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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킴 Jan 27. 2021

나의 따뜻한 섬, 하와이

첫만남

처음 하와이에 가게 된 건 7년 전이었다.


아빠가 업무 차 하와이에 3박 4일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호텔방의 침대 하나가 아까우니 가족 중 아무나 한 명 데려가겠노라- 하였고, 엄마는 감사하게도 기권. 덕분에 내가 가게 됐다. 당시 나는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출국 전날까지 근무하고 새벽 내내 짐을 싸고 출발했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중이어서, 가서 뭐하고 놀지 이런 건 생각할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비행기랑 숙소가 해결이 돼있으니 내가 한 준비라고는 여권과 옷가지를 챙기는 것뿐이었다. 이제껏 여행을 제법 다녀봤지만 이런 식으로 준비한 여행은, 아니 준비를 ‘안 한’ 여행은, 처음이었다.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고 떠난 여행은 역시 처음부터 엉망진창이었다. 무비자로 미국에 여행한 것이 처음이라 멍청하게 ESTA 신청도 안 하고 있다가 공항으로 떠나기 직전에 부랴부랴 신청했다. 하마터면 비행기도 못 탈뻔 했다. 공항에서는 아빠가 문제. 미국 비자 스탬프가 붙어있는 구 여권을 집에 두고 새로 발급받은 여권만 챙겨온 것이었다. 엄마한테 전화해서 인천까지 갖고 와달라고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이래저래.


바퀴가 헐거운 수레바퀴는 끝까지 삐걱거리면서 굴러가듯이, 크고 작은 문제가 계속 이어졌다. 비행기를 타니 심한 두통이 찾아왔고 착륙 후 입국심사대에서는 무려 2년 전에 만료된 학생비자를 트집 잡아 나를 이상한 방에 가둬놨다. 영문도 모른 채 풀려난 후에는 호텔까지 가는 셔틀버스가 말썽이었고, 우여곡절 끝에 호텔에 도착하고 나서는 체크인 시간이 한참 남아 로비의 의자에 지친 몸을 기대야 했다. 기다렸다가 방 키를 받아서 올라갔더니 킹사이즈 침대가 우리 부녀를 맞이했다. 아빠랑 내가? 킹베드? 우리 유교 패밀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 진작에 더블베드를 요청도 해놨었는데, 여하튼 일이 꼬일라 치면 이렇게도 꼬인다.


기억을 더듬어 적어보니 정말 여행이 이럴 수도 있구나 싶다. 허나, 고백하건대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사진과 옛 일기를 들춰보기 전까지는 이 모든 사건들이 조금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 첫 하와이 방문은 너무도 가슴 뛰고 따뜻한 추억으로만 기억되고 있었다.


아빠는 짐만 맡겨두고 업무 일정을 소화하러 진작 떠났고, 뒤늦게 제대로 된 방에 체크인한 나는 밀려오는 여독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하듯 잠들었다. 오후 3시가 넘어서 배고픔에 잠에서 깨어 밖으로 나갔다. 호텔에서 한 블럭만 걸어나가면 바로 해변이다.


이게 말로만 듣던 와이키키 로구나!


치즈가 찐득하게 흘러내리는 치즈버거부터 해치우고 나오니 이미 해는 구름 뒤로 사라져서 은은한 석양이 해변을 비추고 있었다. 첫날인데 아무 것도 한 게 없고,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부랴부랴 호텔에 돌아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후다닥 다시 나갔다. 이미 저녁으로 접어들어 물속에 들어가니 으슬으슬했다. 그런데 뭐랄까, 원래 이런 기분인가? 해수욕이란 걸 한 게 몇 년 만인지, 기억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 됐었다. 대학생 때도 친구들과 바다에 놀러간 적은 있어도 왜인지 해수욕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더랬다.


정말, 정말.. ... 좋았다.


아주 얕게 넘실대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물 위에 누웠다 엎드렸다 하니 형언할 수 없는 포근함을 느꼈다. 이런 거창한 표현을 잘 안 쓰지만 정말이지 ‘바다’라는 거대한 mother nature가 나를 감싸안고 있는 기분이 확 들었다.

 포근한 품 안에 조용히 녹아드는 기분.


게다가 점점 더 어두워지면서 바다에는 나 혼자 뿐이었다. 아무도 없는 검은 바다에서 물 위로 얼굴만 내어놓고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으니 꿈틀꿈틀하는 회색빛 물결과 가끔 부서지는 흰 파도가 나를 극한의 평안으로 이끌었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너무 아름답거나 초현실적인 장면을 보면 그 안에 내가 들어가 있는 모습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한 폭의 그림이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객관화되어 보일 때. 고요한 와이키키를 나 혼자 점령하고 물살을 가르는 것은 초현실, 그 자체였다.


최고의 힐링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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