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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킴 Jan 19. 2021

코로나 시대에 백수가 되다

앞으로 나의 커리어는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엄청나게 되면서도 실은 내심 기대했던 백수생활이었다.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로 1년 동안 일을 쉬기로 결정한 터였다.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한 달 정도 정말이지 원없이 쉬었다. 매일 늦잠도 늘어지게 자고 밀렸던 드라마도 실컷 보고 그러다가 몸이 찌뿌둥해지면 좋은 길을 찾아서 트레킹을 했다. 하늘은 푸르고 녹음이 짙었으며 바람은 선선했다. 전세계에 코로나가 창궐하고 많은 사람들의 운신의 폭이 집안으로 한정되었을 때에도, 내가 사는 미국의 시골 마을은 비교적 안전하고 평화로웠다. 마냥 노는 생활이 조금 지루해졌을 즈음 비자를 해결하러 한국에 들어갔다. 주변에 있는 거라곤 자연밖에 없는 시골에 있다가 오랜만에 서울에 가니 별천지가 따로 없었다. 자가 격리를 하는 2주도 매일매일 다른 배달 음식을 시켜먹느라 즐겁기만 했다. 격리가 끝난 후에는 그간 못 만났던 지인들을 만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렇게 서울에서의 숨 돌릴 틈도 없는 생활에 지쳤을 때, 다시 미국에 돌아왔다. 다시 2주 동안 자가 격리를 하고, 이번엔 여기 있는 친구들을 만나고 조심스레 연말 모임을 하고 나니 드디어 나에게도 올 것이 왔다.


코로나 블루.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를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생활 전반에 (적으나마) 제약이 생긴 것이 지난 3월이었다. 12월까지 무려 아홉 달을, 우울을 모르고 살았다. 코로나 블루니 코로나 레드니 기사로는 많이 봤지만 내 일은 아니었다.


그동안은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을 달고 살 정도로 안팎으로 바빴는데 갑자기 시간이 너무 많아졌다. 퇴사 효과로 무위조차 마냥 행복했던 시간도 지나갔고, 연일 약속이 있던 연말도 끝나버렸다. 사람을 만날 일도 없어지고 나 혼자서 무얼 해도 (혹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즐겁지가 않았다. 설상가상 이제는 더 이상 하늘이 푸르지도, 바람이 선선하지도 않았다. 뺨을 때리는 눈보라와 흐린 하늘이 이어지는 겨울이 되자 산책할 기운도 사라졌다.


나로서는 이제야 ‘진짜’ 백수의 일상이 시작된 셈이었다. 무기력은 날마다 조금씩 나를 가라앉혔고 ‘이게 혹시 코로나 블루인가?’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고 나자 내가 꽤 많이 잠겨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집에만 있는 건 견딜 수 있었다. 그런데 회사를 다니던 때처럼, 하다못해 헬스장에 다니던 때처럼, 매일같이 얼굴을 보고 인사를 나누는 사람이 없어진 것은 견디기 힘들었다. 언제나 집에 함께 있는 남편도 있고, 친구들과도 늘 연락을 하고 꽤 자주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좋든 싫든 누군가를 만나는’ 주기적인 대외 활동은 나를 지탱하는 큰 지지대였고, 그 부재로 인해 마치 기둥 하나가 무너진 것 같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또다른 문제점은 남편과 나의 텐션 차이였다.

어느 날엔가, 집에 돌아와 바로 게임을 하는 남편에게 무척이나 서운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남편이 게임을 하고 있을 때면 그는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가서 나와 완전히 다른 공간에 있는 것 같다. 온종일 일하고 돌아와 잠시 휴식하는 거니까 이해하자-고 스스로 되뇌었지만 서운함을 묻어두지 못하고 결국 자기 전 침대에서 남편에게 속상했노라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말하면서 내가 먼저 깨달았다.

하루 종일 집안에서 고양이에게 일방적으로 말하며 시간을 보낸 나에게 남편의 퇴근은 곧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시작하는 시그널이지만, 남편은 (대면으로든 화상으로든) 내내 사람들과 일을 하다가 집에 돌아오는 것이니 그에게 퇴근은 그날 어치의 소통을 모두 마치고 오롯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마치 하루에 어느 정도는 채워야 하는 ‘의사소통 할당량’이 있는 듯했다. 일정량의 사회적 교류를 필요로 하는 것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다. 나처럼 외향적인 성격은 채워야 하는 독의 크기가 남들보다 클 뿐.

나의 독을 어떻게 얼마나 채우면서 살아갈지가 앞으로 내 백수 생활의 질을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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