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ell called Korea
혐오와 자조감이 난무한 글을 읽는 것은 마치 불량식품을 억지로 목구멍으로 넘기는 느낌이었다. 자극적인 맛이 먹는 순간에는 만족스러울지는 모르겠지만 먹고 나면 후회가 되는 기분이었다.
Reading things full of hatred and over-the-top self-depreciation felt like I was gobbling up some junk food against my will; while the first bite may be tasteful, a sense of remorse soon followed.
[English version available below]
2016년 2월 4일, 멜버른
인정한다. 어제 '헬조선'에 대해 내가 적은 글은 잘 쓴 글은 아니었다. 사실 어제 하루 종일 이 문제에 대해 읽고 생각하느라 글은 한 자도 쓰지 못하고 시간이 갈수록 머리가 복잡해지기만 했다. 하루 종일 붙잡고 있었던 그 주제를 그나마 겨우 말이 되는 글로 만들어 완성한 건 새벽 4시가 넘어서였고 100퍼센트 만족하지 못한 글을 올리고 잠에 들었다.
그리고 오늘, '헬조선'에 대해 적은 어제의 글 생각에, 두 개의 전시회를 보고 친구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었지만 어째서인지 내 마음의 반 정도는 딴 곳에 가있었다. 공개할지 굉장히 많이 고민했던 글이기도 하지만, 다른 글에서 말했듯 그렇게 망설이다 보면 절대 공유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글을 올렸다. 두서없고 완성도가 떨어지는 글이었지만, 글을 공개적으로 올린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공론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도 들을 수 있었고 건설적인 토론이 가능했으니까.
내가 현재 있는 위치 자체만으로도 내 글이 따가운 시선으로 읽힐 것도 알고 있었고, 그걸 감수해야 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성취한 것들을 내가 자란 환경이나 내게 이미 주워졌던 특권 등으로 환원하며 나의 노력이라는 요소를 무시할 때의 그 답답함과 서운함을 모르지는 않으니까. 감히 비교한다면, 아무리 '노오력'해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의 좌절감과 아무리 노력해서 이루어내도 내게 주어진 것들 덕분이라며 내 노력을 무마해버렸을 때 느껴지는 좌절감은 비슷하지 않을까. 고통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으니까.
내가 망설였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사회경제적으로 다른 위치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내가 전혀 다른 생각 구조와 마음가짐을 갖게 하는 데에, 자라온 환경과 접해오고 익숙한 것들이 분명 큰 몫을 했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래의 만화가 내가 망설였던 이유를 너무나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게다가 나는 꽤 오랫동안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 한없이 죄책감을 느껴왔다. 내가 노력해서 얻지 않은 부모님의 경제적, 그리고 무엇보다도 심정적 지지에 대해 감사하면서도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한 주변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며 나는 그런 걸 받을 자격이 없다고 나 자신을 탓하기도 했었다.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그게 가시방석 같을 때가 있다.
하지만 내가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이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건 또 하나의 폭력이다. 나아가 네 편 내편 가르고 사회를 계급적으로 이해해버리는 지름길이다. 게다가 편견이나 선입견이 어느 정도는 사실에 기반을 둔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겉으로 보이는 요소들만으로 하나의 인격체를 판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동일한 조건에서 성장해, 객관적으로 같은 정도의 고난을 겪는다고 가정해도 사람마다 이를 받아들이는 정도는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나는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꼰대'들이 우리에게 '노오력'하면 될 거라고 무의미한 희망을 심어주는 말들에 우리가 좌절하는 이유도 사실은 상호 이해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각자의 얘기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이 우리 나잇대였을 때에는 정말 이 악물고 노력하면 되는 시대였을지도 모른다, 아니 개천에서 용이 났던 때도 있었으니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오히려 기적과 같다는 건 사회적 통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윗세대의 ‘노오력’하면 된다라는 식의 조언이 ‘꼰대’의 말로밖에 들릴 수 없는 것도 같다.
그러니까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없다, 라는 생각이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한 사실상 접근 불가능한 목표를 향한 여정의 시작이다.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이 우리는 남과 ‘분리’된 상태로 자기 자신을 인식하기에 결코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아는 상태에서 상대방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 ‘이해’와 ‘사랑’이라는 그 도달할 수 없는 이데아에 우리를 한 발짝이라도 가깝게 한다.
