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 슬픔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색
Blue
그러니까 외로움과 슬픔이라는 말은 이제 너무 많이 듣고, 많이 말한 상태와 감정이라 지겨울 때가 있어요. 그리고 어느 정도 인간의 기본 상태라는 생각도 있고요, 솔직하게. 그런데 정말 외로울 때, 정말 슬플 때. 그러니까 그게 죽고 싶을 정도라면 그땐 정말 벗어나고 싶죠. 인간은 원래가 다 외롭고 슬프다는 말은 듣기도 싫죠. 짜증 나고 진 빠져, 다 피할 수 있는 동굴 속이 딱이잖아요.
그때, 그 동굴 속에서 불을 피우는데 파란 불꽃이 피어올라요. 마치 가스버너를 켠 것처럼 일정하게 일렁이는 파란 불꽃이 작지만 동굴 속을 따뜻하게 채우는 거죠. 쭈그려 앉은 내 두 무릎이랑, 살짝 포갠 두 손에 푸른빛이 묻어서 따뜻하지만, 파랗고 밝아서 오히려 시린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손을 풀어 바닥을 짚고, 파란 불꽃에 더 가까이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어서 쳐다봐요. 작지만 절대 꺼질 것 같지 않은 단단한 일렁임이 마음에 들어서 계속 지켜봐요. 그럼 그냥 어느샌가 마음이 텅 비어요. 다행인 거예요.
외로움과 슬픔이 잠시 잊혔으니까요.
파란색은 따뜻하다가도 차가워요. 하늘 같다가도 바다 같고요. 외로움 같다가도 사랑 같아요. 슬픔 같다가도 기쁨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파란색을 만나면 마음이 몰랑거릴 때 있지 않으세요? 일상생활에선 모르겠어요. 그런데 마음에 파도를 이는 결정적일 때가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Mr. Blue를 만났을 때.
Mr. Blue
뒷모습으로 처음 만났어요. 눈은 나중에 봤고요, 뒤통수를 먼저 봤어요.
머리가 짧아서 약간 푸른 끼가 돌아요. 뒷덜미와 귀가 훤히 드러나있어요. 시원하고, 숨기는 게 없어 보여요. 그래서인지 자신감도 있어 보이고요. 그런데 눈을 보여주지 않네요.
아직,
아직인 거예요 그 정도 사이가 아니니까요. 그 정도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손이 올라가요. 뒤통수를 만지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일어요. 까끌까끌하거나 의외로 부드러울 것 같은데 내 손으로 직접 쓰다듬어보고 싶어요. 자꾸만 올라가는 손이 실수를 할까 봐 다른 한 손이 잡아끌어요. 자연스럽게 뒤통수에 대고 공손한 포즈를 취하는, 그런 사람처럼 보여요 저는.
자세히 보니 입고 있는 티셔츠도 Blue네요. 너무 자연스러워서 몰랐어요. 한 몸인 것처럼 티셔츠랑 몸이랑 잘 어울려요. 티셔츠의 색도 몸에서 흘러나온 Blue가 묻은 것 같아요. 역시나, Mr. Blue 답네요.
왜 Mr. Blue냐고요?
저도 모르겠어요. 처음엔 꽤 희한한 별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냥 이름처럼 익숙해요. 나도 모르게 뒤통수를 쓰다듬어 버릴 것 같은 그런 외로움이 뒤통수에서, 살갗 같은 티셔츠에서, 온몸에서 느껴져요. 그렇다고 우울하다고 찡찡대거나, 자기의 외로움을 자랑처럼 말하고 다니는 사람은 아니에요. 실없는 미소도 지을 줄 알고, 회사 사람들과도 잘 지내고, 사회생활에도 능숙해요.
파란 불꽃이 동굴 속을 채워도 정작 불 가까이에 있는 두 무릎은 시릴 수 있는 거잖아요. 주변을 자신으로 가득 채우는 사람이지만, 그의 외로움이 그의 존재감을 이겨요. 결국 올라가는 손을 막지 못하고 어깨를 잡아 돌려 세운 게 우리의 첫 만남이에요.
두 눈이 나를 봤어요.
놀라서 치켜뜬 눈썹과는 관계없이, 눈에는 외로움이 Blue보다 진하네요.
아무래도 말을 걸어야겠어요.
- 2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