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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성킴 Sep 03. 2021

아이를 키우는 것에 정답은 없다

  자신이 양육을 잘 했기 때문에 내 아이는 얌전하다 혹은 말을 잘 듣는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이가 몇 살때 쯤 할 수 있을까?

 정안이 또래(현재 32개월)의 아기들에게 부모의 양육태도가 끼치는 영향은 어느정도일까?

 아기가 소리를 지르고, 떼를 쓰고, 자신의 물건에 욕심을 부리는 것이 부모의 양육태도가 나빠서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 얌전한 아기가 있고, 성질이 급한 아기가 있고, 울지 않는 아기가 있고, 잘 우는 아기가 있다. 모든 아이들의 기질은 다 다르고, 그것은 아이가 가지고 태어나 살면서 바뀔 수 있는 것들이지 부모가 잘못된 양육을 해서 아이가 바닥에 드러 누워 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이유없이 울기도 한다.

 이렇게 서두가 긴 건 우연히 본 글 때문이다. 블로그에서 이웃 추가 해 두고 가끔 보는 분의 글인데, 읽을 때 마다 기질이 순한 아이를 키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종종 한 적이 있다. 그런 분이 아들이라 힘든 게 아니라 타고난 기질과 부모의 양육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구절에서 물음표가 붙었다.

 정안이를 키우며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아이를 키우는 것은 참 내 맘 같지 않다는 것이다. 정안이는 많이 뛰고, 소리도 많이 지르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아기이다. 이제 32개월. 말을 하기 시작한 두 달 정도 되었다. 30개월이 됐을 때쯤 늘어나는 단어와 따라하는 단어가 많아졌다. 물론 완벽한 문장 구사나 대화는 힘든 수준이다. 그래도 밥을 먹기 싫으면 “아니야, 배아파.”, 나가고 싶을 땐 “밖에. 산책. 나가나가.” 잠 들고 싶지 않을 땐 "엄마 책 읽어 주세요" 차를 탈 때 "엄마 우리 어디가요?" 정도 하는 수준이다. (쓰고 보니 정안이가 말이 많이 늘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이런 아이의 고집이나 욕심에 훈육을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아이가 잘못한 상황에 그러면 안된다고 알려 주는 수준이지만 조금씩 시작하고 있다. 36개월이 지나면 혼내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생각보다 말을 더 안 듣는다.

 그래서일까, 나는 밖에서 우는 아이를 보면 ‘아, 저 엄마도 참 힘들겠다."하는 생각이 든다. 반면 누군가는 그런 상황에서 ‘엄마가 양육을 잘 했다면 저러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똑같이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지만 이렇게나 다르다. 그렇다하더라도 얌전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양육을 잘한 사람이라는 그 가치관이 조금은 무섭다. 나는 나도 모르게 타인의 눈에는 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부모가 된 것이다.

 나는 지금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있는 맞나? 하는 생각을 수없이 많이 한다. 더 혼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아직 좀 더 기다려 줘야하나? 소리를 질러도 되나? 화를 내도 될까? 그리고 그 질문은 나는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것 일까? 하는 근본적인 물음까지 간다.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으로써 그 글을 읽고 나는 화가 났다. 나는 열심히 노력하는 중인데, 나아가는 중인데 나에게 네가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가 말이 느린거야, 아이가 떼를 쓰는거야 하는 것 같아서.   

 나는 육아 전문가도 아니고 아이를 여러명 키워 본 것도 아니고 다 키운 것도 아니다. 그래서 육아에 대한 어떠한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나에게 있어 육아란 언제나 정안이가 기준이고, 만들어 진 가치관 역시 그 시작은 정안이다. 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의 아이가 육아에 대한 기준일 것이다. 부모 자신의 성향과 아기의 기질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 되는 것이 육아가 아닐까. 하지만 모두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은영선생님 같은 전문가의 말을 찾아 보고, 따라한다.

 예술은 말로 표현할 수 없고, 흉내 낼 수 없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나는 그것이 예술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아이를 키운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다.  내가 내 아이에게 주는 사랑을 어떻게 말로 표현 할 수 있을까. 비슷하게 비유할 수는 있지만 100% 완벽하게 말로써 표현할 수 없다. 그런 위대한 일을, 아이를 키우는 일을 자신의 잣대에 맞춰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 모든 부모는 공부하고, 노력한다. 아이 하나를 기르기 위해서. (물론 뉴스 속에 나오는 짐승보다 못한 사람들도 있긴하지만.) 그런 부모 뒤에서 “부모가 제대로 하지 않아 아이가 저렇게 떼를 쓰고 우네.”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타인의 흘러가는 말이 아픈 가시가 되어 콕 박히고, 내가 잘 하고 있나하는 의심이 드는 걸 보니 나는 잘 하고 있다. 우리 모두 다 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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