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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성킴 Nov 18. 2021

오늘이 수능이었다고 한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인사말을 듣고 오늘이 수능인  알게 되었다. 사실 내가 수능을 치고  이후의 수능에관심이 없었다. 거기다 이제  이상 주변에 수능생이 없는 나이가 되었다.   전만 해도 친구의 늦둥이 동생이 수능을 친다거나 하는 작은 소식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건너 건너 들을 일도 없게 되었다. 집에 TV 없으니 이런 뉴스거리를  길이 없다. 바쁜 날엔 인터넷으로 보는 뉴스도 건너뛰곤 하니 수능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그런데 라디오에서 수능이라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누군가의 아들이, 딸들이 수능을 친다는 생각이 들고, 뭔가 신경이 쓰인다.

 11월 이맘때쯤 갑자기 추워지곤 한다. 그날이 바로 수능이다. 그런데 오늘의 날씨는 매우 따뜻하다. 이렇게 따뜻한 수능이라니,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 새벽 일찍 나서는 길에는 입김이 나오고, 무릎엔 담요, 위에는 롱 패딩 그리고 따뜻한 보온 도시락과 차 같은 게 생각나는데 오늘은 쉬는 시간에 아아를 마셔도 될 것 같은 따듯한 햇살이다. (제주만 그런가, 육지는 또 모르지 갑자기 눈이 왔을지도.)

 그냥 흘러가버릴 수도 있는 수능날이지만 나의 3 시절은 어땠는지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생각이 나지 않는다. 벌써 십수 년이 지난 일이 되어 버렸다. 나의 10 마지막 해가  떠오르지 않는다. 수능을 앞두었을 , 그냥 공부를 하지 않아도 수능은 대박   같다는 이상한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찍는   답일 것만 같은 그런 기분. 그래서 공부를 미친 듯이 열심히 하진 않았다. ' 럭키걸이잖아.   거야." 하는  그런 류의 말도  되는 긍정적인 마음이 3 시절 내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뭐가 되고 싶은지 내가  하고 싶은지 모르던 시기였다. 그냥 '좋은 대학' 들어가는 것만이 목표이던 시절. 사실 좋은 대학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수능  아침엔 아빠가 시험 장소인 이사벨여자고등학교 정문까지 데려다주셨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를 태우고 갔다. 담임 선생님께서  학교 앞에 있어서 놀랐다. 다른 학교에도 우리반 학생들이 많이 갔을텐데 내가 배정받은 학교 앞에 담임 선생님이 계신  신기했다. 당시엔 학교 앞에 후배들이 나와 플랜카드를 흔들며 잘하고 오라는 응원도 있었다. 휴지, , 찹쌀떡 같은 것들을 선물로 주면서. 2  나도 응원을 해봐서 아는데 생각보다 재밌었다. 그땐 친구들과 모여서  하는  재밌게 느껴지는 시기이다. 그런 응원이 사치스러울 정도로 나는 노력을 많이 하지 않았다.

 수능 도시락 메뉴가 뭐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마가 싸 준 보온도시락을 가져갔던 것 같은데. 아마 다른 반에서 시험을  친구와 함께 밥을 먹었을 것이다. 수학 시간엔  찍고 잤다. 나는 수능이라고 긴장을 하거나 하진 않았나보다. 잠이 왔으니 말이다.  찍고 잤으니 2시간은   같다.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뻔뻔하다. 준비도 제대로  했으면서 긴장도  하다니! 아닌가, 준비한  없으니 긴장이   걸까.   없는 10대의 나다. 언어영역과 (지금은 국어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영어 듣기는 내가 가장 자신 있는 파트였다. 영어가 자신 있는  아니고 영어 듣기가 자신 있었다.  기준에서 언어영역과 영어 듣기는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잘할  있는 분야는 아니었다. 나는 책을 빨리 읽는 편이다.  당시엔  빨리 읽었다. 지문이  것도 빨리 읽으니  시간이 남았다. 고3이지만 소설을 잘 읽었다. 당시엔 무라카미 하루키, 에쿠니 가오리 같은 일본 작가들의 책이 한국에  밀듯이 들어왔다. 그런 것들이 언어영역에 도움을 주진 않은  같다. 그냥 글을 읽는 속도를 높이는데 도움을 줬을 . 영어 듣기도 딱히 연습하진 않았는데, 외화와 팝송을 좋아해서였는지는 몰라도 영어 듣기가  들리는 편이었다.

