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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성킴 Jun 29. 2021

콩자반을 만들었다

 양념장이 줄 지워 세워진 곳을 정리하다가 예전에 사두고 잊어버린 아주 까맣게 잊어버린 검정콩을 찾았다. 콩을 싫어하는 엄마인지라 남편도 아기도 콩 반찬을 먹어 본 적이 없다. 이것도 오빠와 내가 물갈이를 하는 건지 제주도에 와서 머리가 자꾸 빠져서 먹어볼까 하고 사놓은 것이다.

 콩밥은 싫고, 그나마 나도 먹는  반찬이 콩자반이라 초록창콩자반을 검색했다. 만들기 쉬운 메뉴일 것이라 생각하고 시키는 대로 콩을 물에 불렸다. 세상에, 콩을 불리는 시간만 반나절이다. 어떤 이는 24시간을 불리기도 한단다. 콩을 물에 넣어 두고 다른 사람들의 레시피를 이리저리 검색해 본다. 2-3시간만 불리는 사람의 레시피를 찾았다.

 콩을 불려놓고 밀린 집안일을 하고 엄마와 통화를 하니 금세 2시간이 지나간다. 그다음은 밑간이다. 간장과 설탕과 맛술을 1:1:1의 비율로 넣어야 하는데 나는 맛술이 없다. 똑 떨어졌네. 맛술이 없는 레시피를 다시 검색한다. 다행히 간장과 설탕만 넣는 레시피가 있다. 불린 콩과 콩물, 거기다 2컵의 물을 더 넣고 진간장 6큰술, 설탕 4큰술을 넣고 끓이기 시작한다. 맛을 보니 뭔가 싱겁다. 조림용 간장을 2큰술 더 넣고, 꿀을 2큰술 더 넣었다. 내가 생각하는 쪼글쪼글한 콩자반 모양이 아니라 조금 불안하다. 그래서 물을 한 컵 더 넣고, 간장과 설탕을 2큰술씩 더 넣었다. 그래 이제 졸여보자. 더 이상 아무것도 넣지 말고 졸여보자. 물이 많이 들어가서인지 또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30분은 넘게 졸여야 하는 듯하다. 여름이라 불 앞은 더워 멀찌감치 떨어져 한 번씩 휘적휘적해 본다. 빨리 졸여졌으면 하는 조바심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면 물이 자작자작해진다. 그때 올리고당을 3큰술 넣어준다. 콩자반이 이렇게 달콤한 반찬이었나 싶다. 그리고 또다시 졸여준다. 국물이 거의 없어질 때까지 계속 기다린다. 이제 국물이 거의 없다 싶을 때 참기름 한 큰 술과 참깨를 듬뿍 넣어준다. 나는 참깨를 절구에 한 번 갈아서 넣는 것을 선호한다.

 콩, 간장, 설탕, 올리고당, 참기름, 참깨만 있으면 된다. 제일 중요한 재료는 시간. 시간이 없는 사람은 콩자반도 만들 수가 없다. 시간 다음엔 인내심. 시간은 많지만 인내심이 없는 나에게 콩자반 만들기는 그 무엇보다 어려운 반찬 만들기였다.

 젓가락이 아닌 숟가락으로 푹푹 퍼먹는 콩자반을, 어딜 가든 쉽게 볼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이 콩자반이 이렇게나 시간이 많이 드는 반찬이었다니. 9시 30분부터 만들기 시작한 이 콩자반은 12시 20분이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아직 참기름과 참깨를 넣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통에 옮겨 담는 것 까지 해서 꼬박 3시간이 걸렸다.

 모든 요리는 조화, 비율, 시간의 싸움이다. 내 마음대로 넣은 콩자반은 많이 달아졌다. 이 레시피, 저 레시피를 옮겨 가며 마음대로 만든 탓이다. 겨우 콩자반 하나로 나는 오늘도 많은 것을 배운다. 엄마는 이래서 나보다 더 현명하고 더 많은 인내심을 가지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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