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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성킴 Nov 08. 2021

아이폰이 고장 났다

 어제까지 잘 되던 아이폰이 갑자기 고장이 났다. 

 충전을 해 놓고 자고, 그다음 날 아침에 그냥 다시 화면을 눌러봤을 뿐인데 갑자기 멈췄다. 어떻게 해도 켜지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떨어뜨린 적도 없고, 물이 들어간 적도 없는데 갑자기, 왜? 

 주말이라 집에서 가까운 애플 공식 서비스 센터에 예약을 해두고 다음 날인 월요일 아침 오픈 시간에 맞춰서 찾아갔다. 10시 40분 예약이었지만 마음이 급해 9시 50분에 미리 가서 기다렸다. 다행히 사람이 없어서 10시에 맞춰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담당자조차 이유를 알지 못했다. 어째서 내 아이폰 12는 갑자기 유명을 달리했을까. 내가 너를 얼마나 끼고 살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다니. '왜'가 궁금했지만, 켜지지 않은 핸드폰으로는 그 이유조차 찾을 수가 없다. 근 1년간을 아무 문제없이 사용했는데, 단 한 번의 불편함 없이 사용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갑자기 이렇게 된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애플은 어째서 이런 핸드폰을 만들어서 세상에 보낸 걸까. 

 캐나다에서 구매한 아이폰 X를 잘 쓰고 있었는데, 화면이 깨지는 바람에 남편이 아이폰 12 pro를 직구해주었다. 나는 카메라를 자주 사용하는터라 무음 카메라가 정말 유용하게 잘 쓰인다. 무음 카메라는 한 번 써보면 다시는 헤어 나올 수 없는 것 중 하나이다. 하지만 예고 없이 갑자기 사망한 아이폰의 모든 부품을 교체해야 한다고 한다. 국내산 재고들로만 교체 가능해서 이제 더 이상 나는 무음 카메라를 사용할 수가 없다. 이럴 거면 차라리 새 걸로 주던가 그것도 안된단다. 수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새로운 핸드폰으로도 교체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사실 애플의 서비스는 악명이 높다. 수리비가 비쌀 뿐만 아니라 원하는 서비스를 제대로 받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나는 서비스센터에 자주 가는 사람이 아니다. 기계를 쓰면 굉장히 오래 잘 쓰는 편이다. 막 쓰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나의 핸드폰은 언제나 고장 없이 잘 지내 주었다. 이렇게 갑자기 고장이 나는 건 처음이다. 심지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아이폰 7도 이렇게나 멀쩡한데 말이다. 막상 고장이 나니 서비스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게 된다. 속상한 마음을 둘 데가 없으니 말이다. 

 속상한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내가 그동안 찍어놓은 무수히 많은 몇 천장의 사진들도 복구할 수 없다고 한다. 저장 공간이 큰 터라 따로 옮기지 않고 가만히 놔둔 것이 바보였다. IT강국이면 뭐하나 나의 이런 작은 사진조차 살려주지 못하는데. 거기엔 정안의 성장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다. 우는 정안, 웃는 정안, 화난 정안, 노래하는 정안. 그 작은 기계 안에 나는 꽤 많은 추억을 담아 두었다. 기계를 다룰 줄도 모르고 유용하게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이 작은 기계 안에 추억을 잡아넣는 건 누구보다 잘한다. 정안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핸드폰에 담긴 그 귀여운 모습을 몇 번이고 돌려 보는 그 재미를 잃었다. 아니 그 행복을 잃었다. 


 핸드폰으로 글도 쓰고, 게임도 하고, 사진도 찍고, 영상도 편집하고, 뉴스도 읽고, 라디오도 듣는 시대이다. 그런 핸드폰이 갑자기 고장 난 다는 건 꽤나 불편한 일이다. 지금은 집에 있는 아이폰 7에 급히 유심칩을 바꿔 넣고 사용하는 중이다. (알고 보니 대여폰을 주기도 하는데 나에게는 그러한 안내를 해 주지 않아 몰랐다. 집에 가져온 수리 영수증을 한 글자씩 읽어보니 대여폰이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진 앱이 아무것도 없어서 강제로 나는 핸드폰에서 자유로워졌다. 앱을 까는 건 금방이지만 굳이 깔지 않았다. 카카오톡도, sns도, 자주 사용하는 은행 앱도, 그 어떠한 앱도 깔지 않았다. 수리가 되는 기간 3일~5일 정도는 그저 전화와 문자만 되는 그런 2G 폰처럼 사용하기로 했다. 무의미하게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새로고침을 누르고, 블로그에 들어가고, 맘 카페에 들어가서 새 피드를 보는 시간이 줄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 보면 작가가 스마트폰을 놔두고 산책길에 나선 순간을 '휴대전화가 없으니 발가벗은 기분인 것은 아니다. 발가벗은 것은 감당할 수 있다. 꼭 내 간이나 그 밖의 다른 중요 신체 기관을 빼놓고 산책에 나선 것 같다."라고 설명하는 구절이 나온다. 그 기분을 느낄 수가 있다. 뭔가 허전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붕 뜨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핸드폰의 노예로 지금껏 몇 년을 살아왔는데, 갑자기 고장 난 핸드폰 때문에 잠시 벗어난 기분이기도 하다. 금방 시간을 보내는 다른 일을 찾는다. 사람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다. 금방 적응하게 된다. 자꾸만 핸드폰을 만지게 되는 건 습관이라 고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다. 적응은 쉽지만, 습관을 버리는 일은 어렵다. 

 핸드폰이 고장 난 이유는 알 수 없겠지만, 그 속에 들어가 있는 사진도 찾을 수 없겠지만, 메모장에 쓰인 짧은 글들을 다신 볼 수 없겠지만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것도 있는 법이다. 그 어쩔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는 일은 온전히 내 몫이다. "애플은 쓰레기야!", "아이폰은 발전이 없어!"하고 화내고 욕해도 내 사진들이 돌아 오지는 않을 것이다. (혹시 운이 좋아 수리하는 중에 사진을 살릴 수도 있으니 심한 욕은 아껴두기로 한다.) 나는 쉽게 핸드폰을 바꾸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 몇 년간은 계속 이 기종을 쓸 예정이다. 또 이런 일이 없으리란 법은 없으니 조금 귀찮아도 사진을 옮겨 두는 습관을 만들어야겠다. 이번에도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 끝나지 않은 물음에 돌아오지 않을 대답이지만 크게 외치고 싶다.

 "도대체 갑자기 왜 너는 그렇게 멈춰 버린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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