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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성킴 Aug 23. 2021

코로나 시대의 육아

32개월, 4살 아기의 기록

 코로나가 시작되고 제주도도 처음으로 4단계로 격상되었다. 자연스럽게 어린이집은 가지 못하게 되고 가정보육이 시작되었다. 아이와 하루 종일 붙어 있으니힘들다. 힘든데  어떻게 시간을 흐른다. sns 속 엄마들처럼 멋진 놀이용 장난감을 직접 만들어 준다거나, 삼시세끼 다양한 메뉴로 아이의 눈과 입을 사로 잡기보다는  먹는 반찬 하나만  주는 엄마라  말이 없다. 이것저것 노력하는 엄마가  되다 보니 미안한 마음은 크지만 바뀔 생각도 없다. 내가 바뀌면 내가 힘들다.

 대신 우리는 매일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고, 사람 없는 한적한 바다에서 뛰어놀고, 사람 없는 놀이터에서 함께 그네를 탄다. 내가 정안이를 본다고 생각하지 않고 같이 논다고 생각해야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는다. 실내에 놀러 가기는 힘들고, 야외에서 놀아야 하는데 이 땡볕에 이 습기에 바깥 활동은 지옥이다. (단, 엄마에게만.) 여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바깥 활동을 할 수 없다면 집에 하루 종일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그건 둘 다에게 좋지 않다.

 코로나 시대의 아기들은 친구와 함께 모여 놀 수 없다. 이럴 땐 외동인 게 조금 억울하다. 사회성 발달이 활발한 시기에 혼자만 놀아야 하다니. 어쩔 수 없다는 건 알지만 뭐가 더 중요한지 헷갈리는 시점이다. 사람이 없는 곳만 찾아다니다 보니 걱정이 될 때도 있다. 지금도 정안이는 낯선 사람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 경계를 하는데 이런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면 인사하지 않는 아이의 태도는 비단 아이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혼자도 잘 놀아줘서 고마워

 

 코로나 시대의 엄마들은 대신 내 아기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다. 자의든 타의든 아이와 24시간 내내 붙어있는 시간이 많다는 건 어떻게 보면 좋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오래 붙어 있을수록 상대방을 더 잘 알게 되는 건 연인뿐만 아니라 자식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32개월에 접어든 정안이의 스펙은 91.3cm에 13kg으로 또래보다 작은 편이다. 안 먹으니 클리가 없다. 입이 짧고, 처음 보는 음식은 절대 먹지 않는다. 과자나 사탕, 아이스크림도 자기 먹을 만큼만 먹고 먹지 않는다.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좋아하는 건 당근과 각종 과일들. 가장 좋아하는 반찬은 용가리다. 하림 주식을 좀 사야겠다. 용가리만 있다면 밥 한 그릇 뚝딱이다. 원래 밥 한 그릇 뚝딱 메뉴는 남편 회사 근처에 있는 돼지국밥이었는데, 아빠가 소화 잘 되라고 넣은 새우젓 소량에 갑각류 알레르기가 올라와 응급실에 다녀온 이후 단골 국밥집에 발길을 끊었다. 한 가지 메뉴가 아쉬운 판에 너무나 큰 것을 잃었다. 면 싫어하는 아기는 없다는데 그것도 정안이는 안 통한다. 쉬는 날 점심으로 짜장면을 줬는데 한 입 먹고 만다. 사과 하나를 깎아서 다 먹고 낮잠을 잔다. 짜장면을 마다하는 아기가 여기 있다. 또 좋아하는 건 튀김류. 바삭한 식감을 좋아한다. 그래서 돈가스와 탕수육은 제법 먹는 편이다. 친구 애기 돌잔치 때 뷔페에 먹을 게 없어서 새우튀김을 처음 줘봤는데 너무 잘 먹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때 정안이가 튀김을 좋아하는 걸 알았다. 물론 지금은 새우튀김은 안 먹는다. 가장 좋아하는 과자는 쌀과자와 뻥튀기, 팝콘. 가장 좋아하는 음료는 배도라지와 우유와 물과 소다맛 뽀로로 음료수. 마시는 걸 정말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맛은 피스타치오 아몬드. 초록색이 아닌 아이스크림은 입에도 안 대더니 이제는 아이스크림 종류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깨달은 네 살이다. 쓰다 보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잘 먹는 게 많다고 느껴진다. 오늘은 영양제를 구매했다. “이런 영양제 먹는다고 다 잘 먹고 잘 크면 작고 말라서 걱정인 엄마들이 왜 있냐?” 하던 나는 “영양제라도 먹여봐야지…” 하는 엄마가 되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게 최고다.

