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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성킴 Aug 29. 2021

다 늘어난 티셔츠를 입는 아줌마

 빨래를 하다가 다 늘어 난 와이어리스 브라를 보니 새 걸 살 때가 지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되고 난 이후 한 번도 스스로 속옷을 사지 않았다.

 임신했을 때 갑자기 살이 찌기 시작하면서 아가씨 때 입던 것을 입을 수가 없어졌다. 그래서 여러 벌을 새로 구매했다. 그때가 벌써 몇 년 전 이야기다.

 정안이 세상에 태어나고 젖을 먹기 시작하면서 이 속옷들도 필요가 없어졌다. 젖을 먹이기 위해서는 수유용 브라가 필요했다. 고리가 앞쪽에 달려서 언제 어디서나 쉽게 풀 수 있는 디자인의 브래지어이다. 수유 패드를 항시 사용했고, 겨울이었기 때문에 여러 개도 필요 없었다. 입고 빨고, 2개면 충분했다. 브라를 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고, 캡이 내장되어 있는 브라탑을 입기도 했다. 그렇게 점점 일반 브래지어와는 멀어졌다. 정안이 더 이상 모유수유를 하지 않게 되었을 때는 임신 중에 사서 입었던 브라를 다시 입기 시작했다. 매일 빨래를 하기 때문에 입고 빨고, 입고 빨고 하다 보니 빨리 닳는 것 같아 보였지만 새로운 속옷을 사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익숙하고 편안한 것이 적응된 것이다. 예쁜 속옷을 맞춰 입고, 브라를 차곡차곡 정리하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남편은 새 속옷을 사라고 말했다. 꾸미라는 뜻이 아니고 새로 산 좋은 것을 입으라는 뜻이다. 하지만 남편의 팬티에도 역시 구멍이 나있었다. 정안이는 아빠의 팬티 입은 모습만 보면 "구멍~ 구멍~"하고 손가락을 집어넣는다. 어느 날 남편이 속옷을 구매했다. 자신의 팬티와 나의 속옷 세트를. 오빠는 살이 많이 빠졌다. 팬티가 큰 것 같다며 작은 사이즈를 주문했고, 나 역시 임신했을 때보다는 (아주 조금) 살이 빠졌으니 작은 사이즈로 주문을 했다. 새 속옷을 입고 며칠 뒤 오빠는 자꾸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뭔가 몸이 불편하다고 했다. 정답은 작은 속옷이었다. 꽉 끼는 팬티를 입으면 다리가 저리고, 그 저림이 허리 통증으로까지 이어진다. 어떻게 알았냐면 오빠가 사 온 그 작은 팬티를 입은 날 내가 그랬다. 와이어가 내장된 작은 브래지어와 허리 밴드가 탄탄한 작은 팬티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그날 이후 그 속옷에는 손이 가질 않았다. 오빠 역시 새로 산 팬티는 밀려나고 다시 구멍 난 팬티가 그 자리를 찾았다.

 필요에 의해 소비를 하게 되는데 새 속옷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편안함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이 속옷은 누군가에게 섹스어필도 할 수 없고 옷을 입었을 때 가슴이 더 커 보이게 만들어 줄 수는 없지만 세상 편한 이 브래지어가 만족스러웠다. 또 속옷의 섹시함보다 중요한 또 다른 무언가가 생겼다. 그래서 새 속옷보다 구멍 난 팬티를 입고 있는 남편이 더 귀엽다. 그 속옷의 구멍은 보이지 않는다. 그 작은 구멍이 오빠의 가치에 흠을 낼 수 없을 뿐이다.

 모유수유를 끝내고 나면 가슴에 대한 관점이 바뀐다. 나는 가슴이 상대방에게 섹스어필을 하는 도구 중 하나라 생각했는데 그 생각은 모유수유를 기점으로 완벽하게 사라졌다. 모르는 사람들과 가슴을 꺼내놓고 아기에게 젖을 주다 보면 가슴이 주는 성적인 이미지는 어느새 점점 사라지고, 젖은 자식에게 우유를 주는 기능적인 관점이 앞선다. 엄마 소가 아기 소에게 우유를 주는 것과 내가 정안에게 우유를 주는 게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말이다.

 편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니 편한 것을 찾은 아줌마들을 욕할 것은 못 된다. 편한 게 죄인가? 섹시하고 눈에 보이는 예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찾은 현명한 사람이 아줌마이다.

 목이 늘어 난 티셔츠를 입는 것도 비슷한 이치이다. 아기가 티셔츠에 목을 그리 잡아당길지 누가 알았냐 말이다. 하나에 이십만 원이 넘는 티셔츠도 정안이 덕분에 목부분이 너덜너덜해졌다. 오래되고 늘어난 티셔츠를 입어야 마음이 편하다. 그래 잡아당겨라 실컷 더 당겨라며 옷을 내줄 수 있는 마음은 다 늘어난 티셔츠에서 나온다. 아이가 옷에 뭔가를 묻혀도, 다 뜯어 놓는다 해도 화내지 않는 인자한 마음은 오래된 면티에서 나온다. 아이가 좀 더 자라면 자연스럽게 그런 오래된 티셔츠와 속옷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아줌마들은 왜 저럴까?”가 아니라 “아줌마들은 정말 대단해!”라는 마음을 먼저 가지면 좋겠다.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편한 속옷을 입는 것이 나태함이나 미련함이 아닌 사랑과 이해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아주길 바라며.


 -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은 아줌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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