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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성킴 Sep 10. 2021

빵순이라서 행복해


1.


 나는 빵순이다. 밥 대신 빵을 먹는 게 가능하고, 빵 때문에 다이어트를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케이크, 쿠키 같은 베이커리류를 모두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보다는 사랑한다는 표현이 더 가깝겠다.

 맛있는 빵은 참 신기하다. 화가 났던 마음도 풀어 주고, 스트레스받은 일도 순간 잊게 해 주고 그것도 모자라 자꾸 생각난다. 맛있는 빵 하나 먹었다고 이렇게 글도 술술 쓰인다. 내 몸을 잘라보면 탄수화물이 흘러나올 것 같지만 맛있는 빵과 케이크는 포기할 수 없다. 다이어트는 탄수화물을 끊어야 가능한 일이라 대체 시작을 할 수가 없다.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면 나는 고민 없이 밥 대신 빵을 먹을 것이다.




2.

 

 매일 저녁 산책을 하러 다니는 길이었다. 항상 해가 지고 난 후 하는 산책이라 많은 가게들의 불이 꺼져있다. '제주 빵집'이라는 간판을 달고 하는 작은 빵집이 있었는데, 늘 문이 닫혀 있는 것만 봤던 터라 "여긴 장사 안 하나 봐."하고 지나쳤다.

 어제 아침 등원 전에 병원을 들리고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정안이가 좋아하는 꽈배기 빵을 사서 약국에 갔다가 차를 태워 어린이집으로 갈 계획이었다. 병원에서 나와 약국에 가기 전 프랜차이즈 빵집에 가는 길에 문이 열린 제주 빵집이 보였다. 문이 열린 걸 처음 봐서 호기심에 한 번 들어가 볼까? 하는 마음에 가게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갓 구워진 크로와상과 스콘이 놓여있었다. 안 살 수가 없었다. 정안이는 크로와상도 잘 먹기에 소금 빵 하나와 크로와상, 나를 위한 스콘 하나를 샀다.

 어린이집에 내려 주고 집으로 돌아와 남편이 아침에 내린 커피에 얼음을 띄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고, 정안이가 남긴 크로와상을 브런치로 먹었다. 세상에나 이렇게 맛있는 빵이라니! 나는 크로와상을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건 내가 그동안 맛없는 크로와상을 먹었기 때문이었던 거다! 커피는 왜 이렇게 맛있고, 하늘은 또 왜 이렇게 맑은지. 맛있는 빵이 부리는 마법이다.

 오늘 정안이를 등원시키고 10시쯤 간 빵집에는 어제보다 더 많은 종류의 빵들이 나와있었다. 카야 쨈이 들어간 빵과 쌀식빵, 크로와상을 사서 나왔다. 부자가 된 기분으로 가게 문을 나왔다. 오늘도 날씨가 좋구나.




3.


 부산에서 아는 동생이 자기가 자주 가는 집이라고 언니도 한 번 먹어보라고 제주까지 택배로 보내 준 파운드케이크를 꺼냈다. 비 오는 날이라 따뜻한 커피를 마시려고 했는데 집 정리를 하다 보니 아이스가 당긴다. 8가지 맛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게 보내줘서 고르는 데 한참이 걸렸다. 영암 무화과 얼그레이 파운드와 밀양 사과 클럼블 파운드를 골랐다. 얼그레이가 붙어서 맛없는 디저트를 본 적이 없다. 나는 밀크티도 좋아하고, 얼그레이 향이 가득한 크림도 좋아한다. 두 가지 맛 다 맛있었다.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하나를 더 뜯고 싶었지만 남편이 오면 함께 먹기 위해 참았다.


 

 빵은 이렇게 누군가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다. 우리는 친구 집에 초대받았을 때, 병문안을 갈 때 빵 혹은 케이크를 사서 간다. 빵을 싫어하는 사람도 없거니와 빵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즐거운 자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이걸 먹어 봤는데 정말 맛있었어, 그래서 네 생각이 났어."


 오고 가는 빵 봉지 속에 사랑이 싹튼다. (다양한 의미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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