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성킴 Jul 20. 2021

제주도 이주 1년 후

첫 집을 떠나며

 이제  제주도  집에서의 1년을 정리하고 우리는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한다. 조금씩 집을 정리하며 느끼는 기분이 뭐랄까,  신난다고 해야 하나? 귀찮기도 하고, 걱정도 되지만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것에 대한 설렘이 생겼다. 지금보다  좁아져서 집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둘씩 팔고 있지만 그래도 새로운 곳이 주는 기대감은 언제나 신난다.

 모두 잠든 이른 저녁 시간 가만히 누워있으니 지금 사는 이곳이 얼마나 조용한가다시금 피부에 와닿는다. 창문을 닫아 놓고, 에어컨을 틀어 놓아 소음이  들리는 것이 아니다. 여기는 해가지면 다니는  한 대 없는 좁은 골목 안이다. 오가는  하나 없고, 다들 나이  사람들이 있는터라 8시만 넘어도  동네는 적막  자체이다. 정안이의 고함소리, 울음소리가 민망할 정도로 조용한 이곳에 있다가 아파트로  생각을 하니 순간 앞으로 내가 소리 지를 일이 많아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떠나기 전이 되니 주택에서의 좋았던 점들이 머릿속에 맴돈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





  작년 태풍이 몰아쳤던 8월에 우리는 제주도에 도착했다. 비바람 때문에 좁은 에어비앤비 안에서 창문으로 바깥을 구경했다. 그렇게 비를 뚫고 이 집, 저 집을 보다 한 번에 계약한 곳이 이곳이다. 물론 이 집, 저 집은 고민할 시간도 없이 모두 계약이 되었기 때문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디인지 위치조차 제대로 모르고 덜컥 계약부터 한 곳.

 제주도의 날씨라던가 특성을 전혀 모르고 주택 좋지! 하고 살다가 큰 코 다쳤던 곳.

 지네에 바퀴벌레에 도마뱀에. 겨울에도 모기 때문에 모기장을 치고 자던 우리. 스트레스 때문에 방광염의 악몽도 겪게 해 줬던 곳.

 살고 있는 사람의 수가 적고, 인적이 드문 곳이라 낯선 차량이나 사람이 지나가면 무섭고, 긴장하고, 신경 쓰였던 곳.

 산책할 곳이 마땅치 않아 정안이와 어딜 갈려고 하면 큰 맘먹고 나가야 했던 곳.


 초보 운전자인 내가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주차를 할 수 있었던 곳.

 정안이가 아무리 뛰거나 소리를 질러도 신경 끌 게 없었던 곳.

 나가면 마당에서, 앞집 할머니 텃밭에서 마음껏 채소 구경, 나비구경, 개미 구경하며 정안이가 놀 수 있었던 곳.

 차 타고 조금만 가면 함덕이라 함덕 바다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었던 곳.

 이제 이곳은 새로운 주인이 생겨 민박집으로 바뀐다고 한다. 시원섭섭한 마음이 든다. 우리가 살던 곳이 민박집이 된다니. 사실 좀 궁금한 맘이 든다. 어떻게 바뀔까.


두 돌이 되지 않았던 작년 여름 우리는 제주도에 왔다. 아직 옷들이 여전히 맞는 걸 보니 많이 크진 않았네 흑.


 여행자의 마음으로 살고 싶다고 외쳐놓고  뒤돌아 1년을 살펴보니 나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부지런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오늘이 아니면 다신   없을 것처럼 제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어야 했는데, 나는  밖을  나가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라는 핑계를 대기엔  흔한 오름   올라가지 않았다. 애기가 있어서- 라기엔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이 그리 짧지만은 않다. 차가 없어서- 라는 핑계가 제일 현실적인 핑계이다. 버스를 타러 나가는 길은 도보로 20 정도가 걸린다. 이미 어느 장소에 도착하기 전에 지쳐버린다.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아스팔트 길을 뚫고 가는 것이  어려워졌다. 제주에 살며 부지런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약간의 반성을 했다. 여기에선 그러지 못했지만 새로 이사 간 곳에서는 조금  활기차게 돌아다니고 싶다. 원래 인간이란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전에 이루지 못할 일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다짐을 하는 법이다.

 이 세상 어느 곳에 가더라도 우리 가족이 살았던 제주 첫 집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이제야 정안이는 우리 집, 엄마 집이라고 말하는 이 집을 떠난다는 것이 아쉽지만 새 집에서 더 즐거운 일들이 많이 생기길 바라며.



안녕 제주 첫 집


 이사가 끝나면 이사때문에 일하면서도 혼자 집 보러 다니고, 대출 알아보고, 부동산 다니면서 가전제품 알아보랴 이삿짐센터 알아보랴 바쁜 우리 집 가장에게 언제나 고맙다고 사랑한다는 말을 해줘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콩자반을 만들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