우리에게는 말할 권리도 자유도 있다. 내가 말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동시에 다른 이들이 불평을 토로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다. 그렇기에 '헬조선' 논쟁 자체에 문제는 없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불만을 토로하고 그에 대해 소통하는 것 자체는 문제 되지 않을뿐더러 정체된 현실을 흔들어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임은 분명하다. 옆 나라 중국에서는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말들이 터없이 많은 것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헬조선’ 이야기를 꺼내며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 담론이 소모적으로 되어버린다면 문제가 된다는 것이었다. 어제 글을 쓰면서 읽은 글들에서 말하는 '헬조선'이 무엇인지 보기 위해서 '죽창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라는 슬로건이 크게 적혀있는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난무한 비속어와 자극적인 콘텐츠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누리꾼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오류를 피하려고는 하지만 내가 그동안 인터넷으로 접한 글이나 댓글 중 비합리적이라고 생각되었던 것들(예를 들면 동성애나 외국인 이민자, 난민 등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혐오와 자조감이 난무한 글을 읽는 것은 마치 불량식품을 억지로 목구멍으로 넘기는 느낌이었다. 자극적인 맛이 먹는 순간에는 만족스러울지는 모르겠지만 먹고 나면 후회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헬조선'이나 '탈조선'이라는 말을 들으면 인상을 찌푸리게 된 것이다.
원색적 비난이 난무한 ‘헬조선’ 사이트는 건설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을까.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죽창’이 자극적인 단어와 비속어인 걸까. 당장 고픈 배를 채우기 바쁜 사람들에게 그나마 있는 일자리를 포기하고 일인 시위하라는 건 아니다. 그들에겐 어쩌면 이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위로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사실상 내가 이렇게 새벽에 글을 써 내려가는 것도 실제적인 해결책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니까.
다만 내가 걱정하는 바는 '헬조선'의 이름 하에 조장되는 언어폭력과 혐오가 다른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좌절감을 넘어, 너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으니 나를 이해할 수 없어, 라는 식의 배타성으로 이어지곤 했다. 교육을 통해 강요받은 애국심에 돌아온 건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내치는 국가이기에 그들의 답답한 바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공격적인 편 가르기를 조장하는 대화가 과연 그 사람들의 박탈감과 상처를 치유해줄지는 의문이다.
친구가 물었다. 민감한 주제에 대해 나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표명할 용기가 어떻게 하면 생기는지. 어떤 입장을 공개적으로 가질 만큼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기에 그럴 자신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도 동의하는 바이다. 그래서 나는 이십 년 넘게 살아오면서 공개적으로 내 의견을 표명하는 것을 꺼려왔다.
하지만 내가 어제 글을 올리지 않았으면 전 세계 곳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댓글이나 메시지로 받은 의견들은 내가 고려하지 못한 부분을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 내가 하고 싶었지만 어제 글에는 표현하지 못했던 말들을 대신 해준 사람도, 내가 몰랐던 부분을 채워준 사람도 있었다.
나는 모나지 않은 동그란 사람이 되고 싶었고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그게 내가 민감한 것들에 대해 입을 열지 못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무엇보다 (약간의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다행히도 '헬조선'이든 그에 반대하는 말이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사회에 살고 있지 않은가.
내가 글을 쓰고 공개하는 이유가 피부로 가장 와 닿은 하루였다. 고맙다. 내 글을 읽고, 댓글을 달아주고, 메시지를 보내주는 당신이 너무나 고맙다.
I admit, yesterday’s writing about Korean youth’s frustration was a poorly written article. I was so caught up in a series of thoughts all day about the issue I really couldn’t come up with a right answer to the issue. After spending the whole day on reading, thinking and writing about it I barely made it to one story at 4 in the morning. I still wasn’t 100% satisfied with what I have wrote but I still published it.
Today, I was so caught up with yesterday’s writing that during the two exhibitions I went and a dinner with friends half of my mind was roaming around somewhere else. I have hesitated for long enough to whether I would publish that article but I knew that if I wait I would never be able to share my thoughts. I am aware that it was more discursive than it should be, I do not regret sharing it public. I was able to listen to others’ opinion and have a constructive discussion.
I knew that some would read what I wrote with a disapproving manner just because of where I am now. I’m not oblivious to the sense of indignation upon a complete dismissal of my share of endeavor, due to the privileges I was given. If I dare, I think the sense of resentment that one feels when hard work doesn’t pay off, and that one feels when his/her achievement is solely attributed to one’s given status or environment may be comparable. Indeed, having a paper cut on your very own fingertip is more painful than watching someone getting his/her finger chopped up.