 코로나 시대의 아기들은 외식도 힘들다. 배달을 하거나 집에서 해 먹는다.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식사 매너는 그곳에 가서 직접 배워야 하는데, 집에서는 아무래도 자유롭게 밥을 먹다 보니 말이 통할 때 잘 알려 주는 수밖에 없겠다.


우리집 당근왕

 

 지금 개월 수에는 자기 이름과 나이를 말할  있어야 하는데 아직 못한다. 대신 엄마 이름과 아빠 이름을 말할  있다. 말이 느려 무지하게 걱정했는데 30개월  즈음해서 많이 늘었다. 아직 완벽한 대화는 되지 않지만 다양한 단어들과 짧은 문장을 말하는 중이다.

 요즘 최애는 핑크퐁과 화산 폭발, 우주이다. 노래 부르는 걸 극혐 하던 아기는 이제 제법 율동도 따라 하고 노래도 따라 부른다.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엄마 이거 봐요.”하고 봐주길 원한다. 우주 친구들이 나오는 만화의 에피소드는 100번 정도 본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우주선이나 외계인을 아주 좋아한다. 여전히 좋아하는 건 바다 친구들. 정안이 때문에 아귀에 불빛이 달려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30개월 때쯤엔 해파리 그리기를 쉬지 않고 했는데 요즘엔 그리질 않네. 대신 색칠하는 솜씨가 아주 많이 늘었다. 말을 못 할 때도 해마, 아귀, 성게, 상어, 돌고래, 문어, 오징어, 산호초, 해파리는 기가 막히게 알아서 내 걱정을 조금 덜어 주곤 했다.


어린이집에서 한시간 동안 집중해서 색칠했다는 작품.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다. 제법 어려운 퍼즐을 아빠와 함께 해 보더니 다 하고 났을 때의 뿌듯함이 꽤 좋았는지 다음 날 또 하자고 한다. 집중력이 없는 아기라고 생각했는데 클수록 조금씩 늘어난다.

 기저귀를 때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팬티 입자고 하면 “안돼! 아니야! 싫어!” 하면서 도망가서는 기저귀를 입는다고 한다. 밤에 새 기저귀를 입히고 자면 아침까지 소변을 보지 않는다. 대화가 통할 때가 되면 자연스레 기저귀를 떼겠지. 어린이집 선생님께도 말씀드렸더니 천천히 하자고 하시고, 영유아 검진 때 의사 선생님께도 말씀드렸더니 천천히 하라고 하신다. 엄마만 마음이 급하다. 정안이의 속도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몇 년 동안 노력 중인데도 잘 안된다.

 코로나 시대의 아이들은 조금 늦어도   같다. 세상이 멈춘 듯한  시기에 빨리빨리를 외치는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그러니  역시 정안이의 속도 맞추기에 다시 중점을 두고 노력해야겠다.


 

 하지 못하는 것들을 생각하기보다는  시간이 주는 또 다른 행복을 찾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일이겠지. 마스크를 하는 아이들을 보며 대체 어떤 것이  중요한가를 생각하며 울컥하긴 하는  어쩔  없지만 말이다.

 작년에도 한 생각이지만 내년쯤이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길 바란다. 마스크 없이 꽃향기를 맡고, 길에서 솜사탕을 서 바로 먹어 보고, 아이는 웃는 입모양을 실컷   있으면 좋겠다. 평범한 것이 얼마나  행복인지를 알려주고 싶다. 어린이집은 당연히 가는 곳이고, 친구들과 단체로 운동회도 하고 버스를 타고 소풍도 다녔으면 좋겠다. 코로나는 우리를 평범함에 애달프게 만들었다.

 이 시국에 어린아이를 키우는 모든 엄마, 아빠들 모두 잘 해내 가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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