰랐다. 세 식구가 같이 앉아 식사를 할 때는 늘 바닥에 상을 펴고 구부정하게 앉아 먹어야 했다. 그것도 정안이 책상에. 몇 번은 괜찮았지만 횃수가 많아질수록 힘들었다.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렸다. 식탁을 사자니 놔둘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좁지 않은 집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식탁을 놔 둘 자리는 없었다. 그래도 그런대로 버틸 만은 했다. 정안이 먼저 밥을 먹이고, 남편과 나는 바에 앉아서 밥을 먹으면 됐다. 그러나 손님이 오면 얘기가 달라졌다. 의자가 없었고, 서서 먹는 상황도 발생했다. 어쩔 수 없이 손님이 왔을 때는 밖에서 사용하는 파라솔용 야외 테이블을 가지고 들어왔다. 또 하나의 핑계를 대자면 연세로 살고 있어서 곧 이사를 가야 한다는 생각에 부피가 큰 가구를 사는 것이 꺼려졌다. 그 집에서 오래 살 생각이 없었기에 일 년만 참자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사를 하고 난 후 매일 식탁을 검색했다. 마음에 드는 식탁은 제주 배송불가였다. 식탁의 사이즈나 색상 정보를 디테일하게 보기 전에 배송정보부터 읽었다. 제주도에 오지 않는 가구는 보지 않는 편이 마음 건강에 좋다. 내 마음에 쏙 들어 사랑에 빠지기 전에 상대의 조건이 나랑 맞지 않음을 먼저 인지하고 발을 빼는 것이다. 가구 사기는 그만큼 현실적인 일이었다. 검색어를 바꾸기로 했다. 이번 집은 저번 집보다 평수가 확연히 줄었다. 그러나 방이 하나 더 생겨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졌다. 집이 작다 보니 가구를 사는 데는 제약이 많아졌다. 큰 사각 테이블보다는 원형 테이블이 우리가 가진 공간과 어울렸다. <원형 테이블, 원목식탁, 작은 식탁>과 같은 검색어로 일주일을 날렸다. 예쁜 건 물을 건너지 않았다. 절반쯤 내려두고 <제주도 가구, 제주 가구, 제주도 가구점>으로 검색어를 바꾸었다. 예쁜 공간을 만들고 싶은 욕망은 크지만 몇 십만 원의 배송비를 지불하면서까지 육지에서 가구를 가져올 만큼 나는 인테리어에 목숨을 거는 타입이 아니었다.

 제주도에도 물론 가구점이 많다. 큰 마음먹고 쎄덱(sedec)에 가서 오래 쓸 좋은 물건을 사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보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하며 애월에 있는 매장으로 네비에 주소를 치기 위해 검색하다 보니 쎄덱은 노 키즈존이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고가의 가구를 전시하는데 정안이는 갈 수 없지. 다시 새로운 곳을 찾았다. 찾아 간 가구매장은 정말 마음에 드는 것들이 많이 있었다. 마음 같아선 그곳에서 모든 가구를 사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주에서도 조금만 찾아보면 이렇게 예쁜 것들을 살 수 있구나 하면서 기분 좋게 둘러보려는 찰나, 아기는 낯선 그곳이 싫었나 보다. 쎄덱의 노 키즈존 방침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다른 손님이 없어서 이리 달래고 저리 달래며 이것저것 보다가 결제를 하려던 찰나 크기가 문제였다. 1000 이상의 길이가 되면 조금 곤란한데, 긴 쪽이 1200 하는 그 식탁은 조금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너무 예뻤다. 그래도 다른 곳도 한 번 보고 싶은 마음에 결제를 하려던 나를 말리고 오빠는 냉정하게 좀 더 보고 오겠다는 말을 하고 우리는 문을 나섰다. 결론은 남편은 그 식탁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그리고 며칠 뒤, 우리는 식탁을 샀다. 1200보다 더 큰 1400 사이즈의 큰 식탁을 샀다. 이 공간에 어울리는 작은 사이즈를 샀다가 행여 다음 집에서 애물단지가 될까 하는 오빠의 노파심과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사고 싶은 욕심이 낳은 결과였다. 그리고 가구점에 남편을 혼자 보낸 나의 잘못이기도 하고. 사진으로 본 그 테이블은 나 역시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가로 사이즈가 1400이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습도가 100%에 가까운 제주의 여름을 저 가구를 비틀리지 않게 잘 관리할 수 있을까, 베란다에 가는 동선을 헤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드는 것을 보니 완벽하게 사랑에 빠진 남편과 나는 조금 차이가 있는 듯 하지만 다음 집은 더 넓은 집으로 가자는 우리의 희망은 같으니 집으로 오렴.


똑같은 의자 4개 말고, 다른 디자인으로 사고싶은 욕심에 의자가 아직은 두개뿐이다.

 

 어제 식탁이 배달되었다. 어쩜 이렇게 마음에 쏙 드는지! 내가 원했던 둥근 타입의 쉐잎에 원목 특유의 러프함까지 가진 이 식탁과 사랑에 빠졌다. 제주도에 온 지 1년 만에 생긴 우리 가족의 식탁. 식탁의 의미는 크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는 공간이며, 정안이에게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책상이 되고, 내게는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이곳에서 우리는 각자의 꿈을 꾸면서 또 같이 행복을 만들어 갈 것이다. 식탁 하나가 들어옴으로써 집이라는 의미에 더 맞는 색깔을 띠는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진다. 바람에 흔들리는 감나무 잎이 한결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이 식탁 때문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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