One of the reasons why I hesitated was that I knew that the environment that I grew up in would have formed a completely disparate way of thinking and mindset, compared to the ones from different socioeconomic background. The cartoon below accurately expresses the reasons that made me reluctant to write about the issue publicly.
Moreover, for long I felt guilty for what I was given. While I was grateful for my parents’ financial and mostly intangible — namely, emotional and mental — support, which I was granted upon birth, I was comparing myself with the others who were not as lucky and blamed myself for not deserving it. It may sound whiny but I still feel uncomfortable sometimes.
However, it is another form of violence to not let me talk about the issue just because I wasn’t born in a poverty-stricken environment. Furthermore, such notion is a shortcut to classism and factionalism. Besides, while prejudice and bias may bear a sense of truth, any apparent elements are insufficient to understand a complicated personality. Even when two people grew up under an exact same condition they would react differently to an identical level of hardship.
I would never be able to fully understand someone who is born and raised under a less privileged condition, and vice versa. The reason behind our frustration, caused by the older generation incessantly emphasizing the importance of fruitless endeavor, may be in our ineptitude in mutual understanding. Maybe for them, if you really worked hard it did eventually pay off. I mean, rags to riches stories do exist in their generation. However, it is now a common sense that such cases only exist in fairy tales. Hence, the older generation’s logic doesn’t sound more than a patronizing yet useless advice.
That’s why I think knowing that you are unable to understand another person entirely is the beginning of a journey towards an ever-unreachable destination of mutual understanding. As Erich Fromm said, we are ‘separated’ from others, which makes it impossible to understand them fully. Yet, knowing such impossibility at least lets us take another step towards the Idea of comprehension and love.
We have the right and the freedom of speech. There is no reason for me to stay silent, nor for others to complain. In such sense, the whole discourse about “Hell Joseon” may not be a problem per se. Moreover, it is clear that expressing one’s dissatisfaction is not only unproblematic but also important as it disturbs the status quo, opening up a possibility of change. I am fully aware of how in our neighboring country one is not always allowed to speak as he/she wishes.
Nevertheless, what I wanted to say about the ‘Hell Joseon’ issue is that it becomes problematic when the discourse turns consumptive. I scrolled through the eponymous website — with a rather threatening slogan of ‘equality before a bamboo spear’ — where an active discussion of what a horrible place Korea is held. I frowned at a rampant usage of foul language and provocative contents.
While I try to avoid seeing the anonymous Internet users as one organism, the website constantly reminded me of unreasonable posts and comments that I have encountered (i.e. homophobic or xenophobic attitude) online in the past. Reading things full of hatred and over-the-top self-depreciation felt like I was gobbling up some junk food against my will; while the first bite may be tasteful, a sense of remorse soon followed. That’s why I wasn’t supportive of the terms ‘Hell Joseon’ or ‘Escape from Joseon’.
Would a series of verbal attacks and criticism rampant on the ‘Hell Joseon’ website bring any constructive result? Does a ‘bamboo speer’ mean provocative expressions and vulgarism? I’m not saying that they should quit their job under the risk of starving to go out and hold a protest. Maybe it’s their way of seeking for comfort that doesn’t exist in reality. In fact, my writing about this issue doesn’t necessarily suggest any practical solution to the problem either.
Yet, what I am worried about is the verbal violence and hatred encouraged under the name of ‘Hell Joseon’ transforming into another form of violence. The expressing of frustration easily leads to excluding the others who are born in a socioeconomically better environment already. I also feel frustrated for the unreciprocated patriotism that we were taught for 12 years of mandatory education, but I am doubtful to whether a series of conversations promoting such an aggressive polarization would truly alleviate people’s frustration and pain.
A friend asked me today how I have the courage to openly speak about a sensitive issue like this. He added that he doesn’t feel confident enough to express his opinion publicly due to his lack of knowledge. I completely agree, and that’s the exact reason why I was reluctant to express my opinions so openly the past years.
But if I had not published my writing yesterday, I would have not heard the opinions from the people from the other side of the world. Moreover, the feedback I received definitely gave me a room for a further contemplation that I have missed. There were also some people who articulated some parts that I wanted to but was unable to, and those who filled in my lack of knowledge.
I always wanted to be a likable person, and I still do to a certain level. Yet, I do not want that to be a reason to stay silent about sensitive issues. Above all, (while controversial) we Koreans do live in a free society that lets us complain about ‘Hell Joseon’ or disagree with it.
Today was a day that I truly felt the reason that I decided to publish my writings publicly. Thank you, for reading, commenting and sending me messages. Thank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