 그렇게 치고 나온 수능이었다. 점수가 나오기 전에도 “난 대박 날 거야.”라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다. 사실 수능 점수도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뭐가 몇 등급이 나왔는지. 수학은 아마 최저등급이었을 것이다. 제일 잘 본 건 언어영역이고. 잘 쳤든, 망했든 수능은 끝났다. 수능이 망해도 하늘은 무너지지 않고, 세상은 아무 일 없이 잘 돌아간다. 그러니 나 역시 아무 일 없듯이 툭툭 털고 일어나야만 한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수능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수능을 잘 쳤더라면 이런 말이 안나왔겠지? 하하) 아무것도 아니라기엔 18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일이기는 하지만, 더 크게 보면, 더 길게 보면 인생에 있어 수능은 그렇게 큰일이 아니다.

 수능을 망쳐서 내가 그동안 열심히 노력하고 준비한 것들을 제대로 펼치지 못해 실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절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시험을 잘 치든 못 치든 이 시간을 위해 함께 달려온 그 과정에서 얻은 지식은 머릿속에 그대로 있고, 그것들을 앞으로의 인생에서 더 잘 사용하기 위해 다시 노력하면 된다.

 나는 지금에 와서야 한국사를 공부하고, 아직도 영어를 공부한다. 그 당시엔 국사가 정말 재미가 없었다. 외워야 하는 년도와 어려운 이름들, 많은 한자어에 머리가 아팠다. 엄마가 보라던 사극도 나는 전혀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하나하나 이해하는 한국사는 너무 재미있다. 왜 내가 한국사를 공부해야 하는지도 안다. 무조건 외우는 것이 아닌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시험 칠 일도 없고, 누군가에게 검사받을 일도 없다. 내가 궁금해서 내가 재밌어서 배우는 역사는 조금 더 내 인생에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다.

 반대로 수능 공부를 엄청나게 많이, 남들보다 오래 한 우리 남편은 그때의 지식이 지금도 여전히 머릿속에 가득하다. 그런 걸 어떻게 알아? 하면 고등학교 때 공부한 게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다. 내가 한국사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영어를 다시 공부하는 것도 남편 때문이다. 공부를 많이 했는데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해도 살면서 이 지식들은 계속해서 좋은 쪽으로 도움이 된다. 억지로 집어넣은 지식이라 할 지라도 10대에 집어넣은 지식은 생각보다 꽤 오래간다. 수능이 끝나도 공부한 것은 삶에 있어서 도움이 될 것이다.

 어찌 되었든 주사위는 던져졌다. 하지만 이게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다시 던질 일이 더 많다. 앞으로 쳐야 할 시험은 무수히 더 많고,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더 이상 수능이 인생의 전부이던 시기는 지나갔다. 그건 옛날 말이다. 대학이 나의 앞길을 밝혀 주던 시대도 이제는 끝났다. 단지 내가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도구일 뿐.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미래도 달라질 것이다. 언젠가 정안이도 수능을 치는 날이 오겠지. 그때 나는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너무 먼 미래의 얘기라 어쩌면 그땐 수능이 사라졌을 수도 있겠다. 어찌 되었든 수능을 치고 돌아온 아들에게 난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주는 건 너무 뻔하다. 가끔 결과가 더 중요한 일도 있으니까. 잘 쳤을 수도 있으니 위로의 말도 성급한 것 같고, 망쳤을 땐 기분이 안 좋을 테니 어떤 말도 조심스럽겠지. 때론 그 어떤 말보다 작은 행동 하나가 더 큰 힘을 줄 수도 있다. 아무 말 없이 꽉 껴안아 주고 싶다. 나의 소중한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며 이 시험을 쳤는지는 모르지만 어떤 마음으로 교문 밖을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꽉 안아 주고 싶다. 꽉 안아 주고 나서 얼굴을 보면 왜인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만 같으니 손을 꼭 잡고 나란히 걸어가서 맛있는 저녁을 사줘야겠다. 그리곤 음식을 앞에 두고 내일 우리 뭐하고 놀까? (사실 수능 다음 날에도 학교는 간다. 모의 채점을 하고 대충 점수를 맞춰 어느 학교에 들어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 주말에 어디 갈까? (사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친구가 더 좋다. 주말에 나와 남편과 놀아 주지 않을 게 뻔하다.) 즐거운 일들을 가득 만들어줘야지. 곧 내 품을 떠날 거니까. 우리의 좋은 추억을 만들기까지는 크게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으니까. 수능은 지나갔으니 앞으로 다가올 일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어 보면서 너의 꿈을 여전히 응원하는 엄마가, 아빠가 있다고 말해줘야겠다.

 

 ps. 수능을 친 모든 친구들 고생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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