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을 잃었으면 되돌아가거나 다른 길로 가면 돼
나의 오랜 꿈
나는 지금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 가지고 싶은 직업이 딱히 없어서 간절하지 않은 상태인 것 같다. 이런 결론을 내기까지 과정을 이야기해 보자면 나는 몇 개월 전까지도 무엇이 되고 싶다의 ‘꿈’이 있었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작가’라는 꿈은 고등학생 때부터 진지하게 생각해 오던 나의 오랜 꿈이었다. 주위에서 아무리 “작가는 무슨 작가야.”, “작가는 아무나 해?”, “.... 작가..? 네가? “, “작가 하면 돈 못 벌어.”라는 반응이어도 난 꿋꿋이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작가이거나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한 번이라도 있을 듯한 과거, 예를 들어 글쓰기대회에서 상을 받았거나 국어를 좋아했다거나 독서를 즐겨했거나 주변 사람들이 글을 잘 쓴다고 알아주었거나 하는 과거는 나에겐 일절 없었다. 나는 전국이 아닌 교내에서 하는 글쓰기 대회에서도 상을 받은 적이 없었고, 국어를 못했고, 독서도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하는 말과 내가 쓰는 글을 봐도 전혀 글쓰기에 소질이 보이지 않았다. 단 한 번도 단 한 명에게도 “너 글 잘 쓴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모든 이가 내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의아한 반응이 당연했다. 이 정도면 다른 직업을 찾아보는 게 맞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작가’라는 꿈을 놓지 않았다.
어느 날 소설을 쓰다가 힘들면 에세이를 썼고, 에세이 쓰다가 힘들면 시를 썼고, 시 쓰다가 힘들면 대본을 썼다. 대본도 어떤 날에는 라디오, 어떤 날에는 예능, 어떤 날에는 드라마였다. 내가 쓰는 것들이 거창해보이만 끄적임에 불과해서 작품이라고 내놓기에는 허접했다. 그래서 출품을 해도 당연히 낙방이었다.
나는 내가 이렇게 ‘작가’가 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더 열심히 글을 썼다. 공모전 당선이라던지, 책을 낸다던지,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다던지 등 어느 하나라도 있으면 계속해도 되는 명분이 만들어지는 거니까. 대외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주변에서 “너 글 잘 쓴다. 계속해봐”라는 소리를 한 번만이라도 빈말이라도 일단 들어보는
것이 목표였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소재가 필요했다. 의학이나 법학과 같은 전문적인 소재는 다루기 어려울뿐더러 내 수준에선 감히 엄두낼조차 분야였다. 특히나 뭐 하나 재능도 능력도 특별할 게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심심한 나의 이야기뿐이었다. 그리고 그나마 내 이야기니까 잘 알고 세세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이유
나는 나를 조금 더 알기 위해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주로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기록했다. 쉽게 말해 썰이라고 하고 조금 그럴싸하게 말하면 감정일기, 더 스스럼없이 표현하면 스트레스 처리공간이었다.
어떤 상황이 일어났고 그때 기분이 어땠으며 어떤 감정인지 자세히 적었다. 화가 치밀어 오르거나 슬픔에 잠겼을 때 말이 아닌 글로 적으니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인지 보였다. 감정이 요동친 상태이기 때문에 머리와 마음속에 뒤죽박죽 섞인 복합적인 감정들을 마구 쏟아낸 탓에 문장이 정돈되진 않았지만 감정은 확연히 돋보였다.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입 밖으로 털어놓지 않아도 내 감정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서 스트레스가 풀렸다. 아주 후련하고 시원했다. 나를 괴롭히던 게 없어지니 고요해졌다.
됐다. 이 정도면. 이거면 됐다.
나는 이제 작가가 안되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왜 내가 그동안 작가가 되고 싶었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버렸다. 나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말로 아닌 글로. 그래서 일기를 쓸 때, 쓰면서 나를 알아갈 때, 내 이야기를 소설로 만들어볼 때, 대본으로 만들 때가 너무 재미있었다. 몇 날며칠을 밤새며 적어냈다. 밤을 새우고 잠을 못 자도 재미있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 글을 쓰는 게 천직이라고 생각했다. 재능은 없지만 하고 싶어서 미치는 정도면 이 직업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근데 조금 더 들여다보니 글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말하고 싶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런 일이 있었고, 이런 마음이 들었다 하는 것들. 생각과 감정이 극에 달 해 쓴 글은 전부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내 마음의 편지였고 나를 향한 위로였다. 그거면 충분했다.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 그럼,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조급함
나는 여태껏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꿈을 가지고 있던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글을 써왔지만 보여줄 만한 결과를 낸 적이 없었다. 한 번이라도 있었다면 그 하나로 지나온 시간들이 의미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없으니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 되어버렸다. 내가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게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느낌이 들면서 뒤돌아보게 되었다. 뒤에는 하고 싶은 거 하겠다고 냅다 박차 온 나와 달리 꿋꿋이 버티고 있던 그들이 있었다. 나와 그들의 방향은 같았을지라도 위치는 달랐다. 그들은 그 시간 동안 1년, 2년, 3년이라는 ‘경력’과 정규직, 신입, 팀장 같은 직급을 부여받았고, 그에 맞는 노동값을 지급받았다. 나는 그 시간 동안 경력, 직급, 노동값은 물론 어느 하나 얻은 것이 없었다. 알게 모르게 성장을 했다고 쳐도 그건 눈에 보이지 않은 거였다. 그들이 이미 새싹이 자라 줄기가 되었지만 나는 이제 씨를 구해야 할 판이었다.
그래서 다급해지고 조급해졌다. 나도 빨리 뭐라도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뭐라도 찾아봤지만 그 ‘뭐’가 되기까지도 시간이 걸렸다. 시간이 없는데 시간이 있어야 한다니까 더 숨이 막혔다. 그동안 나름 편안했던 밤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머릿속은 무언가로 가득 차있었다. 분명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 나 혼자 난리를 치고 있었다. 그래서 그때도 일기를 썼다. 그랬더니 나를 이렇게 만든 건 그들이 아니라 ‘그들과 비교한 나’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들은 그들대로 자신의 길을 가고 있었고 나도 나름대로 나의 길을 가고 있었던 중이라 신경이 쓰이지 않았지만 내가 길을 잃고 보니 그들이 가는 길은 보였고, 그 길이 부러웠다. 그들이 가는 그 길을 같이 걷는 게 맞았을까? 하는 약간의 후회와 자책이 들었다. ‘나 지금 뭐 하고 있지? 나 뭐 해야 하지?’ 나는 길을 잃었다.
길을 잃어도
사실 지금도 뚜렷이 보이지는 않는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하나만 보고 왔는데 그 하나가 없어지니 갈 곳이 없어졌다.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고, 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막막하다.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생각나지 않고, 되고 싶은 직업도 아직 없다. 주변에서 이제 뭐 할 거냐고 한심한 듯 물어도 모르겠다. 방황 중이다.
근데 길은 잃었어도 어떻게든 어디로든 가보면 뭐라도 있지 않을까? 가기면 하면 되지 뭐. 어떻게든 살면 되지. 알아서 잘 가볼게.