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인 오늘, 예배 전 들른 집 근처 스타벅스에서 생소한 이름의 음료를 한 잔 주문했다.
'프라포치노가 얼음을 같이 간 건가요?'
'네'
'얼음이랑 에스프레소를 간 음료가 있으면 주세요.'
'에스프레소 프라포치노 맞으신가요?'
'맞소 당장 주시오!(대흥분)'
'네!'
평소 같으면 직장인마냥 집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붙들고 발을 동동 구르며 쓸데없지만 재밌는 짓을 할 시간이었다. 프리랜서에게도 주말은 주말이다. 예배 직전에는 집중력이 더 올라가기 때문에 책을 읽거나 방구석 1열을 보며 영화 지식을 채우는 것도 좋아한다. 미쳐버린 날씨이기에 얼음 가득 담은 컵에 차나 커피를 마시는 것도 필수다. 찬 음식이나 음료를 좋아하진 않지만 요즘은 대세에 편승해 차디찬 것으로 갈증을 날리며 더위와 싸웠었는데 며칠 전 냉장고가 고장 났다. 10년간 말썽 한 번 없던 냉장고가 예고도 없이 전구를 끄더니 곧이어 숨을 거뒀다. 예상치 못한 이별이었다. 아이스박스도 없이 맞이한 냉장고와의 이별을 예측하지 못한 엄마와 나는 그날따라 신이 나서 옆 동네 이마트까지 가서 원정 장을 봐온 상태였다.
'이마트는 정말 없는 게 없네. 피자도, 채식 만두도, 너 좋아하는 초밥도, 요거트도!'
'에이 엄마 좋아하는 것도 골라.'
'엄마 좋아하는 거 집에 가득 있어.'
냉장고를 비우려고 보니 정말 엄마가 좋아하는 게 한가득이었다. 역시 우리 엄마 거짓말은 못하는구나. 가지며 토마토며 여러 야채들과 그 야채들을 말리고 볶고 요리한 것들 한 가득. 그리고 좋아하는 재료들로만 속을 채운 직접 빚은 만두까지. 모조리 다 음식물 쓰레기봉투로 향했다. 버릴 수 없는 음식들과 장 봐온 것들은 엄마의 친구네 집으로 긴급 후송했다. 언덕에 위치한 아주머니의 집까지는 초보인 나의 실력으로 차를 댈 수가 없었기에 엄마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갖은 음식 냄새를 풍기며 녹아가는 것들을 급히 옮겼다. 냉장고 자식. 진짜 너무하다. 대안책을 마련하기 전까진 기다려 줬어야지. 소리라도 크게 냈어야지. 울고 불고 힘들다고 했어야지. 아니, 사실했다. 새벽에 화장실을 가다 들어보면 은근히 큰 냉장고 소리에 놀라곤 했다. 그래도 그렇지. 조용히 등 돌리는 것들은 다 미워.
에어컨 수리가 늘어서 냉장고 수리는 5일 뒤에나 가능하다고 서비스 센터 직원분이 정말 너무나도 상냥하게 말씀하셨다. 이 더운 날 더이상 화를 더하지 않게 하려는 지혜로운 목소리였다. 화는 나지 않았지만 에어컨과 냉장고 둘 중에 뭐가 더 죽고 사는 문제와 가까울까 통화하는 사이 짧게 고민해 봤다. 요즘 같은 더위에는 에어컨이 먼저일 것 같다. 바로 수긍 후 5일 후로 수리 예약을 한 후 바로 포털 사이트를 켰다.
'양문형 냉장고 바로 배송'
죽겠으니까.
산다.
냉장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